"수광이가 그날따라 아침을 먹자 하더라. 원래 안 먹던 앤데…"(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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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친과 함께한 김 소방장의 마지막 아침밥
"사명감 갖고 일하시는 분들의 죽음 헛되지 않도록 관심을 가졌으면" "수광이가 그날따라 아침을 먹자고 했어요.
원래 안 먹던 앤데…. 그렇게 함께 아침 먹고 수광이는 출근했습니다.
"
경북 문경시의 육가공공장 화재 진압 중 순직한 김수광(27) 소방장의 아버지는 2일 연합뉴스 기자와 만나 화재 당일 아침에 대해 어렵게 입을 뗐다.
김 소방장의 아버지는 "애가 아침에 일어나서 얼른 씻더니 아침을 먹어야겠다고 했다"고 말하며 감정을 추스르는 듯 잠깐 얘기를 멈췄다.
그러면서 "그러면 나랑 아침을 같이 먹자고 했다"며 "아내가 차려준 밥과 국을 수광이랑 함께 먹고 출근길에 보냈다"고 말했다.
유족들은 김 소방장이 부모님을 살갑게 대했던 막내아들이라고 입을 모았다.
구미에서 부모님과 함께 살았던 김 소방장은 문경소방서로 발령이 난 이후에도 거처를 옮기지 않았다고 한다.
누나가 결혼했으니 자신마저 떠나면 두분에서만 계셔야 하는 부모님이 눈에 밟혀서였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수년간 문경에서 구미까지 1시간 거리를 매일 출퇴근했다.
유족들은 김 소방장의 활발한 성격이 어머니를 쏙 빼닮았다고 했다.
고등학생 때까지 배드민턴 선수로 활약했던 어머니를 닮아선지 운동도 곧잘 했다고 기억했다.
한 유족은 "수광이가 엄마랑 유독 잘 지냈다"며 "커피 마시는 걸 좋아해서 쉬는 날이면 엄마랑 둘이 예쁜 카페도 자주 놀러 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어디 화재 현장 출동 나갈 때마다 '엄마 나 지금 불 끄러 가요'라고 꼬박꼬박 연락도 했다"며 "그런 문자를 매일 주고받는 거 보면 수광이 엄마도 정신력이 보통인 사람이 아니다"고 덧붙였다.
김 소방장은 그 누구보다 소방관에 '진심'인 사람이었다.
군대에서부터 소방관을 준비한 그는 당직 근무를 꼬박 새운 다음 날에도 졸음을 이겨가며 공부했다고 한다.
전역 3개월 만에 소방관이 된 그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허리까지 다쳐가며 인명구조사 시험까지 합격했다.
항상 남을 돕는 일을 하는 게 꿈이었던 그는 결국 그토록 바랬던 119구조구급센터 대원이 됐다.
퇴근 후에도 훈련에 매진하고 배려심 넘쳤던 김 소방장의 모습을 보고는 그를 따라서 소방관의 길을 걷게 된 친구들도 여럿 있었다고 유족들은 말했다.
한 유족은 "수광이가 그렇게 소방관이 되고 싶어 했는데 합격하고 좋아하던 그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며 "젊은 소방관들을 위해서 더 안전한 근무 환경이 만들어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오늘도 불이 나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려드는 소방관들이 있다"며 "사명감을 가지고 일하시는 분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관심을 가져줬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연합뉴스
"사명감 갖고 일하시는 분들의 죽음 헛되지 않도록 관심을 가졌으면" "수광이가 그날따라 아침을 먹자고 했어요.
원래 안 먹던 앤데…. 그렇게 함께 아침 먹고 수광이는 출근했습니다.
"
경북 문경시의 육가공공장 화재 진압 중 순직한 김수광(27) 소방장의 아버지는 2일 연합뉴스 기자와 만나 화재 당일 아침에 대해 어렵게 입을 뗐다.
김 소방장의 아버지는 "애가 아침에 일어나서 얼른 씻더니 아침을 먹어야겠다고 했다"고 말하며 감정을 추스르는 듯 잠깐 얘기를 멈췄다.
그러면서 "그러면 나랑 아침을 같이 먹자고 했다"며 "아내가 차려준 밥과 국을 수광이랑 함께 먹고 출근길에 보냈다"고 말했다.
유족들은 김 소방장이 부모님을 살갑게 대했던 막내아들이라고 입을 모았다.
구미에서 부모님과 함께 살았던 김 소방장은 문경소방서로 발령이 난 이후에도 거처를 옮기지 않았다고 한다.
누나가 결혼했으니 자신마저 떠나면 두분에서만 계셔야 하는 부모님이 눈에 밟혀서였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수년간 문경에서 구미까지 1시간 거리를 매일 출퇴근했다.
유족들은 김 소방장의 활발한 성격이 어머니를 쏙 빼닮았다고 했다.
고등학생 때까지 배드민턴 선수로 활약했던 어머니를 닮아선지 운동도 곧잘 했다고 기억했다.
한 유족은 "수광이가 엄마랑 유독 잘 지냈다"며 "커피 마시는 걸 좋아해서 쉬는 날이면 엄마랑 둘이 예쁜 카페도 자주 놀러 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어디 화재 현장 출동 나갈 때마다 '엄마 나 지금 불 끄러 가요'라고 꼬박꼬박 연락도 했다"며 "그런 문자를 매일 주고받는 거 보면 수광이 엄마도 정신력이 보통인 사람이 아니다"고 덧붙였다.
김 소방장은 그 누구보다 소방관에 '진심'인 사람이었다.
군대에서부터 소방관을 준비한 그는 당직 근무를 꼬박 새운 다음 날에도 졸음을 이겨가며 공부했다고 한다.
전역 3개월 만에 소방관이 된 그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허리까지 다쳐가며 인명구조사 시험까지 합격했다.
항상 남을 돕는 일을 하는 게 꿈이었던 그는 결국 그토록 바랬던 119구조구급센터 대원이 됐다.
퇴근 후에도 훈련에 매진하고 배려심 넘쳤던 김 소방장의 모습을 보고는 그를 따라서 소방관의 길을 걷게 된 친구들도 여럿 있었다고 유족들은 말했다.
한 유족은 "수광이가 그렇게 소방관이 되고 싶어 했는데 합격하고 좋아하던 그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며 "젊은 소방관들을 위해서 더 안전한 근무 환경이 만들어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오늘도 불이 나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려드는 소방관들이 있다"며 "사명감을 가지고 일하시는 분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관심을 가져줬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