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측정 못하고, 숫자로 못 표현하는 지식은 빈약하다" [책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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측정의 세계
제임스 빈센트 지음
장혜인 옮김
까치
440쪽
2만2000원
제임스 빈센트 지음
장혜인 옮김
까치
440쪽
2만2000원
“당신이 말하는 것을 측정할 수 있고 숫자로 표현할 수 있다면, 그것을 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숫자로 표현할 수 없다면, 그 지식은 빈약하고 부족하다.”
켈빈 경으로 잘 알려진 19세기 영국의 물리학자 윌리엄 톰슨은 측정이 인간의 삶에 이바지한 공로를 이처럼 요약했다. 몸무게를 재고, 거리를 계산하고, 시간을 확인하고, 물건의 크기를 가늠하면서 우리는 주변의 모든 것을 측정한다. 개수 셈하고 가격을 따지는 것도 측정이다.
영국의 저널리스트 제임스 빈센트는 <측정의 세계>를 통해 눈에 보이지 않는 측정이 인류의 삶을 어떻게 바꿨는지 그 기원부터 현재까지 살펴본다. 그는 인류가 처음으로 숫자를 세고 기록하기 시작하면서 마침내 다른 동물들과 달라졌다고 지적한다. 측정은 우주 속 인간의 위치를 다시 정의하게 하고 건설과 도시 생활을 가능하게 하는 모든 구조적 뿌리를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인류가 최초로 측정을 한 시기는 언제였을까? 저자는 이 실마리를 찾기 위해 고대 이집트 문명을 살펴본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나일로미터라는 측정 도구를 사용해 나일강의 범람 수위를 측정했다. 매년 홍수로 불어난 나일강은 주변 땅을 비옥하게 개량했다. 나일로미터가 기근이 온다고 측정하면 사람들은 식량을 비축했다. 풍작이 온다고 하면 작물, 노동, 토지의 형태로 적절한 세금이 부과됐다.
측정법은 초기 국가와 사회 구성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중세 영주들은 원하는 만큼 노동과 상품을 착취하기 위해 자기만의 척도를 이용했다. 토지의 면적이나 곡물의 무게를 잴 때 쓰이는 기준값들은 지역마다 달랐다. 이 느슨하고 유연한 값을 통제하는 것은 사회 질서를 지키고 왕권을 강화하는 데 필수적이었다.
측정은 정복과도 관계가 깊었다. 17세기 측정 열풍이 불었던 스웨덴은 정밀한 무기로 인근 핀란드, 노르웨이, 러시아에 이르는 영역을 정복했다. 18세기 미국의 개척자들은 야생의 땅을 측정하며 관리할 수 있는 땅으로 바꿔나갔다. 아프리카, 인도 등을 식민지로 만들 때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지도였다. 서구 제국주의 국가들은 영토 통합을 나서면서 대규모 측량을 시행했다. 제국과 식민지는 지도에 새겨지고 지도로 그려짐으로써 존재했다.
세계에서 가장 널리 쓰이는 측정 체계인 미터법은 프랑스 혁명으로 본격 도입됐다. 혁명 당시 평민은 귀족의 속임수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 귀족은 교역과 농업 생산을 촉진하기 위해서 표준화를 원했다. 상류층을 위해 설계되고 그들에게 도움을 주지만, 평등하다고도 여겨지는 측정 표준의 모순을 지적한다.
저자는 현대에서 측정값의 기준을 새롭게 정의하는 분위기도 보여준다. 세상을 좀 더 정확하게 바라보려는 인류의 오랜 연구를 읽다 보면 인류 문명사를 보다 독창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을 배울 수 있다.
최종석 기자
켈빈 경으로 잘 알려진 19세기 영국의 물리학자 윌리엄 톰슨은 측정이 인간의 삶에 이바지한 공로를 이처럼 요약했다. 몸무게를 재고, 거리를 계산하고, 시간을 확인하고, 물건의 크기를 가늠하면서 우리는 주변의 모든 것을 측정한다. 개수 셈하고 가격을 따지는 것도 측정이다.
영국의 저널리스트 제임스 빈센트는 <측정의 세계>를 통해 눈에 보이지 않는 측정이 인류의 삶을 어떻게 바꿨는지 그 기원부터 현재까지 살펴본다. 그는 인류가 처음으로 숫자를 세고 기록하기 시작하면서 마침내 다른 동물들과 달라졌다고 지적한다. 측정은 우주 속 인간의 위치를 다시 정의하게 하고 건설과 도시 생활을 가능하게 하는 모든 구조적 뿌리를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인류가 최초로 측정을 한 시기는 언제였을까? 저자는 이 실마리를 찾기 위해 고대 이집트 문명을 살펴본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나일로미터라는 측정 도구를 사용해 나일강의 범람 수위를 측정했다. 매년 홍수로 불어난 나일강은 주변 땅을 비옥하게 개량했다. 나일로미터가 기근이 온다고 측정하면 사람들은 식량을 비축했다. 풍작이 온다고 하면 작물, 노동, 토지의 형태로 적절한 세금이 부과됐다.
측정법은 초기 국가와 사회 구성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중세 영주들은 원하는 만큼 노동과 상품을 착취하기 위해 자기만의 척도를 이용했다. 토지의 면적이나 곡물의 무게를 잴 때 쓰이는 기준값들은 지역마다 달랐다. 이 느슨하고 유연한 값을 통제하는 것은 사회 질서를 지키고 왕권을 강화하는 데 필수적이었다.
측정은 정복과도 관계가 깊었다. 17세기 측정 열풍이 불었던 스웨덴은 정밀한 무기로 인근 핀란드, 노르웨이, 러시아에 이르는 영역을 정복했다. 18세기 미국의 개척자들은 야생의 땅을 측정하며 관리할 수 있는 땅으로 바꿔나갔다. 아프리카, 인도 등을 식민지로 만들 때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지도였다. 서구 제국주의 국가들은 영토 통합을 나서면서 대규모 측량을 시행했다. 제국과 식민지는 지도에 새겨지고 지도로 그려짐으로써 존재했다.
세계에서 가장 널리 쓰이는 측정 체계인 미터법은 프랑스 혁명으로 본격 도입됐다. 혁명 당시 평민은 귀족의 속임수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 귀족은 교역과 농업 생산을 촉진하기 위해서 표준화를 원했다. 상류층을 위해 설계되고 그들에게 도움을 주지만, 평등하다고도 여겨지는 측정 표준의 모순을 지적한다.
저자는 현대에서 측정값의 기준을 새롭게 정의하는 분위기도 보여준다. 세상을 좀 더 정확하게 바라보려는 인류의 오랜 연구를 읽다 보면 인류 문명사를 보다 독창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을 배울 수 있다.
최종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