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러규제 혁파를 위한 경제계 입법 제안 중 21.6%만 국회 문턱을 넘었다고 한다. 대한상공회의소 요청 킬러규제 입법과제 97건 중 21건만 통과됐다는 게 국무조정실 집계다. 극심한 정쟁이 만성화한 터라 예상 못한 바는 아니지만 부진해도 너무 부진한 입법 성적표다.

윤석열 정부가 전력투구 중인 ‘규제혁신’도 국회 벽에 가로막혀 표류하고 있다. 정부 출범 후 제출한 규제혁신 법안 222건 중 55.4%인 123건이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대통령이 직접 규제혁신전략회의를 주재하고 ‘킬러규제’라는 용어까지 써가며 개선을 약속한 6개 법안 중 입법이 완료된 건 산업집적법 하나에 불과했다. 경제 6단체까지 조속 입법을 요청했음에도 나머지 5개 법안은 상임위원회조차 통과하지 못했다.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춰 화학물질 관리 기준을 완화하는 화학물질등록평가법(화평법)·화학물질관리법(화관법)과 외국인고용법, 산업입지법, 환경영향평가법 등이다.

국회는 민생 입법도 철저히 외면 중이다. 윤석열 정부가 ‘규제개혁 1호’ 과제로 내건 유통산업발전법이 대표적이다. 대형마트 영업 휴무일에 온라인 배송을 허용해 지방 소도시·격오지 주민의 ‘배송 디바이드’를 해소하는 민생법안임에도 진척이 없다. 야간·휴일에도 초진 비대면 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의료법 개정안도 첫 단계인 상임위에서 좌초했다.

경제·민생 입법을 내팽개친 국회지만 ‘퍼주기’ 생색내기엔 짬짜미 모드다. 법정 기한을 19일이나 넘겨 지난 주말 확정한 내년 예산에 2400억원이 넘는 지역구 예산을 끼워 넣는 담합을 연출했다. 활주로 이용률이 0.1%에 불과해 ‘고추 말리는 공항’이라는 오명까지 붙은 무안국제공항 활주로 길이 연장공사에 100억원이 배정됐다. 국회 예산결산위원장인 서남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밀어 넣은 쪽지 예산이다. 홍익표 민주당 원내대표는 총선 출마 예정지인 서울 서초구 사업 예산까지 알뜰히 챙겼다.

재정건전성을 외쳐온 여당 의원들도 배신했다. 사퇴 후 잠수 중인 김기현 전 국민의힘 대표는 106억원, 인재영입위원장 이철규 의원은 59억원의 막대한 지역구 사업 증액을 관철했다. 지역구 현금 뿌리기에 김진표 국회의장도 가세해 정부 초안에 없던 경기남부 민간공항 예산을 만들어냈다. 극한 정쟁으로 경제·민생을 나 몰라라 하면서 ‘퍼주기’에만 머리를 맞대는 낯 뜨거운 세밑 여의도 풍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