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의 인생에는 '결정적 순간들'이 있기 마련이다. 25일 3주기를 맞는 고 이건희 삼성 회장의 삶에도 그런 순간들이 있었다. 변방의 2류 기업 삼성을 세계 일류로 급성장시켰던 그의 삶을 몇 단어로 요약하기는 어렵다. 그래도 그가 세상을 떠난 뒤 우리에게 남긴 것들 가운데 가장 강렬한 두 단어를 꼽자면 '신경영' 과 '이건희 컬렉션'이 아닐까. 한경의 옛 필름들 속에서 그의 삶을 예언하는 듯한 장면들을 찾을 수 있었다. 대단한 뉴스의 현장은 아니지만,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순간들이다.
이건희 삼성 부회장(왼쪽)과 이병철 삼성 회장(오른쪽 두번째) 등이 경기 용인 호안미술관 개관식에서 전시장을 둘러보고 있다. /한경디지털자산
이건희 삼성 부회장(왼쪽)과 이병철 삼성 회장(오른쪽 두번째) 등이 경기 용인 호안미술관 개관식에서 전시장을 둘러보고 있다. /한경디지털자산
장면1, 1982년 4월 23일 경기 용인의 호암미술관 개관식. 이병철 회장 및 문화계 주요 인사들과 함께 전시작을 살펴보는 이건희 부회장의 표정은 사뭇 진지하다. 호암미술관은 이병철 회장이 설립한 삼성문화재단이 세웠다. 민간 미술관으로는 동양 최대의 호암미술관은 이병철 회장이 기증한 1100여 점의 문화재와 미술품을 중심으로 총 1600점의 작품으로 문을 열었다. 이 가운데는 국보 138호인 국내 유일 가야금관을 비롯해 국보 7점, 보물도 4점이 포함돼 있었다. 가야금관이 일반에게 공개된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다. 박수근, 김환기 등의 작품도 들어 있었다. 박수근의 '소와 아이들'도 전시됐다.

예술을 사랑하고, 예술에 투자하고, 예술의 향기를 세상과 공유한 이건희 회장의 삶은 이렇게 아버지 이병철 회장으로부터 시작된 것이었다. 전시장을 함께 둘러보는 아버지와 아들. 이 장면이 사진 찍히고 약 40년 뒤, 2만3284 점의 '이건희 컬렉션'이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현대미술관 등에 기증됐다. 이건희 회장 타계 후 '이건희 컬렉션' 전시가 전국에서 이어지고 있고, 전시장은 관람객들로 붐빈다. 아버지가 뿌린 문화예술의 씨앗들을 아들이 활짝 꽃피운 것이었다.
이병철 삼성 회장(앞줄 왼쪽 두번째)와 이건희 삼성 부회장(세번째) 등이 1982년 10월 15일 한국종합전시장 SITRA 전시관에서 각종 첨단 전자제품을 살펴보고 있다. /한경디지털자산
이병철 삼성 회장(앞줄 왼쪽 두번째)와 이건희 삼성 부회장(세번째) 등이 1982년 10월 15일 한국종합전시장 SITRA 전시관에서 각종 첨단 전자제품을 살펴보고 있다. /한경디지털자산
장면2, 1982년 10월 15일 서울 강남 한국종합전시장. 이병철 삼성 회장이 이건희 삼성 부회장과 삼성 계열사 사장단을 이끌고 서울국제무역박람회(SITRA) 전시장을 찾았다. 당시 SITRA는 건국 이래 최대의 국제 상품 전람회였다. 세계 40개국에서 262개 업체들이 참가해 첨단 기술과 상품을 소개하는 행사였다. 행사 기간 동안 무려 220만 명의 관람객이 들었을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이 회장 일행은 삼성관은 물론 국내외 참가 기업들의 부스를 꼼꼼히 살펴봤다. 그들은 전시 상품의 성능과 특징을 상세히 파악했다. 이건희 부회장의 눈빛은 첨단 제품 앞에서 유난히 반짝였다. 세계 일류 상품들을 바라보며 이건희 부회장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이때 '초일류 삼성'을 꿈꾸기 시작한 것일지도 모른다.
 이건희 삼성 회장이 1987년 12월1일 취임식에서 눈물을 글썽이며 취임사를 하고 있다./한경디지털자산
이건희 삼성 회장이 1987년 12월1일 취임식에서 눈물을 글썽이며 취임사를 하고 있다./한경디지털자산
장면3, 1987년 12월 1일 삼성그룹 회장 취임식장. 이병철 삼성 회장이 별세하고 12일째 되던 이날, 이건희 부회장이 삼성그룹 회장으로 취임했다. 행사장에 입장할 때부터 이건희 회장의 표정은 침울했다. 이 회장은 취임사를 하며 마침내 눈물을 보이기 시작했다. 흐르는 눈물을 참으며 이어간 취임사에서 이 회장은 "90년대까지 삼성을 세계적 초일류 기업으로 성장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이건희 삼성 회장이 1987년 12월1일 취임식에서 눈물을 글썽이고 있다. /한경디지털자산
이건희 삼성 회장이 1987년 12월1일 취임식에서 눈물을 글썽이고 있다. /한경디지털자산
이후 퇴장할 때까지 이 회장의 얼굴은 슬픔으로 가득했다. 취임식에서 보인 눈물은 어떤 뜻을 담고 있었을까.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 2~3류 수준이었던 삼성을 세계 초일류로 키워내겠다는 각오, 그리고 그것이 주는 두려움이 뒤섞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건희 삼성 회장(왼쪽)이 19894년 9월9일 서울 잠실운동장에서 열린 삼성가족 한마음 체육대회에서 삼성가족에게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한경디지털자산
이건희 삼성 회장(왼쪽)이 19894년 9월9일 서울 잠실운동장에서 열린 삼성가족 한마음 체육대회에서 삼성가족에게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한경디지털자산
장면4, 1994년 9월 9일 잠실운동장. 이건희 회장은 삼성그룹 임직원과 가족을 초대해, 서울 잠실운동장에서 '삼성가족 한마음 축제'를 열었다. 이건희 회장이 '프랑크푸르트 선언'을 통해 삼성이 뼈를 깎는 혁신을 통해 글로벌 일류기업으로 성장해야 한다는 '신경영' 선포 1주년을 기념한 행사였다. 이 회장은 이날 행사장으로 들어서며, 평소와는 다른 모습을 보여줬다. 손을 번쩍 들어 스탠드를 가득 메운 삼성 가족들의 환호에 답했다. 스탠드 중간엔 '세계를 보자, 미래를 품자'라는 구호가 걸려있었다. 그의 표정엔 자신감이 넘쳤다. 평소에 보이지 않던 미소가 얼굴에 번졌다. 이 회장은 이후 삼성 회장으로, IOC 위원으로, 전경련 회장단의 일원으로 헤아릴 수 없이 언론에 모습을 드러냈다. 하지만 1994년 9월의 저 순간처럼 이 회장의 눈빛이 빛난 적은 없었다.

호암미술관을 둘러보던 진지한 표정, SITRA 전시장에서 보인 호기심 가득한 눈빛, 취임식에서의 슬픈 얼굴, 그리고 삼성 가족 한마음 축제장에서의 자신만만한 태도. 그 네 장면에서 고 이건희 삼성 회장의 열정과 고민과 희망을 엿볼 수 있었다.
신경훈 디지털자산센터장 khsh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