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J ENM이 거느린 미국 할리우드 제작사가 일본 대표 엔터테인먼트 업체를 2대주주로 영입했다. 한국과 미국, 일본의 대표 엔터테인먼트 기업들이 보유 콘텐츠를 다양화하는 동시에 글로벌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해 힘을 합치기로 한 것이다.

CJ ENM은 이번 투자 유치로 미국 자회사 피프스시즌(옛 엔데버콘텐츠)의 재무건전성을 끌어올리는 동시에 세계에서 경쟁력을 인정받고 있는 ‘J(일본) 콘텐츠’도 손에 넣게 됐다.

CJ 손에서 다시 태어나는 日 콘텐츠

CJ ENM은 피프스시즌이 도호인터내셔널을 대상으로 2억2500만달러(약 2900억원) 규모의 제3자배정 유상증자를 진행했다고 11일 발표했다. 도호인터내셔널은 도호의 미국 법인이다. 이번 투자가 마무리되면 도호인터내셔널은 CJ ENM에 이어 피프스시즌의 2대주주(지분율 25%)로 올라선다. CJ ENM의 지분율은 80%에서 60%로 떨어진다.

도호는 연매출 2조원이 넘는 일본의 거대 엔터테인먼트사다. ‘고질라’ ‘라돈’ 등 영화·드라마·애니메이션·연극 지식재산권(IP)을 보유하고 있을 뿐 아니라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너의 이름은’ ‘스즈메의 문단속’ 등 일본 대표 애니메이션 배급도 맡고 있다.

CJ ENM은 이번 투자 유치로 코로나19 이후 어려움을 겪었던 피프스시즌이 다시 도약하는 데 큰 힘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지난해 초 CJ ENM은 피프스시즌의 지분 80%를 약 9200억원에 사들였다. ‘라라랜드’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등 글로벌 히트작을 만든 피프스시즌의 글로벌 유통망을 통해 K콘텐츠를 할리우드에 본격 공급하겠다는 계획이었다.
CJ ENM, 日 도호와 2.2억달러 자본제휴
하지만 코로나19로 콘텐츠 제작 일정이 줄줄이 밀리면서 피프스시즌은 매해 수백억원대 적자를 냈다. 여기에 할리우드 작가 파업까지 겹치면서 피프스시즌은 올 상반기까지 ‘개점휴업’ 상태였다.

CJ ENM 입장에서 이번 투자 유치는 피프스시즌의 자금난 해결에 도움을 줄 뿐 아니라 일본 콘텐츠란 새로운 먹거리까지 안겨줬다는 점에서 ‘일석이조’란 평가를 받고 있다. CJ ENM과 피프스시즌은 도호의 콘텐츠를 전 세계에 먹힐 수 있도록 리메이크하거나 새로 만드는 작업에 들어갈 계획이다.

“도호, K콘텐츠 노하우 보고 투자”

글로벌 콘텐츠 시장에서 돈줄이 말라 있는 이 시기에 도호가 대규모 투자를 결심한 배경엔 ‘K콘텐츠의 성공’이 있다. 일본은 ‘글로벌 콘텐츠 강국’이긴 하지만 애니메이션 등 특정 부문에 치우쳐 있는 약점이 있다. 이에 비해 한국은 ‘오징어 게임’ ‘기생충’ 등 다양한 장르에서 글로벌 무대의 성공을 거둔 경험이 있다. CJ ENM 관계자는 “최근 세계 시장에서 애니메이션의 실사화가 화두인데, 도호가 IP를 보유하고 있는 애니메이션을 실사 영화로 리메이크하는 과정에서 CJ ENM의 노하우가 큰 도움이 될 것으로 판단한 것”이라고 말했다.

과거 일본 콘텐츠를 베끼던 한국이 이제는 일본 콘텐츠를 재가공해 세계에 알리는 역할을 할 정도로 위상이 높아졌다는 의미다. 마쓰오카 히로 도호 대표는 “CJ ENM 및 피프스시즌과의 협업은 도호의 글로벌 진출을 위한 의미 있는 발걸음”이라고 말했다. 구창근 CJ ENM 대표는 “이번 투자 유치를 계기로 명실상부한 ‘글로벌 IP 파워하우스’로 발돋움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선아/안시욱 기자 sun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