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담론보다 시민과 소통 강조…체험 위주 전시물로 결실
강병근 위원장 "서울, 자연성 회복 위해 다층복합수직도시 필요"
"한강 '치수' 아닌 '이수(利水)'로 접근해야"…인식 전환 촉구
92만명 찾은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주문보다는 질문 던져야"
"이번 비엔날레는 몇몇 스타 건축가의 힘으로 이뤄진 게 아닙니다.

작은 별들이 모여 큰 별 이상의 관심을 모으는 데 성공했습니다.

"
지난 14일 서울시청 집무실에서 만난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 운영위원장인 강병근 서울시 총괄건축가는 제4회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의 성공 비결을 묻자 이같이 답했다.

그러면서 강 위원장은 그동안 전문가 중심으로 이뤄졌던 비엔날레에 다양한 시민들이 참여하게 되면서 비엔날레에서 논의되는 주제가 곧 '나의 이야기자, 우리의 이야기'라는 공감대가 형성됐다고 설명했다.

9월 1일부터 10월 29일까지 제4회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의 59일간 여정에는 92만명의 관람객이 함께했다.

이는 역대 최대 관람 인원이다.

4회차까지 누적 관람객은 275만명으로, 이번 대회로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는 서울시를 대표하는 국제행사로 자리매김했다.

'땅의 도시, 땅의 건축'이라는 주제로 열린 이번 비엔날레는 도시건축 관련 전문가, 시 정부, 공공기관, 예술작가, 학생, 시민의 작품 등을 적절히 배치해 전문성을 높이면서 대중성을 놓치지 않는 균형감을 보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열린송현녹지광장을 비엔날레의 주 무대로 삼은 것도 대중과 접점을 늘리며 소통·호흡하기 위한 선택이었다.

강 위원장은 "기존 비엔날레는 아무래도 전문가 중심으로, 무거운 담론 위주로 진행되다 보니 실내에서 행사가 이뤄지는 경우가 많았다"며 "이번 비엔날레는 도면만으로 담을 수 없는 것을 현장에서 보여주기 위해 열린송현녹지광장을 선택했다"고 설명했다.

92만명 찾은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주문보다는 질문 던져야"
또 이번 비엔날레는 단순히 보여주는 방식에서 직접 체험하는 방식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갔다.

열린송현광장에 펼쳐진 파빌리온(가설 건물)을 통해 주변 경관과 관람객이 함께 상호작용하고 도시의 구조를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 것이다.

대표 사례로는 열린송현녹지광장에 마련된 체험형 주제관인 '하늘소(所)'와 '땅소'를 꼽을 수 있다.

관람객들이 땅소에 담긴 물을 들여다보고 직접 발을 담가보기도 하면서 땅의 기운을 느끼고, 전망대 형태의 하늘소에 올라 주위를 둘러보며 자연이 우리와 얼마나 밀접한 관계인지를 깨달을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하고 싶었다고 강 위원장은 설명했다.

강 위원장은 또 이번 비엔날레에 대해 "미래의 비엔날레로 가는 과도기적 행사였다"고 평가했다.

그는 "비엔날레를 전문가 중심에서 미래에 대한 담론 위주로 끌고 갈지, 아니면 시민들 가까이에서 현장 중심으로 끌고 갈지 늘 갈등이 있다"고 고민을 털어놓았다.

이어 "담론의 장으로서의 비엔날레도 바람직하지만, 담론 위주로 행사가 흘러가면 시민들과 공유하고 공감하기가 너무 어렵다"고 한계를 지적했다.

그러면서 강 위원장은 "수많은 담론도 결국 시민을 위한 것이고 국민을 위한 것이기 때문에 이를 좀 더 쉽게 풀어 이야기할 때 더 많은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다"고 강조했다.

강 위원장은 또 '주문'과 '질문'의 차이를 설명하면서 자신의 행사 철학도 밝혔다.

전문가 위주로 비엔날레를 치르다 보면 어떤 일을 어떻게 해달란 식으로 먼저 주문서를 주고 주문에 따라 비엔날레가 진행되는데, 주문보다는 질문을 던지고 그 속에서 전문가들이 시민들의 욕구와 사회적 수요를 파악할 수 있는 형태로 비엔날레가 진행되는 게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강 위원장은 제5회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와 서울의 100년 미래에 대한 밑그림도 설명했다.

핵심 키워드로는 자연과 기술, 사람을 꼽았다.

강 위원장은 "서울은 자연으로 둘러싸인 곳에서 태어났고, 산과 강이 전체 도시 면적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고 할 정도로 자연의 영향력이 큰 도시"라며 "기후 변화에 우리가 어떻게 대처해야 하고, 무엇을 해야 자연과 공존이 가능한지 서울이 선도적으로 답해야 한다"고 했다.

92만명 찾은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주문보다는 질문 던져야"
이어 자연성을 회복하는 방법론적 접근으로는 수직 도시를 제시했다.

서울이라는 공간의 수평적 확장에는 한계가 있고 자연과의 공존을 위해서는 입체적 방식으로 다층복합수직도시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때 자연과 사람을 연결하는 매개체가 기술이며, 하이 테크를 통해서만 서울의 대개조도 가능하다고 강 위원장은 강조했다.

건국대 건축대학 명예교수인 강 위원장은 제4대 서울총괄건축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서울총괄건축가는 서울시 도시건축 정책과 공간환경 사업 전반을 총괄 기획하고 조정하는 민간 전문가다.

그는 노들섬 재조성 사업, 감성도시 구현, 서울형 수변감성도시, 도시건축디자인 혁신, 그레이트 한강 등 서울의 도시품격 향상과 미래도시를 고려한 도시공간전략 자문을 맡았다.

그는 '그랜드 서울'에 대한 구상도 밝혔다.

강 위원장은 "서울이 조금 더 초광역적인 대한민국 수도 역할을 해야 한다"며 "현재 수도권보다 더 넓은 범위에 도시들과의 역할을 분담하고 기능이 연계돼야 한다"고 자신의 구상을 밝혔다.

"도로와 철도, 물길 등 서울과 인접 도시들의 핵심 인프라가 맞물려 있는 상황에서 행정적 범위가 어떻든 간에 도시의 공간적 범위는 경계가 없어야 한다"고 강 위원장은 강조했다.

아울러 오세훈 서울시장의 '한강 르네상스 2.0' 프로젝트와 관련해서는 "기존에 강을 치수(治水)의 대상으로만 접근하던 소극적인 접근에서 벗어나야 한다"며 치수가 아닌 이수(利水)로의 인식 전환을 촉구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