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혜정 감독의 멜로드라마 ‘너를 줍다’에서 지수(김재경 분)가 쓰레기를 뒤지는 장면.  영화로운 형제 제공
심혜정 감독의 멜로드라마 ‘너를 줍다’에서 지수(김재경 분)가 쓰레기를 뒤지는 장면. 영화로운 형제 제공
“쓰레기에도 최선을 다하는 남자. 그의 쓰레기에는 품위가 있다. 존재의 최후를 배려하는 걸까.”

오는 8일 개봉하는 영화 ‘너를 줍다’에서 극 중 주인공 지수(김재경 분)가 바로 옆집에 이사 온 우재(현우 분)가 버린 쓰레기봉투를 집어와 그 내용물을 분석한 뒤 내뱉는 독백이다.

지수는 사랑에 배신당해 깊은 상처를 입은 후 쓰레기장에서 쓰레기봉투를 몰래 들고 와 그 내용물을 분석해 봉투 주인의 습성을 파악하는 악취미를 갖게 된다. “버려진 것들이 그 사람에 대해 더 솔직하게 말해준다”고 믿는 지수. 온라인 먹거리 쇼핑몰의 유능한 팀장인 그는 잘못된 행위임을 알면서도 “나쁜 뜻은 없다”고 합리화한다.

우재에게 호감이 생긴 지수는 쓰레기에서 얻은 정보들을 더 깊이 파고든다. 우재가 키우는 물고기를 사서 키우고, 그가 즐겨 마시는 차를 구입한다. 우재가 일요일 오전에 자주 가는 영화관에 들르고 그가 친구들과 만나는 카페에도 혼자 가본다.

‘너를 줍다’는 심혜정 감독이 고령화 사회의 이면을 파고든 ‘욕창’(2019) 후 4년 만에 선보이는 장편 영화다. 올 4월 말 열린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처음 공개돼 CGV상, 왓챠가 주목한 장편상 등 2관왕에 오르며 호평받았다. 심 감독은 요즘 누군가와 사귀기 전 그 사람의 SNS를 미리 살펴보는 세태와 남이 버린 쓰레기에서 인물에 대한 정보를 얻는 내용의 하성란 작가 소설 <곰팡이꽃>에서 작품의 소재를 얻었다고 했다.

지수와 우재가 가까워지고 서로 호감을 품게 하는 결정적인 소재는 물고기 ‘안시 롱핀’이다. 우재는 어느 날 안시 롱핀을 사 들고 온 지수에게 말을 걸고, 물고기를 키우는 데 필요한 장치(토굴)를 건네준다. 또 며칠 집을 비우는 동안 자신이 키우는 안시 롱핀에게 먹이를 주라는 부탁을 지수에게 한다. ‘천사의 날개’로 불릴 만큼 겉은 화려하지만 토굴에 들어가 두문불출하는 속성을 지닌 안시 롱핀은 지수에 관한 은유로도 읽힌다.

급격히 친해진 두 사람이 다시 멀어지는 근본적인 원인은 믿음과 의심, 행복에 대한 견해차다. 우재는 말한다. “진짜가 됐든 가짜가 됐든 그 사람이 보여주고 싶은 대로 봐주는 것도 괜찮지 않아요? 나를 위해서라도. 믿으면 행복해져요.” 하지만 지수는 선뜻 동의하지 않는다. “인스타그램에는 불행이 없잖아요. 다 행복한 사진만 가득하지. 인스타에 올라가지 않은 수많은 사진 속에 그 사람이 담겨 있을지도 몰라요. 버려지는 것들이 그 사람에 대해 더 솔직하게 말해주니까.”

쓰레기를 몰래 살펴보는 지수의 비밀을 우재가 알게 되면서 두 사람의 관계는 파국을 맞는 듯했다. 하지만 우재가 보낸 메시지에 지수가 반응하면서 영화는 ‘열린 결말’로 막을 내린다. “믿음은 의지가 아니라 그 사람과 함께하는 시간이 쌓여서 만들어지는 감정이잖아요. 당신과 함께하는 시간을 만들고 싶어요.”

지수와 우재 역을 각각 맡은 배우 김재경과 현우가 캐릭터에 동화되면서도 과장되지 않은 모습으로 흡인력 있는 연기를 펼쳤다. 영화는 밀도 높고 잘 짜인 극적 구성, 동시대적 감성이 진하게 묻어나는 대사들로 사랑과 인간관계에 대한 진솔한 메시지를 감각적으로 풀어놓는다.

송태형 문화선임기자 toughl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