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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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뇌출혈로 쓰러졌다. 내가 뉴욕에 살던 1999년 11월의 일이다. 아버지를 병원으로 옮긴 남동생이 전화했다. 응급 처치를 해 의식은 돌아왔으나 말씀을 못 하신다면서 전화를 바꿔 달라시는 거 같다고 했다. 전화기를 통해 아버지는 ‘악!’ ‘악!’ 하는 외마디 비명 같은 소리만 질렀다. 말이 되지 않자 전화기를 내던졌는지 둔탁한 소리가 나며 끊어졌다. 나는 아버지의 그 두 마디를 “손주들을 보고 싶다”라는 말로 얼른 알아들었다. 두 달 전에 뉴욕 집에 다녀간 아버지가 툭하면 국제전화를 걸어 손주들과 통화했다. 통화를 못 하면 아쉬워하며 으레 저 말을 되풀이했기 때문이다.

한집에서 같이 지내다 내가 뉴욕 주재원으로 발령 나자 아버지는 손주들을 유독 찾았다. 김포공항에서 헤어질 때는 다시는 못 볼 것처럼 손주들을 양손으로 한참을 꽉 껴안았다. 다녀가라고 해도 오시지 않았다. 2년을 버티던 아버지는 “안 보고는 도저히 배길 수 없다”라며 어머니와 갑자기 미국에 와 손주들과 몇 날을 같이 지냈다. 그때 아버지는 손자와 손녀로 구분 짓지 않고 언제나 손주라고 했다. 내가 “왜색(倭色) 짙은 말이라 낯설다”고 하자 아버지는 내 과문(寡聞)을 탓했다. 손주라고 부르는 이유를 ‘손자 손녀를 작은 손님으로 여기기 때문’이라고 설명한 아버지는 “옛날에는 손자 손녀가 태어나면, 집안에 작은 손님이 온 것처럼 기뻐했다. 손자 손녀를 가리키는 말에도 손님이라는 뜻이 담겨 있다”라고 일러줬다.

아버지는 손주를 길게 설명했다. 선조들은 손자 손녀가 집안의 미래를 책임질 인물로, 집안의 대를 이어갈 후손으로, 그래서 귀한 존재로 여겼다. 손주는 ‘손자’와 ‘손녀’를 합친 말이다. 고려 시대부터 쓰였다. 손주는 ‘손님+주(主)’로 이루어진 합성어다. ‘손님’은 집을 방문한 사람을, ‘주’는 주인을 가리킨다. ‘집안의 주인이 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조선 시대 문헌인 ‘산림경제(山林經濟)’에 “손주가 태어나면, 집안에 복이 온다. 손주는 집안에 온 손님과 같아서, 집안에 복을 가져온다’라는 구절이 있다”라고 소개했다.

그날 아버지는 맹자(孟子)의 양혜왕장구(梁惠王章句)에 “손자는 집안에 온 손님과 같다. 손자는 집안의 주인이 될 사람인데, 집안에 온 손님처럼 귀하게 여겨야 한다”는 구절도 소개했다. 원문은 이렇다. “자손이 부모에 대하여는, 마치 손님이 주인에 대하여 그러하듯이 해야 한다. 주인이 손님에 대하여는, 특별히 더해 주는 것이 없지만, 손님이 주인에 대하여는, 그저 그들의 초대와 음식만을 받는다. 지금 자손이 부모에 대하여는, 특별히 더해 주는 것이 있지만, 부모가 자손에 대하여는, 그저 그들의 매질만을 받는다. 이것이 바로 사회가 혼란스러워지는 이유이다.” 아버지는 “맹자는 손자라고 특정하지는 않았지만, 자손은 혈연으로 연결된 모든 사람을 뜻한다. 손자뿐만 아니라, 자녀, 손녀, 증손자 등 모든 자손을 포함한다”라고 보충했다.

아버지는 자식보다 손주가 더 귀엽다고 했다. “육아 스트레스가 심하지 않다. 정서적으로 여유가 있으니 순수한 사랑과 애정이 더 강하게 느껴져 잊었던 부모의 마음이 다시 한번 설레고 벅차오른다. 자식의 유전자를 50%씩 물려받은 손주는 자신의 유전자를 보는 것 같아 특별한 친밀감과 애정을 느낀다. 자식 키울 땐 바쁜 일상에 치여, 자녀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지 않았지만, 이제는 벗어나 여유를 찾게 되니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고, 더 많은 사랑을 줄 수 있어서다”라고 자식보다 손주가 더 귀여운 이유를 분석했다.

이어 고려 시대 이규보(李奎報)의 ‘손자(孫子)’ 시를 인용했다. “손아귀의 흙은 한 줌에 족하니, 어찌 천하의 부귀를 탐하겠는가[掌中之土一握足矣 何必貪求天下之富貴]. 손자가 날아와 내 곁에 앉으니, 세상살이가 한없이 즐겁구나.” 아버지는 “‘손아귀의 흙은 한 줌에 족하니’라는 표현이 좋다. 손자의 귀중함을 그 이상 강조한 말이 없다”라면서도 나아가 “손주는 하늘이다”라고 했다. 아버지는 “손주들이 저희들끼리는 영어로만 말하고, 내가 ‘미국이 좋으냐 한국이 좋으냐?’고 묻자 바로 애들이 ‘미국’이라고 하더구나. 이제 손주들은 더는 못 보겠구나 싶었다. 하늘이 무너지는 거 같았다”며 저 말씀을 했다.

공항에서 이별하며 2년간 잘 참아온 아버지를 뉴욕에 오시라고 한 게 후회됐다. 불과 두 달 전에 만나고 온 손주들을 더는 볼 수 없어 그리움이 사무쳐 쓰러진 거라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그렇게 쓰러진 뒤로는 더는 말을 못 했다. 입버릇처럼 되뇌던 ‘掌中之土一握足’은 아버지의 음성으로 이 세상에 마지막으로 남긴 고사성어가 됐다. 아버지가 보여준 아랫사람에게 도타운 사랑을 베푸는 마음이 자애심(慈愛心)이다. 본성이긴 하지만 일찍부터 꾸준히 연마해야 얻을 수 있는 인성이다. 집에 온 손주들을 볼 때마다 일깨워지는 소중한 성품이다.

<한경닷컴 The Lifeist> 조성권 국민대 경영대학원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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