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너무 좋다. 가이 뷔페(Guy Buffet, 1943~2023)의 “완벽한 마티니의 조주(The Makings of Perfect Martini, 2000)”를 보고 바로 피식, 입에서 웃음이 배어 나왔다. 만화처럼 나뉜 그림의 첫 장면만 보면 이후 벌어질 일을 전혀 예상할 수 없을 정도로 정적이고 평화롭기까지 하다. 하지만 곧 바텐더는 그야말로 미친 듯이 셰이커를 흔들어 댄다. 눈코입이 구분되지 않을 정도로 움직임이 격렬하다.그리고 마지막 열두 번째 장면에서 ‘짜잔’하고 마티니를 내밀고 있다. 언제 그렇게 격렬하게 움직였느냐는 듯 시치미를 뚝 떼고는 있지만 실마리는 곳곳에 드러나 있다. 한쪽으로 쏠린 머릿결이며 살짝 위로 올라온 콧수염, 조금 많이 상기된 표정까지. 그가 완벽한 한잔의 마티니를 만들기 위해 기울인 정성이 실로 막대했음을 말해주고 있다.그런데 어쩌나, 안타깝게도 그의 마티니는 제목만큼 완벽하지 않은 것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물론 그의 움직임처럼 격렬한 반응을 예상한다. 아니, 뭐가 잘못된 거죠? 셰이킹 마티니라면 살인 면허를 지닌 영국의 007이 즐겨 마셨던 것 아닙니까? 맞다. 다니엘 크레이그를 007로 발탁해 리부팅한 ‘007 카지노 로얄(2006)’에는 그의 전매특허 마티니가 탄생하는 장면이 나온다. “드라이 마티니. 고든스 진 3, 보드카 1에 키나 릴레(베르무트의 일종) ½의 비율로. 얼음에 흔들어 섞은 뒤 얇고 큼직하게 저며낸 레몬 껍질을 곁들여서.” 그의 느긋하면서도 자세한 칵테일 주문에 달아오른 테이블의 분위기가 조금 누그러진다. ‘그거 괜찮겠는데, 저도 같은 거 부탁합니다.’ 바짝 긴장했던 도박꾼들도 007을 따라 같은 마티니를 주문한다. 1953년 작 동명
한 해를 마무리하는 풍경들은 다양하다. 그중 하나가 바로 각종 시상식.연일 영화, 드라마, 예능, 음악에 대해 지난 1년을 평가하는 시상식 예고를 쉽게 볼 수 있는 요즘이다. K-POP 가수들의 무대를 열렬히 응원하는 팬들의 모습을 보면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저 마음은 도대체 어떤 마음일까?’라는 궁금함이다.팬들을 가로막는 장애물은 아무것도 없다. 날씨도, 지역도 심지어 막대하게 지불해야 할 지도 모르는 비용까지. 하지만 팬덤은 이해의 영역이 아닌 인정의 영역이니 있는 그대로 아름답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무엇인가를 순수하고 열정적으로 좋아할 수 있다는 그 마음과 부지런함은 참으로 부럽다.아이돌 그룹의 한 멤버를 사랑하는 이십 대 여성과 만옥. 그리고 그들을 바라보는 한 남자. 소설이지만 아이돌 팬덤에 대한 보고서 같은 흥미로운 소설이다. 제목은 더욱 흥미롭다. 이희주 작가의 ‘환상통’.N 그룹의 멤버 M을 사랑해 그들의 라이브 사이클을 함께하는 휴학생 m. m은 이러한 경험을 그대로 흘러가게 두지 않고 기록으로 소유한다. 연애소설을 찾아 읽으면서 자신이 겪는 사랑의 외로움을 위로받고 싶었지만, 오히려 더 큰 고독을 맛보게 된다.역시 아이돌 빠순이 만옥은 사랑을 위해 온몸을 내던진다. M을 보지 못하는 날에는 괴롭고,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니 괴롭기만 하다. 심지어 M이 먹고 건물 앞에 내놓은 빈 그릇을 사진으로 찍어 간직할 만큼 직진이다. 휴학생 m과 만옥은 공개방송에서 우연히 조우하며, M과의 사랑을 이해하고 공유하게 된다.한편 이런 만옥을 짝사랑하는 열아홉의 남자는 현실 세계에서 도무지 볼 수 없는 아이돌을 사랑하는 만옥을 이해할 수 없지
우수에 찬 귀족이반 투르게네프는 중편 <첫사랑>(1860)에서 아버지와 아들의 삼각관계를 섬세하게 그린다. 친구들의 요청에 따라 중년의 블라디미르 페트로비치는 그의 첫사랑을 회상한다. 16세의 나이에 그는 연상의 영락한 이웃 귀족 처녀 지나이다에 마음을 빼앗긴다. 그녀는 그와 시시덕거리고, 심지어 그의 감정을 시험하기까지 하나 분명히 그를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고통에 시달리던 화자는 지나이다가 아버지의 정부라는 사실을 알고 경악했고, 그들의 잔혹한 이별을 목격한다.작가는 이 자전적 이야기에서 한 귀족 청소년이 겪는 첫사랑의 시작과 끝을, 아름다움에 매혹되는 과정과 그 아름다움에 대한 환멸과 아쉬움을 당대 최고의 미문에 담아 묘사하고 있다. 일본의 인문학자 이즈쓰 도시히코의 평가대로 투르게네프에게서는 “장대한 톨스토이의 서사시적 정신의 격류나 도스토옙스키라는 극적 천재”를 볼 수는 없지만, 그의 산문은 “그립고도 냉철한 아름다움”으로 빛난다.장편 <귀족의 둥지>(1859)는 진보적 문예지 <동시대인>에 발표되었던 가장 유명한 러시아 소설 중 하나다. 비평가들은 투르게네프가 <귀족의 둥지>를 쓸 때 푸시킨의 <예브게니 오네긴>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말한다. 두 작품 모두 저명한 귀족이 어느 지방에 도착하고 그 지방의 청초하고 독립적인 소녀를 매료시킨다. 그러나 곧 그 주인공들 앞에 함께 할 수 없는 상황이 펼쳐진다.제목 <귀족의 둥지>는 투르게네프가 ‘지적이며 고상한’ 귀족의 점진적인 퇴보라는 주제를 다루고 있음을 가리킨다. 주인공 표도르 이바노비치 라브레츠키는 투르게네프의 특징을 많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