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꿈은 기업가] 세계 전기차 시장의 새로운 강자 BYD 창업자 왕촨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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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 잃은 소년
BYD를 세운 왕촨푸 회장은 1966년 중국 안후이성 우웨이현에서 2남 6녀 중 일곱째로 태어났어요. 부모님까지 10명의 대가족이라 형편이 넉넉하진 않았어요. 그런데 13세에 아버지가 병으로 세상을 떠나면서 집안 형편은 급속히 어려워졌어요. 불행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왕촨푸가 15세 되던 해 어머니마저 돌아 가시고 말았어요. 슬픔에 잠긴 왕촨푸는 자신도 학교를 그만두려고 했어요. 하지만 형은 “너는 똑똑하고 공부를 잘하니까 집안을 위해서 공부해야 한다. 아무리 힘들어도 네 뒷바라지를 할 거야”라고 말했어요. 어려서부터 왕촨푸는 ‘남보다 더 열심히, 잘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배터리의 미래 가치
왕촨푸는 중난 공업대학교 금속물리 화학과에 입학했습니다. 그는 1987년 우수한 성적으로 대학을 졸업한 뒤 베이징 비철금속연구소라는 곳에 연구원으로 취직했어요. 이곳에서 그는 배터리를 연구하며 두각을 나타냈습니다. 하지만 마음 속에서는 ‘내 회사를 만들어 큰돈을 벌고 싶다’는 생각이 꿈틀대기 시작했어요.당시 세계적으로 휴대폰이 막 퍼지던 시기였어요. 휴대폰에는 니켈-카드뮴 배터리(이차 전지)가 들어가는데, 일본 회사들이 시장을 꽉 잡고 있었지요. 그런데 마침 일본 정부가 환경 문제 등을 이유로 카드뮴을 규제하자 일본 회사들이 배터리 생산을 그만두기 시작했어요. 왕촨푸는 이 틈을 파고들었어요.
1995년 그는 사촌 형에게 빌린 돈으로 선전에 배터리 전문 회사를 세웁니다. 회사명 BYD는 ‘Beyond Your Dream(너의 꿈을 넘어서)’이란 의미라고 해요. 일본 제품을 그대로 모방해 저렴한 가격으로 배터리를 생산했어요. 파나소닉과 소니, GE(제너럴 일렉트릭) 등 글로벌 회사들을 고객으로 확보하며 성장했습니다.
도전하고 밀어붙이다
2003년 왕 회장은 또 다른 변신을 꾀합니다. 망해가던 친촨 자동차를 인수한 거예요. 처음에는 일본의 도요타 자동차를 가져와 그대로 베껴 만들었어요. “저 렴한 짝퉁”이라고 조롱받자, 기존의 내연 기관차 대신 전기차로 눈을 돌립니다. 당시만 해도 테슬라가 설립되긴 했어도 글로벌 자동차 회사들이 본격적으로 전기 차에 관심을 두진 않았거든요. 그는 충전 해서 달려야 하는 전기차에서 배터리가 핵심 부품이라고 생각했어요. BYD는 배터리 회사니까 강점이 있다고 본 거예요.행운과 정부 지원도 따랐어요. 미국의 워런 버핏이 이끄는 투자 회사(버크셔 해서웨이)가 2008년 약 2870억 원어치의 BYD 주식을 사들이며 대대적인 투자를 했어요. 2011년에는 중국 정부가 BYD와또 다른 중국 회사(CATL)를 주요 배터리 회사로 밀어줬고, 이후 시내버스와 택시 등을 BYD가 생산한 전기차로 교체하기도 했어요.
BYD는 배터리는 물론이고 모터, ECU(제어 장치) 등 전기차에 들어가는 핵심 부품을 모두 직접 생산해 비용을 아낄 수 있었어요. 이런 전기차 회사는 BYD가 유일합니다. 다른 나라보다 저렴한 중국의 인건비, 중국에서만 판매해도 엄청난 양을 팔 수 있는 큰 내수 시장, 중국 정부의 전기차 지원…. BYD의 성공에는 여러 요소가 있어요. 무엇보다 주당 70시간을 일할 정도로 사업에 몰두했던왕 회장의 성실함과 ‘해내고야 말겠다’는 강한 집념은 BYD를 세계 최대 전기차 회사로 키워 낸 가장 큰 원동력입니다.
by 문혜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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