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제주도'를 걷다…눈 덮인 한라산 조망
[걷고 싶은 길] 섬 속의 섬, 우도 올레
제주도에서 해가 가장 먼저 뜨는 곳, 우도. 제주도 최동단에 있는 '소섬'은 '작은 제주도'로 통한다.

에메랄드빛 바다, 검은 돌담, 굽이치는 유채와 억새, 드넓은 용암대지가 빚는 풍경이 제주도의 축소판인 양 수려하고 정겹다.

◇ 용암이 조금만 더 흘렀더라면 …

제주도에서 가장 큰 섬인 우도는 본도에서 지척이다.

서귀포시 성산포에서 2.2㎞, 제주시 구좌읍 종달리에서 2.8㎞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

제주 본도와 우도 사이 바다의 수심은 15∼20m에 불과하다.

섬머리인 쇠머리 오름에서 분출한 용암이 3㎞만 더 흘렀더라면 본도와 소섬은 연결됐을 것이다.

그러면 현재의 우도는 볼 수 없었을 것이다.

우도는 약 180만 년 전후에 쇠머리 오름의 폭발로 생성된 화산섬이다.

본도 생성 시기와 비슷하거나 약간 이르다.

하루 발품을 팔면 섬 한 바퀴를 돌아볼 수 있는 우도는 본도만큼 아름다우면서도, 그와는 다른 매력을 간직하고 있었다.

이는 우도 방문객 수에서도 드러난다.

제주를 찾는 내외국인은 연간 2천만여 명이다.

이 중 10분의 1인 약 200만 명이 우도를 찾는다.

[걷고 싶은 길] 섬 속의 섬, 우도 올레
◇ 화산 분화구와 검은 해안의 경이

가지런히 쌓아 올려진 화산재 단층으로 이루어진, 높이 100m가량의 해안 단애가 바다로 수직으로 떨어지는 절경이 숨 막힐 듯하다.

억새가 뒤덮은, 직경 1㎞의 분화구 위를 걸을 수 있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우도 올레가 선사하는 신비였다.

한국에 걷기 열풍을 달구고, 유럽 산티아고 순례길 못지않게 매력적인 제주 올레는 우도에서 시작한다고 과언이 아니다.

올레 1-1길이 우도에 조성돼 있다.

이 길은 대부분 해안을 따라가지만, 마을 안으로 들어가기도 한다.

우리는 올레길을 탐방하면서 마을로는 들어가지 않았고 해안을 따라 계속 걸었다.

총 17㎞인 우도 해안을 전부 걸은 셈이다.

우도 천진항에서 시작해 훈데르트바서 공원∼우도봉∼우도등대공원∼검멀레해수욕장∼비양도 입구∼하고수동해수욕장∼망루등대∼하우목동항∼홍조단괴해변(서빈백사·산호해변)을 거쳐 천진항으로 돌아왔다.

출발하자마자 우도해녀항일운동기념비, 지석묘, 방사탑이 나그네를 맞아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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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도 해녀들은 1932년 일제의 수탈에 맞서 대대적인 집단항일운동을 벌였다.

제주 전역에서 1만7천여 명의 해녀가 참여했고, 한국 최초, 최대의 여성연대 사회운동이었다.

'우리들은 제주도의 가엾은 해녀들/ 비참한 살림살이 세상이 알아/추운 날 무더운 날 비가 오는 날에도/저 바다 물결 위에 시달리는 몸' '아침 일찍 집을 떠나 황혼 되면 돌아와/어린아이 젖먹이며 저녁밥 짓는다/하루 종일 헤매었으나 버는 것은 기막혀/살자 하니 한숨으로 잠 못 이룬다'. '해녀의 노래' 1, 2절이다.

걷는 동안 물질하는 해녀들을 볼 수 있었다.

그들이 입수한 해변에는 주로 할머니들이 사용하는 보행기 4대가 서 있었다.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노인들이 한겨울에 물질이 웬 말인가.

김철수 우도문화관광해설사는 해녀들이 이런저런 지병을 앓고 있어도 "포기할 수 없는 삶의 일부가 물질"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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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멘, 고인돌로 불리는 지석묘는 제주도에 150여 기 분포한다.

우도 지석묘는 한반도 고인돌 문화가 제주를 거쳐 일본 규슈지역으로 전파된 경로를 보여준다.

검은 현무암으로 쌓는 방사탑은 마을의 무사 안녕을 기원하기 위한 것이다.

보통 하르방탑, 할망탑이 2기 1조로 세워진다.

훈데르트바서 공원은 색채마술사 훈데르트바서의 작품과 우도의 아름다움을 담은 테마파크이자 리조트로 친환경적인 공법과 자재로 지어졌다.

훈데르트바서는 구스타프 클림트, 에곤 실레와 함께 오스트리아 3대 화가이자, 제2의 가우디로 존경받는 건축가이며, 자연과의 공존을 꿈꾸었던 환경운동의 선구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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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도등대는 1906년 인천 팔미도 등대에 이어 국내에서 2번째로 설치됐다.

2003년까지 97년 동안 운영됐다.

검멀레해수욕장은 쇠머리 오름 아래 협곡에 숨어 있는 검은 모래 해안이다.

기이하고 장엄한 광경이었다.

제주에는 비양도가 2개 있다.

본섬 협재해수욕장 앞바다의 '서 비양도'와 우도의 '동 비양도'다.

두 비양도는 한라산을 가운데 두고 날개를 이뤄 제주도가 날아오르는 모양새를 만든다는 풀이가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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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두 섬 이름에 쓰인 한자는 서로 다르다.

우도 비양도는 파도 소리 가득한 '꿈의 캠핑장'으로 사랑받는다.

하고수동해수욕장과 홍조 단괴 해변은 검멀레와 대비되는 하얀 모래 해변이다.

특히 홍조 단괴 해변은 해양 조류 중 하나인 홍조류가 퇴적돼 형성된 것으로, 세계적으로 희귀한 지형이다.

홍조 단괴란 홍조류가 생리 과정에서 탄산칼슘을 축적해 돌처럼 단단하게 굳어졌다가 다시 모래처럼 잘게 부서진 것을 말한다.

과거에 이를 산호 부스러기로 착각해 산호 해변이라고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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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다에 솟은 이중 화산…쇠머리 오름

우도는 소가 누워있는 모양을 닮았다.

면적 6㎢로 여의도 면적의 약 3배, 길이 3㎞, 인구 1천700명 정도 된다.

화산 폭발 지점이 소의 머리에 해당하며, 이 폭발로 생긴 화산을 쇠머리 오름이라고 한다.

화산은 남쪽 끝에서 폭발했으며, 섬 전체가 하나의 수성화산체이다.

우도는 곧 쇠머리 오름이고, 쇠머리 오름은 곧 우도이다.

쇠머리 오름의 비고는 132m. 남쪽과 남동쪽 사면은 약 100m 높이의 단애이다.

분화구는 북쪽으로 터진 말굽형으로, 용암은 완만하고 길게 바다를 향해 북쪽으로 흘러갔다.

섬머리를 제외한 지형은 고도 30m 내외로, 펑퍼짐하다.

우도를 바다에 떠 있는 해상 평야라고 부르는 이유이다.

◇ 신기루처럼 떠오르는 '오름 왕국'의 신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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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도 매력의 최고봉은 한눈에 들어오는 본도의 경이였다.

왕관처럼 늠름한 성산일출봉이 동쪽 사면의 절경을 내보여주었고, 백설을 인 한라산 정상이 당당하게 드러났다.

우도에서는 제주도 동북단인 제주시 구좌읍 월정리부터 동남단인 서귀포시 성산포까지 제주도 동해안을 한꺼번에 조망할 수 있었다.

본도 동쪽 끝 오름인 지미봉이 제주 지킴이처럼 우람하게 서 있는 것을 우도에서 정면으로 관찰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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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미봉은 땅끝을 상징한다.

지미봉의 행정구역은 종달리(제주시 구좌읍)다.

'끝'을 뜻하는 지명이다.

'시작'이라는 의미를 이름에 담은 시흥리(서귀포시 성산읍)와 종달리는 경계를 맞대고 있다.

해안 마을들은 시흥리에서 시작해 시계방향으로 제주도를 한 바퀴 돈 뒤 종달리에서 끝난다.

제주의 시작과 끝이 만나는 지점인 지미봉 뒤로 '오름 왕국'이 환상처럼 펼쳐졌다.

※ 이 기사는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24년 2월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