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선 부회장 "HD현대는 SW기업…건설의 법칙 바꿔놓을 것"
“HD현대의 ‘업(業)의 본질’이 제조업에서 소프트웨어 제공 업체로 바뀌고 있습니다.”

정기선 HD현대 부회장(사진)은 10일(현지시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IT·가전 전시회 ‘CES 2024’ 기조연설에서 이렇게 말했다. 국내 비(非)정보기술·가전기업이 CES에서 기조연설을 한 건 정 부회장이 처음이다.

그는 “건설산업은 인류 문명의 토대를 마련했지만 기술과 혁신에 있어 가장 느린 행보를 보이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미국 내 작업장 사망사고 다섯 건 중 약 한 건이 건설업계에서 발생했다는 걸 근거로 들었다. 미국 경제의 총생산성이 지난 50년간 두 배 성장한 반면 건설산업 생산성은 오히려 절반 수준으로 떨어진 점도 언급했다.

정 부회장은 “식량, 보건, 환경, 기술에 이르기까지 인류의 안전은 건설 방식과 연관됐다”며 “이를 혁신하지 않고서는 미래를 바꿀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어 “인공지능(AI)과 디지털, 로봇 등 첨단기술이 더해진 HD현대의 ‘사이트(Xite)’ 혁신은 건설을 넘어 인류가 미래를 건설하는 근원적 방식을 변화시킬 것”이라고 덧붙였다.

사이트는 물리적인 건설 현장을 의미하는 ‘Site’를 확장한 개념이다. 건설장비 무인·자율화, 디지털 트윈, 전동화 등 미래 기술을 활용해 건설 현장을 스마트하게 탈바꿈하겠다는 의미다.

정 부회장은 이 자리에서 장비 운용의 안전성과 효율성을 극대화해 무인자율 작업에 이르게 하는 AI 플랫폼 ‘X 와이즈’를 공개했다. 머신 가이던스(MG), 머신 컨트롤(MC) 기능을 통해 숙련공의 작업 패턴을 학습해 기계가 알아서 작업하는 방식이다. 통상 중장비 기술자는 면허를 따도 5년 이상 조수로 일하며 일을 배워야 하는데, 이 기술을 적용하면 단숨에 ‘10년 숙련공’처럼 일할 수 있다고 회사 측은 설명했다. 이날 HD현대가 선보인 ‘X 와이즈 사이트’는 이런 기술이 적용된 건설 장비들을 실시간으로 연결해 최적의 생산 인프라를 구축하는 현장 관리 솔루션이다.

정 부회장은 “HD현대의 업의 본질이 하드웨어 기반 장비 제조업에서 소프트웨어 기반 솔루션 제공 업체로 진화했다는 걸 보여주는 기술들”이라고 했다. 정 부회장의 기조연설 이후 사우디아라비아 정부 관계자도 무대에 올라 협력을 확대할 것을 예고했다. 가다 알라무드 사우디아라비아 산업자원부 국제관계 자문위원은 “HD현대의 차세대 건설 장비와 현장 운영 솔루션이 ‘사우디 비전 2030’ 추진 속도를 가속화하는 데 큰 역할을 할 것이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HD현대건설기계는 최근 사우디로부터 굴착기 100대를 수주했다.

라스베이거스=김형규 기자 k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