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복현 금융감독원장. /금융감독원 제공
이복현 금융감독원장. /금융감독원 제공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9조원대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금을 갚지 못해 워크아웃(기업구조개선)을 신청한 태영건설이 밝힌 자구안에 대해 "채권단 입장에서 보면 (태영건설이) 자기 뼈를 깎아야 하는데 남의 뼈를 깎는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 원장은 4일 여의도 금감원에서 열린 '신년인사회'에서 "채권자의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한 오너일가의 자구책이 워크아웃에선 가장 중요한데, 첫 단추부터 약속이 지켜지지 않은 점에 대해 본인들이 어떤 입장을 가지고 있는지 답을 해야 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앞서 태영그룹은 계열사 태영인더스트리 매각자금 2400억원을 상거래채권 결제 대신 알짜 계열사 SBS를 보유한 티와이홀딩스 채무보증 해소에 쓰면서 워크아웃 이행 의지가 부족한 것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다.

당시 금융당국과 채권단은 이 돈이 지난달 29일 만기 도래한 1485억원 규모의 협력업체 상거래채권 결제에 쓰일 것으로 알고 있었지만 태영그룹 측은 상거래채권 가운데 외상매출담보 채권대출(외담대) 451억원을 갚지 않았다.

이에 대해 태영건설은 451억원어치는 협력사가 이미 은행에서 할인받은 어음이라서 상거래채권이 아닌 금융채권이 됐다는 입장이다. 워크아웃 신청과 동시에 기업구조조정촉진법(기촉법)에 따라 상환이 유예됐다는 취지로 풀이된다.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의 강석훈 회장도 이 부분과 관련해 "태영 측과 신뢰가 상실된 케이스"라고 비판했다.

이복현 원장은 "'태영건설의 자구계획이 아니라 오너일가의 자구계획 아닌가 싶은 정도'라는 게 채권단의 생각이라고 전해 들었다"며 "매각자금이 상거래채권 결제에 쓰이지 않고 오너일가가 지분을 가지고 있는 회사의 채무보증 해소에 투입된 상황을 보면 약속을 안지킨 것은 핑계에 불과하다"고 쏘아붙였다.

다만 그는 "지금과 같은 기촉법 아래에선 금융당국이 마중물 같은 보조적 역할을 하는 것이지 채권단에 워크아웃에 동의해라 말라 이렇게 얘기할 수 없다"며 "자구안이 부족한 것을 넘어 이해당사자간 대화 같은 기본적인 상황조차 지켜지지 않고 있는 것이 걱정"이라고 말했다.
지난 3일 오후 태영건설의 워크아웃(기업재무구조개선) 신청 관련 채권단 설명회가 열린 서울 산업은행 본점에 관련 안내가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3일 오후 태영건설의 워크아웃(기업재무구조개선) 신청 관련 채권단 설명회가 열린 서울 산업은행 본점에 관련 안내가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시장에서는 만일 태영건설의 워크아웃이 무산된다면 법정관리를 받아야 하는데 이 경우 협력업체 공사대금 등 상거래채권까지 모든 채권이 동결되면서 분양계약자와 500여개 협력업체의 피해가 커지게 되고 나아가 국가 경제의 뇌관으로도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당장 태영건설을 워크아웃으로 내몬 PF 자산유동화기업어음(PF-ABCP) 물량 중 절반이 넘는 20조원가량이 올 1분기 중 만기가 도래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 이 원장은 "PF-ABCP 단기자금 시장과 관련해선 상당 기간 모니터링 중으로 당장은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수준"이라며 "특정 기업의 워크아웃과 상관 없이 자금시장 관련해선 자신감도 있고 (대응방안이) 많이 준비돼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당국은 선제적이고 과도한 조치를 넘치도록 한다는 견지로 시장안정화 조치를 준비하고 있다"며 "협력사와 수분양자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관계기관과 다양한 대응 방안을 강구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대규모 손실이 예고된 홍콩항셍중국기업지수(홍콩H지수) 주가연계증권(ELS)과 관련해서도 이 원장은 "은행이 ELS 판매 과정에서 형식적인 게 아니라 실효적으로 소비자들에게 설명을 했는지 의문"이라며 "현장검사에 신속하게 착수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노정동 한경닷컴 기자 dong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