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과일을 사 먹기가 겁난다는 사람이 많다. 작년 가을 사과와 배 작황이 나빠 가격이 1년 전보다 30%나 오른 탓이다. 딸기도 초겨울 출하량이 줄어 작년보다 20% 정도 비싸졌다. 농산물 가격은 오를 때 크게 오르고 내릴 때도 큰 폭으로 내린다. 생산량이 평년보다 많아지면 가격이 폭락해 농민들은 인건비도 못 건진다며 수확을 포기하고 밭을 갈아엎는다. 그런 점에서는 차라리 흉년이 드는 것이 농민들에게 더 나은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농산물 가격 변동 폭이 유독 큰 이유는 무엇인지, 농민들에게는 정말 풍년보다 흉년이 좋은 것인지 살펴보자.
金사과·金딸기…농산물값은 왜 널뛰기를 할까

농부는 풍년을 바라지 않는다?

일반적인 상품은 가격이 오르면 수요가 줄고 공급이 늘어난다. 반대로 가격이 내리면 수요가 늘고 공급은 줄어든다. 가격에 따라 수요·공급이 변화하면서 가격 변동 폭을 줄이는 역할을 한다.

농산물 시장에선 이런 메커니즘이 잘 작동하지 않는다. 농산물은 수요와 공급 모두 가격탄력성이 작다. 가격이 변동하는 폭에 비해 수요·공급이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예를 들어 쌀값이 비싸졌다고 해서 사람들이 갑자기 하루 세 끼 식사를 두 끼로 줄이지는 않는다. 쌀값이 내렸다고 해서 밥을 한 공기씩 더 먹지도 않는다. 공급 측면에서도 마찬가지다. 사과 가격이 올랐다고 해서 과수원에서 당장 사과 수확량을 늘릴 수는 없다. 사과나무를 심고 키우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이렇게 가격탄력성이 작은 상품은 공급이 약간만 늘거나 줄어도 가격이 급등하거나 급락한다.

이런 이유로 발생하는 현상이 ‘농부의 역설’ 또는 ‘풍년의 역설’이다. 풍년이 들면 농산물 가격이 내려간다. 하지만 가격이 하락하는 데 비해 수요는 별로 증가하지 않아 농민의 소득은 오히려 줄어들 수 있다. 흉년도 역설적인 결과를 낳는다. 흉년에는 농산물 공급이 줄어 가격이 급등하는데 수요는 별로 감소하지 않아 농민의 소득은 증가할 수 있다.

장기적으로는 농산물도 약간의 탄력성을 갖는다. 어느 작물의 가격이 크게 오르면 이듬해 그 작물 생산량이 늘어나는 경향이 있다. 농민들이 소득 증가를 기대하고 전년도에 가격이 비쌌던 작물 재배 면적을 늘리는 것이다.

농부가 농사를 열심히 짓는 이유

농업 기술 발달도 농부의 역설과 비슷한 결과를 낳는다. 품종 개량과 재배 기술 발달로 생산량이 증가하면 농산물 가격이 하락해 농민들에겐 손해가 될 수 있다. 그렇다고 농업 기술을 발전시키지 말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농업 기술이 발달한 덕분에 더 좁은 땅에서, 더 적은 인력으로, 더 많은 농작물을 생산할 수 있게 됐다. 그렇게 해서 남은 자원을 농업보다 생산성이 높은 산업에 투입하는 것이 국가 경제에 이익이다.

농부의 역설이 발생하는데도 농민들은 생산량을 늘리려고 노력한다. 그것은 농산물시장이 완전경쟁시장에 가깝기 때문이다. 완전경쟁시장에서 개별 공급자는 가격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어느 한 농민이 생산량을 줄인다고 해서 농산물 가격이 상승하지는 않는다는 얘기다. 가격은 그냥 주어져 있는 것으로 봐야 한다. 개별 농민 입장에선 주어진 가격에서 최대한 많이 생산해 판매하는 것이 이득이다.

풍년이 농민에게 별로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있지만 그렇다고 흉년이 농민에게 꼭 이익이 되는 것도 아니다. 태풍이나 집중호우로 농작물이 큰 피해를 봤다면 농산물 가격이 올라도 개별 농민은 내다 팔 작물이 없어 소득이 급감할 수 있다.

농민이냐, 소비자냐

농산물 가격이 급등락할 때마다 정부는 가격을 안정시키기 위해 대책을 내놓는다. 하지만 정부 정책은 농민과 소비자 사이에서 종종 딜레마에 처한다. 농산물 가격 하락은 소비자에게 좋은 일이다. 그러나 정부는 농산물 가격이 지나치게 떨어진다 싶으면 해당 품목에 대해 시장 격리 조치를 한다. 공급을 줄여 가격 하락을 막는 것이다.

농산물 가격이 크게 오르면 정부는 수입을 늘리거나 비축 물량을 시장에 푼다. 이에 따라 농산물 가격이 내려가면 농민들의 소득은 감소한다. 결국 농민을 위한 정책은 소비자에게 불리하고, 소비자에게 유리한 정책은 농민에게 손해를 끼칠 수 있다.

농산물의 비탄력적인 성격이 바뀌지 않는 한 농부의 역설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농산물 가격을 안정시키기 위한 정부 정책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유승호 경제교육연구소 기자 ush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