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4년 첫 수출 1억달러 달성…수출 6천배로 늘어 세계 6위 도약
중공업·첨단산업 육성, FTA 체결 등으로 고비마다 수출 경쟁력 강화
'한강의 기적' 원동력 된 수출주도형 모델…60년 경제성장 버팀목
[수출입국 60년] 가발·다람쥐서 시작된 수출…이젠 K-첨단제품 전세계로
1964년 12월 5일 서울 시민회관에서 수출 기업인들과 박정희 대통령 등 정부 관계자들이 모인 가운데 '제1회 수출의 날' 기념식이 열렸다.

머리카락에서 다람쥐, 은행잎까지 돈이 되는 것은 무엇이든 모아 팔아 첫 수출 1억달러라는 고지를 달성한 것을 자축하는 행사였다.

수출의 날 제정은 한국이 '한강의 기적'의 원동력이 된 수출 주도형 경제 성장 모델로 나아가겠다는 '수출입국'(輸出立國) 노선을 안팎에 선포한 날로 기록된다.

[수출입국 60년] 가발·다람쥐서 시작된 수출…이젠 K-첨단제품 전세계로
◇ 수출, 가난 벗어날 탈출구…"팔 수 있는 건 뭐든 팔자"
분단과 전쟁 이후 세계 120여개국 중 100위권 밖 최빈국이던 한국에서 1960년대 수출은 경제를 일으켜 세우기 위한 절박한 수단이었다.

1962년 정부 주도의 수출 주도형 경제 모델이 적용된 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수립됐지만, 외화 부족에 발목이 잡혔다.

박정희 정부는 1964년 구로공단 등 수출 단지를 설치하는 등 수출 드라이브를 강력하게 걸었고, 그해 수출 1억달러 달성 이후 돈이 돌면서 수출에 가속도가 붙었다.

196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연평균 수출 증가율은 무려 40%에 달했다.

수출은 1970년 10억달러, 1977년 100억달러, 1995년 1천억달러, 2011년 5천억달러를 차례로 돌파해 최근엔 연간 6천억달러 이상을 꾸준히 유지 중이다.

1960년대를 대표하는 주요 수출품은 철광석, 무연탄, 섬유·의류, 합판, 물고기, 돼지털 같은 상품이다.

머리카락을 잘라 만든 가발과 유럽에 약 원료로 팔린 은행잎도 이 시대를 상징하는 수출품이다.

어린이들까지 나서 산과 들에서 잡은 다람쥐 수십만마리가 일본과 유럽에 애완용으로 팔려나갔다.

진입 장벽이 낮은 경공업 중심의 수출에 주력하면서 주변에 돈이 될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 거둬 팔던 시절이었다.

[수출입국 60년] 가발·다람쥐서 시작된 수출…이젠 K-첨단제품 전세계로
이처럼 1960년대는 한국이 경제를 일으켜 세우는 마중물이 될 자금을 수출로 마련한 시대로 평가된다.

아울러 한국이 당시 다른 여러 개도국과 달리 수입 대체가 아닌 수출 주도형 경제 성장 모델 노선을 정한 것이 비약적 경제 발전의 핵심 원동력이 됐다고 전문가들은 평가한다.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을 지낸 이창양 한국과학기술원(KAIST) 경영공학부 교수는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수출 지향 전략을 택하지 않았다면 우리나라는 중진국 수준을 못 넘었을 것"이라고 밝혔다.

산업 혁신 전문가이기도 한 이 교수는 "수출 시장의 '시장 규율'에 적응하려면 지속적 기술 혁신과 원가 절감을 동시에 추구할 수밖에 없는 위치 놓이게 된다"고 덧붙였다.

운도 따랐다.

저임금 노동력에 기댄 당시 한국의 경제 성장은 강력한 잠재적 경쟁자인 중국이 '죽의 장막' 안에 스스로를 고립시킨 채 머무르고 있어 가능했다.

정만기 한국무역협회 부회장은 "GATT(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 체제에서 서방을 중심으로 자유무역이 활발했을 때 중국, 베트남 등 사회주의 국가들은 이를 활용하지 못했고, 우리가 반사 이익을 크게 봤다"고 말했다.

◇ "중공업 전환으로 수출 모멘텀"…내년 경제성장, '되살아난' 수출이 견인
1970년대 이후 한국 산업은 끊임없는 혁신을 통해 중화학 공업, 첨단 산업에 이르는 다양한 수출 포트폴리오를 갖추는 방식으로 진화했다.

특히 1970년대 한국의 중화학 공업 전환 시도는 수출사의 중요 변곡점이 됐다.

1970년대 중화학 공업에 드라이브를 걸면서 수출에서 중화학 공업 제품 차지하는 비율은 1964년 9.2%에서 1983년 50% 이상으로 올랐다.

정 부회장은 "경제학 이론상 비교우위가 전혀 없던 중화학 공업 분야로 나아간 것은 스스로 비교우위를 창출한 세계적으로도 이례적인 사례"라며 "우리나라 수출 역사상 짚고 가야 할 중요한 순간"이라고 평가했다.

[수출입국 60년] 가발·다람쥐서 시작된 수출…이젠 K-첨단제품 전세계로
이 교수도 "오일쇼크가 두 번 오는 등 1970년대는 세계적으로 성장이 둔화한 암흑기였지만, 우리는 과감히 중화학 공업 투자를 했다"며 "처음엔 시장이 잘 열리지 않아 어려움이 컸지만, 1980년대 3저 호황 시대를 맞아 '잭폿'이 터졌다"고 설명했다.

이후 한국은 대외 환경의 변화 속에서 가전, 무선통신 기기, 반도체, 디스플레이 등 첨단 제품으로 수출품을 다변화하는 데 성공했다.

2000년대 들어서는 칠레와 첫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을 시작으로 '경제 영토'를 넓히는 전략을 펴는 등 내수의 한계를 수출 확대로 극복하려는 노력을 끊임없이 기울여왔다.

오는 5일로 무역의 날이 60주년을 맞는다.

정부는 2011년 수출·수입을 합친 무역액이 1조달러를 넘어선 것을 기념해 그해부터 수출의 날을 '무역의 날'로 부르고 있다.

'수출입국'을 선포한 무역의날 60주년을 맞이하는 지금 한국의 3대 수출품은 2022년 반도체, 석유제품, 자동차로 탈바꿈했다.

가발, 섬유제품, 광물을 팔던 세계 최빈국의 드라마틱한 반전이다.

한국의 수출은 지난해 6천311억달러로 세계 6위로 올라섰다.

[수출입국 60년] 가발·다람쥐서 시작된 수출…이젠 K-첨단제품 전세계로
수출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비중도 1964년 3%에서 지난해 41%로 늘었다.

수출이 오랜 기간 경제 성장의 버팀목 역할을 한 셈이다.

또 수출은 오일쇼크, 외환위기, 코로나 팬데믹 위기 등 경제 위기 때마다 경제 활력 회복을 주도하는 '구원 투수' 역할도 했다.

내년도 고금리·고물가로 국내 소비 성장세가 계속 둔화하고 건설 투자가 위축돼 '완만한 성장'이 예상되는 가운데 최근 뚜렷한 회복세를 보인 수출이 경제 성장을 견인할 것으로 전망된다.

방문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3일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한국 경제 발전의 역사는 수출 성장의 역사와 그 흐름을 같이해왔다"며 "내년 수출이 소비나 투자보다 증가율이 높게 나을 것으로 예상돼 수출이 내년 성장을 끌고 가는 데 기여도가 높게 나타날 것으로 예상한다"고 밝혔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