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소문 아파트는 만초천의 휘어진 물길 위에 지어진 아파트이다.
서소문 아파트는 만초천의 휘어진 물길 위에 지어진 아파트이다.
2005년 이명박 대통령은 1976년 청계고가 개통으로 복개가 마무리된 청계천을 복원했다. 처음에는 마냥 신기했다. 도심에 물이 흐른다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현대차 프라이드를 타고 광교에서 청계고가를 올라 시내를 달리면 마치 어릴 적 어린이대공원에서 청룡 열차를 타듯 미끄러지고 올라가는 맛이 일품이었다. 그런데 그 고가를 드러내니 거짓말 같은 하천이 펼쳐졌고 지금은 머릿속에서 청계고가의 기억이 희미해져 간다.

서울은 네 개의 산으로 둘러싸여 있다, 내사산(內四山)이라 부른다. 북악산, 인왕산, 목멱산(남산), 낙산이다. 산이 있으면 계곡이 생기고 계곡에는 물이 흐르는 것이 당연한 이치인데 도대체 물은 어디에 있단 말인가? 대답은 간단하다. 도로 아래에 있다.

하천을 모두 도로로 복개했기 때문에 자연적인 하천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50년 전만 해도 시내에 많은 하천을 볼 수 있었다. 대부분의 하천은 1960년대에 복개되었다. 내사산에서 타고 내려오는 물줄기는 도성 안에 한 가운데로 모여 청계천을 이룬다.

청계천이 사대문 안에서 흐르는 하천이라면 사대문 밖을 대표하는 하천이 만초천이다. 아무리 눈을 씻고 찾아보려 해도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성문 밖 이 일대의 지명을 가만히 살펴보면 만초천의 흔적들이 도처에서 확인된다.

인왕산과 안산의 사이인 무악에서 발원한 만초천은 서대문 영천시장 앞에서 석교(石橋)라는 돌다리 밑을 지나게 된다. 지금도 이 일대는 ‘석교’라는 지명을 사용한다. 석교 다리의 윗동네라 하여 교북동(橋北洞), 아랫동네라 하여 교남동(嶠南洞)이다. 그 주변의 평평한 동네가 평동(平洞)이다.

그 동네에 찬 얼음물이 늘 솟아나는 샘이 있다 하여 냉천동(冷泉洞)이며 그 샘이 영험하여 먹는 사람마다 병이 나으니 영천(靈泉)이라 부른다. 이 물길이 경기감영 앞을 흐른다. 지금의 경기도청이다. 사대문 밖이니 경기도이고 서대문 밖에 경기감영이 있었다. 경기감영 앞의 다리라 하여 경교(京橋)이다. 경교 다리 앞의 큰집, 경교장(京橋莊)이 있었다.
강북삼성병원내의 경교장 모습
강북삼성병원내의 경교장 모습
백범 김구 선생님이 해방 후에 사시다가 돌아가신 곳이다. 감사한 것은 그 경교장이 강북삼성병원 내에 그대로 보존돼 있다는 것이다. 경교를 지나는 만초천은 농협, 이화여고 앞을 흐르게 된다. 그 물길이 휘어진 물길 위에 지어진 아파트가 1971년에 지어진 서소문아파트이다. 이 아파트가 휘어진 것은 물길 위에 지어졌기 때문인데 사실 자세히 보면 휘어진 것은 아니고 2번 꺾여진 것을 알 수 있다. 아파트가 곡선으로 휘었다면 가구 배치에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다.

1층에 상가와 맛집들이 즐비하다. 주변에 오피스들이 포진하여 가격이 착하고 맛있는 집들이 많다. 특이한 점은 1층에 개구부를 두어 뒷골목으로 연결된다는 것이다. 뒷길로 가면 마치 60년대의 서울 길을 연상케 하는 건물들이 많이 남아있다. 이 길은 서대문역으로 통하는데 꺾이면 또 나타나고, 막힌 듯 트여있어 마치 60, 70년대의 시간 여행을 하는 기분이다. 더 재미있는 것은 이 아파트의 지목이 천(川)으로 되어있다는 것이다.
서소문 아파트 앞 붉은길을 걷다보면 하천과 연결된 맨홀을 볼 수 있다.
서소문 아파트 앞 붉은길을 걷다보면 하천과 연결된 맨홀을 볼 수 있다.
그래서 이 아파트에서 사는 사람들은 하천 점용료를 낸다. 이 아파트도 곧 재건축이 된다고 하니 한 번 마음 잡고 서소문 아파트의 개구부를 통해 서대문으로 통하는 뒷길 탐험을 시도할 일이다. 1971년에 지어졌다. 사람으로 비유하자면 50살이 넘었으니 이제 지천명(知天命)을 다 하고 사라지는 셈이다.

이 아파트 옥상에서 휘어진 각을 보면 인근 오진빌딩에서 선회하여 서소문공원 앞으로 물길이 흐르는 것을 알 수 있다. 동네의 이름 또한 흥미롭다. 미근동‘渼芹洞’이다. 미근의 미渼 자는 '물결 무늬 미'자이며 근芹은 '미나리 근'이다. 한자명의 뜻대로 하면 ‘미나리가 물결치는 마을’이다. 만초천에 미나리가 많아서 동네 이름에 미나리가 붙는다. 물이 많은 미나리 논을 ‘미나리꽝’이라고 하는데 이 지역에서 나온 말이다.

지금 이곳에 서서 미나리꽝을 생각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미나리가 물결치는 마을, 얼마나 아름다운 이름인가? 미나리의 상큼하고 향기로운 향이 마을을 감싸는 듯하다. 1층 상가에 즐비한 커피집에서 아메리카노를 한 잔 들고 미나리가 물결치는 동네를 한 바퀴 돌 일이다. 그 물길이 지금의 한국경제신문 앞에서 선회하여 큰 모래사장을 형성하였고 그곳에서 청파, 원효를 지나 한강으로 물길이 빠졌다.

여기 서소문공원 앞 넓은 모래사장이 조선 제일의 참수장이다. 이곳에는 만초라는 넝쿨식물도 많았다. 이곳에서 태어난 우리나라 첫 영세자 이승훈이 고향 천의 이름을 호로 만들어 <만천 이승훈>이 된 것이다. 그는 왜 이곳에서 참수되었을까? 왜 이곳에 참수장이 생겼을까?

으스스한 이야기는 그뿐이 아니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괴물’이 만초천에서 산다고 하니 지금 복개된 어디쯤엔가 괴물이 살지도 모를 일이다. 괴물이 복개를 뚫고 나오기 전에 한 번 이 지역을 찬찬히 둘러보시라.
이화외국어고등학교 앞의 도로에서 서소문아파트를 보면 만초천의 휘어진 물길을 알 수 있다.
이화외국어고등학교 앞의 도로에서 서소문아파트를 보면 만초천의 휘어진 물길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