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에셋증권 / 사진=한경DB
미래에셋증권 / 사진=한경DB
마켓인사이트 11월 7일 오후 4시 25분

미래에셋증권이 대체투자 부서의 한 직원이 회사 투자심의위원회를 거치지 않고 2억1000만달러(약 2800억원)의 대출계약서를 위조해 해외 거래 업체에 제공한 사실을 자체 감사를 통해 적발했다. 미래에셋증권은 거액의 손해배상 소송을 당할 위기에 처했다.

7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미래에셋증권은 지난 6월 투자개발본부 A이사가 대출계약서를 위조한 사실을 파악하고 두 달 뒤 면직 처분했다. 이번 사건은 미국 바이오연료 시설 개발업체 라이즈리뉴어블스가 대출금을 받지 못하자 올해 상반기 한 민간 중재업체를 통해 미래에셋에 손해배상을 요구하면서 드러났다.

라이즈는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에서 신재생 디젤연료 시설을 증설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A씨는 2021년 1월께 이 프로젝트에 미래에셋증권이 2억1000만달러를 대출해주겠다는 내용을 담은 30여 쪽의 대출계약서를 위조해 송부했다.

하지만 A씨는 라이즈에 대출금을 제공하지 못했다. 투자심의위 승인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에 A씨는 라이즈에 5000만달러(약 675억원)만 대출해주겠다고 설득한 뒤 특수목적법인(SPC)을 설립해 개인적으로 대주단을 구성하는 방안까지 추진했지만 이 역시 실패한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감독원은 이 같은 미래에셋증권의 대출계약서 위조 사태를 보고받고 경위 파악에 나섰다. 미래에셋이 A씨를 검찰에 고소해 수사가 진행될 예정이다.

미래에셋증권 관계자는 “이번 사건은 직원이 개인적으로 벌인 것으로 회사 내부통제 시스템에 따라 상황을 인지해 자체 감사를 진행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금전적인 피해는 전혀 없었다”며 “해당 직원은 해고 처리했다”고 했다.

IB 직원의 일탈…대체투자 '모럴해저드' 심각

증권회사 투자은행(IB) 부서에서 계약서 작성은 기본 중 기본에 해당하는 업무다. 계약서는 협상과 로펌의 법률 자문, 내부 의사결정 과정을 거쳐 체결된다. 국내 증권사 자기자본 1위인 미래에셋증권 소속 직원이 대출계약서를 위조한 것이 업계에서 파장을 일으키는 이유다.

허위 자금 반환 약정도 체결

미래에셋증권 투자개발본부 소속이던 A씨는 2020년 하반기부터 미국 라이즈리뉴어블스가 추진하는 프로젝트에 관심을 둔 것으로 전해졌다. 라이즈는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에서 신재생 디젤 연료 시설을 운영했다. 하루 7500배럴을 생산할 수 있도록 탱크 등 시설물을 증설하기 위해 자금 조달이 필요했다.

A씨는 대체투자 브로커인 B씨를 통해 라이즈의 증설 프로젝트를 소개받았다. 내부 투자심의위원회에 올리지도 않고 2억1000만달러(약 2800억원)의 대출계약서를 위조해 라이즈에 제공했다.

미래에셋증권은 A씨의 대출 계약서 위조를 자체 감사하는 과정에서 그가 15억원 안팎의 자금 반환 약정 계약도 꾸민 사실을 파악했다. 이 역시 ‘미래에셋증권이 보관하는 자금을 반환하는 의무를 이행하겠다’는 허위 내용을 담은 계약이다. 아울러 해외 업체를 상대로 대출약정 계약을 시도한 다른 흔적이 다수 발견됐다. 자신의 서명을 미리 해둔 대출계약서 가안도 여러 건 발견된 것으로 알려졌다.

미래에셋증권은 라이즈와의 소송에서 지면 대규모 충당금을 쌓아야 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라이즈는 민간 중재업체를 통해 손해배상 소송의 사전 단계에 해당하는 민간 조정 신청을 제기했다. 민간 조정이 불발되면 소송으로 이어진다. 미래에셋증권은 라이즈가 무리한 손해배상 요구를 하고 있다고 반박한다. 직원의 일탈로 작성된 독단적인 허위 계약서라는 점과 권한이 없는 팀장급 직원의 서명 날인은 무효라는 논리다.

유동성에 ‘눈먼 돈’ 횡행

금융투자업계에선 이번 위조 사건은 부동산 대체투자 활황기의 이면을 보여주는 사례로 남을 것이란 분석을 내놓고 있다. 부동산 등 대체투자는 딜 규모가 작더라도 거래에서 떨어지는 수수료만 수십억원에 달해 ‘착복 인센티브’가 컸다는 전언이다. 코로나19 이후 눈먼 돈이 시장에 풀리며 시장 감시 기능이 작동하지 못한 결과다. 이번 미래에셋증권 사건은 해외 업체 항의로 발각됐지만 다른 곳은 회사에서 관련 직원을 내보내는 식으로 사건을 무마하고 있다는 전언도 나온다.

미래에셋증권 직원이 위조 행각을 벌인 시점은 2020~2021년에 몰려 있다. 대체투자를 하면 고수익을 낸다는 기대에 ‘묻지마 투자’가 이뤄진 시기다.

이때의 투자 비리들이 부동산, 인프라 등을 막론하고 연달아 수면 위로 올라오고 있다. 경남은행에서 2988억원의 프로젝트파이낸싱(PF) 횡령 사태가 터졌고 하이투자증권은 대규모 손실과 비위 행위 책임을 물어 15명 안팎의 PF 임직원에게 중징계를 내리기로 했다.

류병화 기자 hwahw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