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킨지가 지난달 내놓은 ‘한국의 다음 상승 곡선(Korea’s next S-curve)’이란 보고서는 충격적이다. 10년 전 한국 경제를 서서히 가열되는 ‘냄비 속 개구리’에 비유해 주목받은 맥킨지는 이번엔 “냄비 속 물 온도가 더 올라갔다”고 경고했다. 그 이유로 노동 생산성 감소와 국가 기간산업의 글로벌 경쟁 심화를 꼽았다. 물 온도가 내려가기만 기다릴 게 아니라 개구리를 꺼내 더 큰 무대에서 맘껏 뛰어놀게 할 틀을 짜야 한다고도 했다.

개구리를 구해낼 힘은 기업의 전방위 혁신에서 나와야 한다. 경쟁국에 뒤처진 생산성을 끌어올리고, 주력 산업을 고도화할 주체는 기업이기 때문이다. 맥킨지의 경고가 아니더라도 갑진년을 맞은 한국 기업은 ‘도약이냐, 쇠락이냐’의 중대한 갈림길에 서 있다. 지난해 복합위기 속에서 그나마 선전했다는 평가에 만족해선 안 된다. 혁신 성장 역량을 갖추고 있느냐에 따라 위기도 기회가 된다는 것을 선도 기업들은 증명해왔다. 인공지능(AI) 혁명의 파도에 올라탄 엔비디아, 마이크로소프트 등 미국 빅테크 기업들이 이룬 성과가 이를 보여준다.

안타깝게도 각종 통계는 한국 기업과 산업에 위기 신호를 보내고 있다. 무엇보다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에서 지난해 수출이 7.4%나 줄었다. 수출 감소는 일시적일 수 있지만, 한국의 세계 시장 점유율 하락이 추세적으로 굳어지고 있다는 게 심각하다. 2014년(3.02%) 처음으로 3%를 넘어서 2017년(3.23%) 역대 최고치를 기록한 한국의 세계 수출시장 점유율은 코로나19가 확산하기 시작한 2019년 2%대로 떨어지더니 2022년(2.74%)까지 하락했다. 아직 정확한 통계가 나오지 않았지만, 미·중 전략 경쟁이 격화하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여파가 세계 경제를 짓누른 지난해에도 하락세를 반전시키지 못했을 것이란 분석이 우세하다.

메모리 반도체 강국인 한국이 비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선 3%대 초반의 점유율 늪에 빠진 게 대표적이다. 미국, 유럽, 대만은 말할 것도 없고 일본의 3분의 1, 중국의 2분의 1 수준이다. 시스템 반도체 및 팹리스 산업에 대한 지원 정책에도 불구하고 세계 시장의 벽은 높기만 하다. 제2의 반도체로 꼽히는 2차전지 점유율은 성장 속도에서 중국 CATL, BYD 등에 뒤처진 영향으로 감소세로 돌아섰다. 리튬·인산철(LFP) 배터리를 앞세워 내수에서 세계로 눈을 돌린 중국 기업의 기세가 무섭다. LG에너지솔루션, SK온, 삼성SDI 등 한국 배터리 3총사의 점유율은 더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 한국 경제의 버팀목 역할을 하는 자동차 역시 추격을 넘어 추월하려는 중국의 거센 도전에 직면했다.

산업구조 개편도 지지부진하다. 그동안 우리 주력 산업은 핵심 자원이 일사불란하게 작동할 수 있는 수직계열화를 통해 성공 스토리를 써왔다. 이런 전략의 효용성을 부정할 수는 없겠지만, 산업 간 경계가 허물어진 융복합 시대엔 창조적 협업이 성패를 가르는 경쟁력의 근원이 된다. 한국 조선업의 차세대 먹거리인 자율운항 선박만 해도 자율주행, 사물인터넷, 빅데이터, 첨단센서 등 다양한 첨단기술의 결합이 필수다. 기존의 자동차 제조 능력에 배터리, 전장, 반도체 기술력이 더해져 고도화하는 전기차 양산 경쟁도 마찬가지다.

되풀이 강조하지만, 기업의 기술 혁신과 생산성 향상 외엔 답이 없다. 기업 내부의 구태와도 결별해야 한다. 상명하복이 아니라 자율과 창의가 충만한 조직 문화를 확산하되, 성과를 낸 ‘창조적 파괴자’들에겐 파격적 인사와 보상이 뒤따라야 한다. 그래야 혁신이 혁신을 부르는 선순환이 조직 깊숙이 자리 잡는다. 누구보다 혁신을 진두지휘할 한국 대표 기업 최고경영자(CEO)들의 어깨가 무겁다. 혁신은 위험을 끌어안는 데서 시작된다. 가장 큰 위험은 혁신을 거부하는 것이다. 퇴로가 없는 ‘대한민국호’를 구해낼 원동력은 기업의 과감한 변화를 통해 솟구쳐 나와야 한다. 기업이 혁신할 자유를 온전히 누리는 한 해가 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