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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임스 본드는 마티니도 잘 모르면서 그렇게나 많이 마셨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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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rte] 이용재의 맛있는 미술관

    가이 뷔페(Guy Buffet, 1943~2023)의
    <완벽한 마티니의 조주(The Makings of Perfect Martini)>, 2000

    격렬한 동작으로 만든 셰이킹 마티니,
    술이 많이 희석되거나 얼음 조각 남을 수 있어
    제목과 달리 완벽하지 않을 가능성 높아
    아, 너무 좋다. 가이 뷔페(Guy Buffet, 1943~2023)의 “완벽한 마티니의 조주(The Makings of Perfect Martini, 2000)”를 보고 바로 피식, 입에서 웃음이 배어 나왔다. 만화처럼 나뉜 그림의 첫 장면만 보면 이후 벌어질 일을 전혀 예상할 수 없을 정도로 정적이고 평화롭기까지 하다. 하지만 곧 바텐더는 그야말로 미친 듯이 셰이커를 흔들어 댄다. 눈코입이 구분되지 않을 정도로 움직임이 격렬하다.

    그리고 마지막 열두 번째 장면에서 ‘짜잔’하고 마티니를 내밀고 있다. 언제 그렇게 격렬하게 움직였느냐는 듯 시치미를 뚝 떼고는 있지만 실마리는 곳곳에 드러나 있다. 한쪽으로 쏠린 머릿결이며 살짝 위로 올라온 콧수염, 조금 많이 상기된 표정까지. 그가 완벽한 한잔의 마티니를 만들기 위해 기울인 정성이 실로 막대했음을 말해주고 있다.
    Guy Buffet, <The Making of the Perfect Martini>, 2000 / 그림. ©Guy Buffet
    Guy Buffet, <The Making of the Perfect Martini>, 2000 / 그림. ©Guy Buffet
    그런데 어쩌나, 안타깝게도 그의 마티니는 제목만큼 완벽하지 않은 것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물론 그의 움직임처럼 격렬한 반응을 예상한다. 아니, 뭐가 잘못된 거죠? 셰이킹 마티니라면 살인 면허를 지닌 영국의 007이 즐겨 마셨던 것 아닙니까? 맞다. 다니엘 크레이그를 007로 발탁해 리부팅한 ‘007 카지노 로얄(2006)’에는 그의 전매특허 마티니가 탄생하는 장면이 나온다.

    “드라이 마티니. 고든스 진 3, 보드카 1에 키나 릴레(베르무트의 일종) ½의 비율로. 얼음에 흔들어 섞은 뒤 얇고 큼직하게 저며낸 레몬 껍질을 곁들여서.” 그의 느긋하면서도 자세한 칵테일 주문에 달아오른 테이블의 분위기가 조금 누그러진다. ‘그거 괜찮겠는데, 저도 같은 거 부탁합니다.’ 바짝 긴장했던 도박꾼들도 007을 따라 같은 마티니를 주문한다. 1953년 작 동명 소설에 처음 등장한 ‘베스퍼 마티니’이다.
    영화 '007 카지노 로얄(Casino Royale)' 스틸컷 / 사진출처. © IMDb
    영화 '007 카지노 로얄(Casino Royale)' 스틸컷 / 사진출처. © IMDb
    원조 논쟁이 없지는 않지만, 마티니의 역사는 적어도 백 년은 넉넉하게 넘겼다. 이미 1800년대 말 진과 베르무트(와인에 주정을 더해 도수를 높이고 향신료 등을 더한 술)를 바탕으로 만든 칵테일이 등장했다. 이후 세월을 거치면서 재료가 점차 간소해져 진과 베르무트, 딱 두 가지 술만 써 만드는 방향으로 정리되었다.

    너무 단순한 것 아니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되려 그러기에 마티니의 세계는 한결 더 복잡해지고 있다. 단순함의 틈을 비집고 셀 수 없이 많은 변종이 하나둘씩 세상에 등장했다. 일단 가장 일반적인 변종은 보드카 마티니다. 명칭처럼 진 대신 보드카를 써서 만드는데, 마지막 장면에 등장하는 ‘앱솔루트’ 병이 말해주듯 뷔페의 마티니는 보드카 기반이다.
    Guy Buffet의 <The Making of the Perfect Martini>, 2000 / 그림. © Guy Buffet
    Guy Buffet의 <The Making of the Perfect Martini>, 2000 / 그림. © Guy Buffet
    사실은 작품의 제목과 같은 ‘완벽한 마티니’도 따로 있다. 단, 베르무트와 달지 않은(드라이) 베르무트를 반반씩 써 만든다. 베르무트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진에 비해 비율이 낮지만 까다로운 사람들은 이마저도 줄이거나 아예 쓰지 않는 마티니를 선호한다. ‘드라이 마티니’다. 2020년대 초반에는 커피 리큐어 칼루아를 쓴, 정통파라면 치를 떨 에스프레소 마티니가 유행을 타기도 했다.
    에스프레소 마티니 (Espresso Martini) / 사진출처. © masileng
    에스프레소 마티니 (Espresso Martini) / 사진출처. © masileng
    이처럼 태생적인 단순함에 비해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의 다채로움을 내재해 애호가들에게 상당한 논쟁거리를 제공하는 칵테일이 마티니다. 하지만 그렇게 취향을 두고 갑론을박을 벌이는 가운데서도 긴 세월을 거치며 공감대를 형성한 부분이 있으니 바로 조주 방식이다. 요즘의 칵테일 계에서는 007의 전매특허인 ‘젓지 않고 흔들기(Shaken, not stirred)’가 마티니에게 최선이 아닐 거라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영화 '007 카지노 로얄'의 한 장면]


    젓기는 술과 얼음을 큰 유리잔에 담아 젓개로 휘젓는 반면, 섞기는 셰이커에 담아 격렬하게 흔든다. 따라서 후자의 움직임이 훨씬 더 격렬하며 술의 온도도 빨리 낮아진다. 대신 술이 많이 희석된다거나 완성된 칵테일에 얼음 쪼가리가 남을 수도 있다. 흔들면 공기가 더 많이 들어가 칵테일의 질감이 섬세하지 못하다는 지적도 있다. 그렇다면 뷔페가 그려낸 마티니의 ‘완벽함’이 반어법은 아닌가 생각도 든다.

    이용재 음식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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