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로의 껍데기로 시대의 속살을 조롱한 '영원한 협객' 이두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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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오동진 영화평론가
이두용의 영화를 피상적으로 접근하는 언론들은 그가 ‘피막’으로 베니스영화제에서 특별상을 받았고(1980) ‘여인 잔혹사 물레야 물레야’로 칸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 초청받은(1983) 사실을 주로 부각시키며 그를 한국에서 거의 최초로 해외 영화제에서 성과를 낸 감독 쯤으로 기술하고 있다.
“이거, 내가 찍었어?”
그가 한창 영화를 만들었던 196,70년대에는 일명 ‘가께모찌’가 유행이었다. 겸직이라는 뜻의 일본 말로 한번에 두 세편의 영화를 동시에 찍는 것을 말했다. 아마도 ‘왼발 시리즈’가 그런 작품이었던 모양이다.
그는 시리즈의 제왕이었고 어쩌면 지금과 같은 넷플릭스 시대의 사람이었다면 꽤나 성공해서 굉장한 두께의 돈방석에 앉았을 것이다. 그의 숱한 협객 무술영화 시리즈, 전영록 주연의 ‘돌아이’ 시리즈는 앞으로도 언제든지 유쾌하게 기억되고 소환될 것이다.
“그거 알아 동진씨. 그 큰 배가 원산에서 납치돼 대동강에서 나타났어. 당시 우리 정보에 따르면 푸에블로호가 됐든 뭐가 됐든 동해에서 서해로 가려면 남해를 거쳐야 하는데 그런 흔적이 없었대. 어떻게 육로를 동서 횡단을 한 걸까. 그것도 배가. 이 얘기 재밌지 않아?”
자, 그렇다면 푸에블로호 나포 사건 얘기는 내가 만들어야 하는 것일까. 아 그 큰 짐을 왜 내게 맡기고 가시는 것일까. 짖궂은 노친네같으니라구. 잘 가세요 사랑했던 늙은이. 이 영화 얘기는 다시 뵐 때 또 하기로 하지요. 페어웰, 나의 감독님. / 오동진 영화평론가
[에필로그] '피막' 속으로 떠난, 이두용 감독의 마지막 대화
기침이 너무 잦으셨다. 기관지가 문제였다. 자주 사래가 걸리셨고 한번 기침이 나오면 멈추기가 힘들었다. 그리고 코로나19에 걸렸다. 그렇다. 그게 문제였다. 직접적인 사인은 폐암이라고 했다. 극도로 약해진 기관지를 타고 바이러스는 폐를 공격했을 것이다. 언젠가 통화했을 때 그가 말했다.
“내가 코로나에 걸렸잖아. 그것 때문에 병원을 다녀. 아휴 죽겠어.”
“동진씨가 알아서 잘해 줘요.”
그때 그의 힘없는 목소리를 알아 차렸어야 했다. 아니 어느 정도는 감을 잡았었다. 그러나 그 순간이 이렇게 빨리 올 줄은 몰랐다. 천추의 한이다.
놀랍고 기이하며 이건 무슨 하늘의 뜻인가 라는 심정이 드는 것이 그의 죽음을 예고한 것인 양 그의 마지막이 될 영화 행사를 ‘피막’으로 준비했다는 점이다. 피막은 전염병 환자들을 수용하는 공간과 바깥 세상을 구분하는 일종의 바리케이드이다. 거기엔 피막지기라는 직종의 사람이 그 안과 밖의 경계를 지킨다.
이두용 감독은 자신이 만든 영화 '피막'의 스토리처럼 피막 밖에서 스스로 피막 안으로 들어 가서 생을 마감했다. 영화에서 주인공 피막지기 역을 했던 남궁원 선생도 지금 건강이 극히 안좋으신 것으로 알려져 있다. 피막의 주인공들 모두 세상을 등졌거나 끝에 가 있다는 얘기다.
지금에 와서야 이상한 계시같다고 얘기하는 것도 경을 칠 일이다. 그냥 그건 수사학이고 말 만들기의 재미 같은 것에 불과하다. 그냥 그보다는 그의 전설적인 작품 ‘피막’을 다들 기억하고, 또 기억하고, 또 기억해서, 길이 남기기를 바랄 뿐이다.
<이두용 감독의 필모그래피>
사기한 미스터 허 (1967, 각본)
미워도 다시 한번 (1969, 조연출
잃어버린 면사포 (1970)
댁의 아빠도 이렇습니까 (1971)
형2 (1971)
죄 많은 여인 (1971)
어느 부부(1971)
날벼락 (1971)
야오귀 (1971)
어디로 가야 하나 (1971)
웃고 사는 박서방 (1972)
가지 마오(1971)
아낌없이 바치리 (1972)
체포령(1973)
홍의 장군 (1973)
용호대력(1974)
죽엄의 다리 (1974)
작은 새 (1974)
돌아온 외다리 1,2 (1974)
분노의 왼발(1974)
배신자(1974)
무장 해제(1975)
사생결단 (1975)
병태의 감격시대 (1975)
흑야 (1975)
아메리카 방문객 (1976)
비밀객2 (1977)
뉴욕 44번지 (1977)
초분 (1977)
생사의 고백(1978)
선배(1979)
오빠가 있다(1979)
물도리동(1979)
경찰관(1979)
지옥의 49일(1979)
우산 속의 세 여자 (1980)
최후의 증인(1980)
쌍웅(1980)
귀화산장(1981)
피막(1981)
해결사(1982)
욕망의 늪(1982)
이상한 관계(1983)
여인 잔혹사 물레야 물레야 (1984)
낮과 밤(1984)
장남(1985)
돌아이 (1985)
뽕(1986)
돌아이 2(1986)
내시(1986)
고속도로 (1987)
업 (1988)
뽕2(1988)
침묵의 암살자 (1989)
청송으로 가는 길 (1990)
흑설(1991)
연애는 프로 결혼은 아마추어 (1994)
위대한 헌터 G.J. (1995)
아리랑 (2003)
말보로 전쟁(2009, 제작고문)
마스터 클래스의 산책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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