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2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금융투자협회에서 열린 금감원-자산운용사 CEO 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2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금융투자협회에서 열린 금감원-자산운용사 CEO 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홍콩H지수(항셍중국기업지수) 흐름에 따라 수익률이 결정되는 파생상품에서 수조원대 손실이 예상되면서 투자자들 불안이 커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은행권을 향해 강한 질타성 발언들을 내놓았다.

29일 이 원장은 이날 오전 열린 '자산운용사 최고경영자(CEO) 간담회' 직후 기자들과의 백브리핑(백그라운드브리핑)에서 홍콩 H지수 파생결합증권(ELS) 사태를 두고 "(은행들이) 무지성으로 소비자 피해가 예방 조치됐다고 운운하는 것은 소비자 보호 조치라 들리지 않고 '면피' 조치로 보여진다"고 지적했다.

이 원장은 "(상품 가입 시) 자필을 받았다든가 하는 등의 작업을 근거로 들며 불완전 판매를 하지 않았다고 하는 입장인 듯한데 금융소비자보호법상 적합성 원칙을 들여다보면 그런 말을 쉽게 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행 금소법상 '적합성 원칙'이란 금융회사가 소비자에 상품을 권유할 때 소비자의 재산상태와 투자경험 등에 비춰 해당 소비자에게 적합한 투자가 아니라고 판단되면 권유해선 안 된다는 의무를 말한다.
사진=신민경 기자
사진=신민경 기자
이 원장은 "본래 적합성 원칙의 취지는 금융기관이 소비자 상황을 제대로 파악한 뒤 가입 목적에 맞는 적합한 상품을 권유하고 그 과정을 소비자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하는 것이지 않느냐"며 "그런데 이런 고위험 고난도 상품이 다른 곳도 아닌 은행 창구에서 고령자에게 특정 시기에 고액 판매됐다는 것만으로도 적합성 원칙이 지켜졌는지 의구심이 든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노후 보장 목적으로 만기 정기예금에 재투자하고자 하는 70대 고령 투자자들에게 이렇게 수십퍼센트 규모 원금 손실이 발생할 수 있는 고난도 상품을 권유하는 게 맞는지가…사전 설명이 이뤄졌는지 여부를 떠나서 권유한 것자체가 문제라고 본다"면서 "적합성 원칙이 제대로 이행됐는지 먼저 따져야 할 듯하며 ELS 상품구조를 고령 소비자에게 짧은 시간 안에 이해할 수 있었는지 여부도 살펴봐야 할 것"이라고 했다.

이 원장은 "홍콩H지수는 이미 2016년 49.3% 폭락한 전례가 있으며 여러 부동산 시장 상황 사이클에 따라서 등락 변동이 심할 수 있는 기초지수다. 이미 원금손실이 발생한 전례가 있는 상품을 얼마 지나지 않은 상황에서 노후자금을 맡기려고 온 고령 투자자들에게 투자 권유한 것인가"라며 "특정 은행 쏠림도 지나친 상황이어서 사실관계를 빨리 파악하는 차원에서 검사조치를 취한 것"이라고 했다.

아울러 이 원장은 "솔직히 말해서 저도 상품들 설명이 눈에 잘 안 읽히는데 이걸 갖다가 (고령층 소비자들이) '네네' 답했다고 해서 그것만으로도 책임으로부터 면제될 수 있는지 기자분들도 생각해 봐야 한다"며 "신뢰와 권위의 상징인 은행 창구를 찾은 소비자들에게 어떻게 대응하고 조치해야 하는지 저희가 답할 게 아니고 은행권이 적합성 원칙 전제로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 등 국내 5대 은행에서 내년 상반기 만기 도래하는 H지수 연계 ELS 규모는 약 8조4100억원이다. 상품 구조와 현재 주가 수준을 감안할 때 3~4조원대 손실이 임박한 것으로 파악된다. 이날 오전 NH농협은행은 ELS 판매를 중단했고 다른 시중은행들도 관련 상품의 중단 등을 포함해 ELS 상품 대응 방안을 검토 중이다.

한편 이날 오전 이 원장은 서울 여의도 금융투자협회 대회의실에서 자산운용사 CEO들을 불러 모아 간담회를 열었다. 금감원장이 직접 주재한 운용사 CEO 간담회는 지난 2월 이후 올해 두 번째다. 지난 간담회 때 개선을 약속했던 사안들에 대한 결과를 공유하고 자산운용산업 발전방향을 모색하기 위한 취지에서 마련된 자리다. 이 원장과 서유석 금투협회장을 비롯해 금감원 금융투자부문 부원장보, 자산운용사 23개사 대표가 참석했다.

신민경 한경닷컴 기자 radi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