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에서 큰 인사가 있었어요. 그룹의 최고 의사결정 기구인 수펙스추구협의회를 이끄는 조대식 의장을 비롯해서 박정호, 김준, 장동현 부회장이 한꺼번에 바뀐 것인데요. 이 분들은 '부회장 4인방'이라고 해서, SK의 실세였죠. 이 분들의 힘을 뺐다는 건, 뭔가 SK가 위기 의식 같은 게 있어서겠죠.
최태원 SK 회장의 한숨...해결사 최창원 등판 [안재광의 대기만성's]
아니, SK에 위기라니. SK, 잘 나가는 것 아니었어? 이렇게 생각하실 분도 많을텐데. 요즘 각광받고 반도체와 배터리. SK가 이걸 다 갖고 있지 않습니까. 하이닉스는 삼성전자에 이은 메모리 반도체 세계 2등이고, 전기차 배터리는 글로벌 톱 5에 들고요. 남들 다 부러워하는 사업을 하는데, 잘했다고 칭찬해도 모자랄 판에 웬 숙청인가 싶죠. 하지만, 내부를 들여다 보면 진짜 위기가 맞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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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더 중요한 포인트가 있습니다. 아까 제가 그룹 최고 의사결정 기구 수펙스추구협회 의장이 날아갔다고 했잖아요. 그럼 이 자리에 누굴 앉혔느냐. 최태원 회장의 사촌 동생인 최창원 부회장 입니다. 권력은 부모 자식 간, 형제 간에도 안 나눈다는데. 대체, SK 위기의 실체는 무엇인지. 글리고 이번 숙청과 사촌 형제 간 경영의 의미가 뭔지 알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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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SK 최고 권력자로 올라선 최창원 부회장이 누구인가를 알아야 이번 인사의 의미가 파악 됩니다.최창원 부회장의 부친이 바로 SK의 창업주인 최종건 회장입니다. 아니, 뭐야. SK 창업주는 최태원 회장 아버지가 나와야 하는 것 아닌가. 자, SK 족보를 한번 볼게요. 최종건 회장이 SK를 1953년에 세웠고요. 1973년 40대 중반의 나이에 세상을 뜹니다. 자식들이 당시에 너무 어렸어요. 최창원 부회장도 9살이었죠.

그래서 '자연스럽게' 동생인 최종현 회장이 경영권을 이어 받습니다. 그리고 그룹을 엄청나게 키워요. 특히 1980년대 대한석유공사, 지금의 SK이노베이션이죠. 또 1990년대 중반 한국이동통신, 지금의 SK텔레콤을 인수한 게 컸습니다. 특혜다, 뭐다 논란은 많았지만 어쨌든 SK가 굴지의 대기업이 된 게 이 두 회사를 인수했기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닙니다. 그런데, 최종현 회장도 1998년, 68세의 나이로 비교적 일찍 세상을 뜨죠. 두 분 모두 사인은 폐암이었어요.

자, 그럼 이제 회사를 누가 가져가야 하나. 여기서부터 남겨진 2세들의 고민이 시작됩니다. 우선 창업주 최종건 회장의 자녀들을 보시죠. 삼남 사녀, 7명이 됐죠. 남자 분들 삼형제 가운데 장남 최윤원 회장은 몸이 좀 안 좋았다고 해요. 그래서 2000년에 돌아가셨어요. 아무튼 그래서 빼고. 그럼 최신원 회장과 최종건 부회장 둘 남습니다. 최신원 회장은 당시 45세, 최창원 부회장은 34세. 최종현 회장 쪽도 보시죠. 여긴 소박하게 2남 1녀를 뒀는데, 장남이 최태원, 지금 SK 회장이죠. 차남이 최재원, 현재 부회장이죠. 당시 나이는 각각 38세와 35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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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론 최신원 회장이 하는 게 맞는데, 최신원 회장은 경영 능력에 다소, 혹은 많은 의문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럼 나이만 보면 다음이 최태원 회장인데, 그래봐야 최창원 부회장과 네 살 밖에 차이가 안나고요. 좀 애매해죠. 그래서 SK는 어떻게 하느냐. 고민 끝에 전문 경영인을 내세웁니다. 손길승 회장이죠. 샐러리맨의 신화, MB만 있는 게 아니에요.

하지만, 결국엔 최태원 회장이 왕권을 잡게 됩니다. 아무래도 최종현 회장이 집권한 직후였니까, 최종현 회장 쪽 힘이 더 강했겠죠. 자, 그럼 최신원, 최창원 형제의 심정은 어땠을까요. 아버지가 세운 회사인데, 사촌이 가져갔으니. 뭐, 유쾌하진 않았을 듯 해요.

이후에 두 사람은 극명한 차이를 보이는데요. 최신원 회장은 본인의 '장자 타이틀'을 내세워서, 사고를 치고 다닙니다. 쉽게 말해서 회삿돈을 자기 돈처럼 막 쓰고, 자신과 친분이 있는 사람을 고문으로 영입해서 회사 월급도 주고. 여러 기행을 일삼다가 결국에는 문제가 터져서 지난해 1월 재판에 넘겨졌고, 실형을 선고받는데 이르죠. 이후엔 경영에서 배제됐어요.

반면에 동생인 최창원 부회장은 착실하게 계열사에서 경영 수업을 받고 실력을 키웁니다. "맡겨진 일을 정말 잘 한다"는 좋은 평가를받습니다. 그러다가 2007년에 SK케미칼 대표로 취임하고, 무려 10여년 간 이 회사를 경영을 맡습니다. 또 2011년에는 SK가스 대표에도 오르죠.

최창원 부회장이 맡은 뒤에 SK케미칼, SK가스는 완전히 다른 회사가 됩니다. 우선 케미칼을 보시죠. 원래 사업은 섬유였는데, 바이오 회사로 탈바꿈 시킵니다. 특히 백신 개발에 수 천억원을 쏟아 붓는데요. 원래 제약 사업을 했던 회사도 아닌데 많은 돈을, 그것도 10여년 간 지속적으로 투자하는 큰 결단을 내리게 됩니다.

그리고 2016년 드디어 성과를 내죠. 세계 최초의 4가 세포배양 독감 백신 '스카이셀플루4가' 개발에 성공하고요. 이듬해인 2017년에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대상포진 백신도 내놓습니다. 이렇게 성과가 하나둘 나오니까 SK케미칼은 2018년에 바이오 사업부를 떼어내서 SK바이오사이언스란 이름으로 독립을 시켜요. 어디서 들어보셨죠? 네, 맞습니다. SK바사로 줄여서도 부르는데. 역대 최고의 공모주로 중 하나로 꼽히기도 하죠. '따상'의 대명사가 되기도 했습니다. SK바사가 아스트라제네카, 노바벡스 같은 글로벌 제약사로부터 코로나 백신을 위탁 생산하는 역할을 해서 엄청난 주목을 받았으니까, 증시에서 이런 열기는 어찌 보면 당연했던 것이죠.
최태원 SK 회장의 한숨...해결사 최창원 등판 [안재광의 대기만성's]
SK가스도 엄청 달라졌죠. 이 회사는 원래 LPG를 해외에서 들여와서 유통하고 판매하는 게 주된 사업인데요. E1하고 과점하고 있죠. 그런데 LPG 유통만 갖고 기업을 키우는 게 한계가 있다고 판단합니다. LPG는 액화석유가스, 그러니까 석유에서 뽑아낸 가스인데요. 국내에서 주로 1톤 LPG 트럭의 연료나 산업용으로 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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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엔 일반 가정집이나 장사하시는 치킨집, 중국집 같은 곳에서 LPG를 많이 썼는데요. LPG 가스통 배당하는 분들 엄청 많았잖아요. 그런데 요즘은 액화천연가스, LNG라고 하죠. 이건 말 그대로 천연가스에요. 자연에서 뽑아낸 것이죠. 이걸로 다 대체됐어요.

그래서 SK가스는 LPG로 뭘 할 수 있을까 보다가, 이걸 플라스틱 만드는 원료로 써보자 하고 2013년 사업 다각화를 합니다. 플라스틱 원료가되는 에틸렌, 프로필렌 이런 소재는 원래 석유 정제할 때 나오는 나프타, 납사라고도 하죠. 나프타를 주된 재료로 쓰는데요. LPG도 수소를 떼어 내면 프로필렌이 됩니다. 이걸 프로판탈수소화, PDH라고 하는데요. 이 사업을 전문으로 할 SK어드밴스를 세워서 2016년부터 프로필렌 생산에 들어갑니다. 그리고 첫 해 600억원, 2017년 700억원, 2018년 900억원 이렇게 이익을 늘려가면서 효자 사업이 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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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 뿐만이 아니라 울산에 LNG와 LPG를 동시에 연료로 쓸 수 있는 발전소를를 짓고 있는데요. 이게 2024년 하반기 가동 예정이에요. LNG와 LPG가 같은 가스 같아 보여도, 가격 차이가 좀 있거든요. 그래서 LNG 비싸면 LPG를 떼고, LPG 비싸면 LNG를 쓰고. 이런 게 가능해지죠. 발전소가 돌아가기 시작하면 연간 매출 1조원, 이익 2000억원 이상이 발생할 것으로 회사 측은 기대하고 있습니다. 이 발전소 사업을 위해서 울산에 대규모 LNG 탱크와 접안시설까지 짓고 있고요.
최태원 SK 회장의 한숨...해결사 최창원 등판 [안재광의 대기만성's]
청정 에너지로 꼽히는 암모니아 사업도 여기서 추진하고. 뭐 하는 게 엄청 많아요. 아무튼, 정리하면, SK케미칼과 SK가스는 최창원 부회장이 맡아서 완전히 다른 기업이 됐고, 엄청나게 커졌다는 겁니다.

최창원 부회장이 이렇게 사업들을 키워 놓으니까, 최태원 회장은 어떻게 하느냐. SK케미칼과 가스를 떼어서 줍니다. "너가 사업 키웠고, 경영 능력을 입증했으니 그건 니거다" 뭐 이런 식이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현재 지분 구조로 보면, 최창원 부회장이 SK디스커버리란 지주사를 통해 SK케미칼, SK가스 등등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SK디스커버리는 최창원 부회장 지분이 40%가 넘어서 단독 최대주주이고요. 최태원 회장의 SK와는 지분 관계가 거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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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SK에서 계열 분리가 되지 않겠느냐, 하는 합리적인 예상이 나오고 있었는데, 그런데 별안간 자기 왕국 대신 챙기느라 바쁠텐데, 사촌 형의 왕국에 들어가서 왕 까진 아니고, 총리 정도 맡은 겁니다.

그러니까 최창원 부회장이 잘 알려지지 않아서 그렇지 SK 2세 경영자 사이에서 경영 능력은 대단히 높다는 평가가 중론이고요. 여기에 인품도 굉장히 좋은 것을 알려지고 있어요. 최태원 회장이 단순히 사촌동생이라, 아니 사촌동생인데도 불구하고가 보다 정확한 표현이겠네요. 권력을 줘도 배신하지 않고, 회사도 살리고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한 것이죠.

근데, SK 그룹 상황이 어떻길래 기존 윤핵관, 아니 최핵관들 다 물리고 최창원 부회장을 비대위원장에 앉혔느냐. 상황이 심각합니다. 그 돈 잘 벌던 SK가 최근 몇 년 새 돈이 쪼들릴 정도로 형편이 안좋아 졌어요. 이유는 많은데 딱 하나만 꼽자면, 돈을 펑펑 써서 그렇습니다.

우선 반도체부터 보시죠. SK하이닉스죠. SK가 2012년 이 회사 사고 얼마나 재미를 많이 봤습니까. 황금알을 낳는 거위였잖아요. 연간 10조원 버는 건 일도 아니었고, 20조원 벌 때도 있었어요. 매출 아니고 영업이익입니다. 뗄거 다 떼고 장사로만 10조씩 캐시로 따박따박 통장에 꽂혔다는 얘깁니다.
최태원 SK 회장의 한숨...해결사 최창원 등판 [안재광의 대기만성's]
잔고가 넘쳐나니까 이 돈으로 경기도 용인에 120조원 짜리 반도체 단지를 짓네, 인텔의 낸드 플래시 메모리 사업부를 11조원에 사네, 뭐 이런 통 큰 투자들을 하죠. 특히 완전 망한 M&A가 있죠. 2021년에 인수한 인텔 낸드 사업부. 인수가액이 11조원이라고 했잖아요. 인수할 때도 "바가지 썼다"는 말이 많았는데, 지나고 보니 바가지 정도가 아니라 완전 호구 잡혔습니다.낸드 플래시 메모리가 완전히 똥값이 됐거든요.

SK하이닉스의 낸드 플래시 메모리 평균 판매가격은 작년 1분기만 해도 테라바이트당 112달러였는데, 올 2분기에 46달러로 60% 가까이 폭락했죠. 이 탓에 SK하이닉스의 낸드 부분 적자는 분기당 2조원을 넘어섰습니다. 인텔 낸드 사업부의 올 들어 3분기까지 순손실은 3조6000억원을 넘겼고요. 완전 자본잠식에 빠져서 돈을 퍼 넣어주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상태에 이르렀습니다.
최태원 SK 회장의 한숨...해결사 최창원 등판 [안재광의 대기만성's]
인텔에서 11조원을 주고 황금알이 아니라 똥만 나오는 거위를 받았으니까, 이 똥 치우느라 또 11조원을 써야 될지도 모른다는 말이 나오죠. 흥청망청 M&A는 이것 말고도 수두룩 합니다. SK그룹의 지주사인 SK는 투자형 지주사란 개념을 들고 나왔었는데요. 한마디로 워런 버핏의 버크셔 해서웨이 처럼 투자 잘 해서 떼돈 벌겠다는 개념입니다.

근데, 이게 말이 좋아 워런 버핏이지. 말처럼 쉽지가 않잖아요. 말아먹은 게 수도 없이 많아요. 대표적인 사례 딱 하나만 들자면, 미국 플러그파워가 있죠. 이것도 2021년이네요. 1조8000억원을 주고 플러그파워 지분 10%, 5140만주를 취득했습니다. 이 때 취득가격이 주당 29달러가 넘는데요, 이 회사 주가는 현재 4달러 선에 불과 합니다. 산 뒤에 주가가 85% 폭락했어요. 1조8000억원에 산 주식 가치는 3000억원도 안 되고요. 1조5000억원 날린 셈이에요.
최태원 SK 회장의 한숨...해결사 최창원 등판 [안재광의 대기만성's]
이것 뿐인가요. SK가 한국판 아마존을 만들겠다며, 진짜 아마존하고 손을 잡은 11번가는 완전히 붕괴됐어요. SK는 11번가와 헤어질 결심을 했습니다. 과거 이 회사에 지분 투자를 한 펀드들이 있는데, 이 펀드가 SK에 약속한 돈을 달라고 했더니 11번가를 그냥 가져가라고 던져버렸어요. 이런 경우는 첨 보는 것 같아요.

11번가 실적 보시면 SK가 그동안 헛짓거리 했구나 싶은데요. 돈을 그렇게 쏟아 붓고도 매출이 느는 게 아니라 전반 줄었고요. 2022년 반짝 느는 것 처럼 보이지만, 이게 쿠팡처럼 직매입을 해서 회계적으로 는 것 뿐이지 큰 의미는 없어요. 오히려 적자가 확 불어난 게 보이시죠. 이게 직매입의 후유증 같은 겁니다. 온라인 쇼핑 점유율을 보면, 쿠팡과 네이버가 저만치 앞서가고 있고, 신세계의 지마켓에도 못당하고요. 이대로 가면 테무나 알리익스프레스에도 아마 뒤쳐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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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터리도 문제인데요. SK이노베이션이 배터리 공장을 여기저기 짓느라 십 수조원을 썼는데요. 그래서 전기차 배터리 시장에서 글로벌 톱5에도 들었고요. 그런데, 여긴 규모가 커져도 적자가 해소가 안 됩니다. 2021년에 SK이노베이션에서 분리 된 SK온의 적자는 지난해 1조원을 넘어섰고요. 올해도 3분기까지 5000억원대 적자를 기록 중입니다. 생각보다 손익분기점을 달성하는 시점이 늦춰지고 있어요.
최태원 SK 회장의 한숨...해결사 최창원 등판 [안재광의 대기만성's]
SK 내부 문제는 이것 말고도 많은데, 이쯤 하고요. 최태원 회장도 근데 개인적으로 너무 바빴죠.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하면서 부산 엑스포 유치 운동도 재계 총수중에 가장 열심히 했고요. 윤석열 대통령 해외 나갈 때 동반해서 많이 나가기도 했잖아요. 경영에만 전념하기 힘들었단 얘깁니다.

최창원 부회장에 권한이 많이 갔지만, SK 모든 계열사에 다 관여하진 않을 것 같고요. 아마 큰 건만 보겠죠. 특히 대규모 투자, M&A 이런 것 위주로 재점검을 할 것 같습니다. 계열사 사장님들 군기반장 역할도 좀 하고요. 이미 수펙스추구협의회의 내부 구조조정에 들어갔다는 기사가 나오고 있어요. 인원과 조직을 확 줄인다고 합니다. SK그룹의 사업 포트폴리오가 반도체, 배터리, 에너지, 통신 등등 굉장히 광범위한데, 이번 기회에 재점검 하고 다시 도약할 기회로 삼았으면 합니다.

안재광 기자 ahnj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