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처 GDF15 논문
네이처 GDF15 논문
임신부 10명 중 7명이 겪는 입덧 증상이 특정한 호르몬과 관련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해당 호르몬에 대한 민감도를 낮춰주는 방식으로 입덧을 해결할 수도 있을 것으로 연구팀은 평가했다.

14일 의료계에 따르면 영국 케임브리지대 연구팀은 태아가 만들어내는 '성장분화인자(GDF)15' 호르몬이 입덧과 연관있다는 연구 결과를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공개했다.

GDF15의 역할은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이 단백질은 염증경로를 조절하고 세포사멸, 혈관 생성, 세포 복구·성장 등에 관여해 심혈관 질환과 암 발생에 영향을 주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물질이 근육의 에너지 소비량을 늘려 체중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란 연구 결과가 나오면서 글로벌 제약사들이 앞다퉈 GDF15 유사체 비만약 개발에 뛰어들기도 했다.

미국 제약사 존슨앤드존슨, 일라이릴리 등이 해당 물질을 활용해 비만약 개발에 뛰어들었다가 실패했다. 올해 7월엔 스위스제약사 노바티스도 GDF15 유사체 비만약 개발을 중단한다고 선언했다. 국내 제약사 중엔 유한양행이 해당 단백질을 활용해 먹는 비만약을 개발하고 있다.

영국 연구팀은 임신부에게 흔한 입덧 증상에 집중했다. 임신부 10명 중 7명이 구역·구토 증상을 호소하는 입덧을 경험한다. 일부는 이를 해소하기 위해 수액치료도 받는다. 임신부의 입덧 증상은 임신 3개월 안에 입원하게 만드는 가장 주요한 원인질환이다.

임신부 1~3% 정도는 입덧 증상이 심각해 태아와 산모의 목숨까지 위협한다. 치료법이 있지만 임신 중 약물 사용에 대한 두려움 탓에 폭넓게 활용하는 데엔 한계가 있다.

연구팀은 태반에 생기는 GDF15 호르몬이 산모의 뇌에 영향을 줘 메스꺼움과 구토를 유발할 수 있다는 몇가지 기초연구 결과를 기반 삼아 가설을 세웠다. 이를 통해 임신부가 겪는 구역·구토 증상 정도가 태반 속 태아에게서 만들어져 혈류로 순환되는 GDF15 호르몬 양과 관련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임신 중 산모의 호르몬 민감도는 임신 전 노출된 호르몬 양의 영향을 받았다. 평소 혈중 GDF15 호르몬 수치가 낮았다면 임신 중 심한 입덧을 호소할 위험이 높았다. 특정 유전자 변이 탓에 GDF15 호르몬 수치가 낮은 사람이 있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유전성 희귀 혈액질환인 베타지중해성 빈혈 환자는 임신 전 GDF15 수치가 높아 입덧을 잘 호소하지 않는다는 것도 발견했다.

연구팀은 동물실험을 통해 치료 단서를 찾았다. 실험용 마우스를 활용해 갑자기 고농도의 GDF15 호르몬에 노출되도록 했더니 식욕이 떨어졌다. 하지만 오랜 기간 지속적으로 GDF15에 노출되도록 치료한 마우스는 갑자기 GDF15 호르몬에 노출돼도 별다른 증상을 보이지 않았다.

임신 전 GDF15 호르몬 노출을 늘리는 등의 방식으로 내성을 키우면 입덧 증상 예방도 가능할 것이란 의미다.

스티븐 오라힐리 케임브리지대 교수는 "자궁 속에서 자라는 아기는 엄마에게 익숙지 않은 수준의 호르몬을 만들어내고 임신부가 해당 호르몬에 민감할수록 더 심한 입덧을 호소하게 된다"며 "임신부의 뇌 수용체에 GDF15 호르몬이 영향 주는 것을 막는 게 근본적인 치료법이 될 것"이라고 했다.

이지현 기자 bluesky@hankyung.com

**이 기사는 2023년 12월 14일 16시07분 <한경 바이오인사이트> 온라인에 게재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