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범죄로 '현장 암표'만 처벌해 온라인 구멍…1명이 80여 장 구매도
내년 3월부터 매크로 철퇴…업계, 모니터링 강화·암표 재정의 요구

K팝 시장이 날로 성장하면서 대중음악 콘서트의 인기도 치솟고 있지만, 암표 역시 활개를 치고 있다.

허술한 법망을 뚫고 버젓이 거래되는 암표에 K팝 시장이 멍든다는 지적이 잇따르자, 내년 3월부터 매크로(자동입력반복) 프로그램을 이용한 암표를 처벌하는 규정이 신설됐다.

그러나 가요계에서는 이 역시 문제를 뿌리 뽑기에는 부족하다며 모니터링 강화와 암표 의미 재정립 등 보다 근본적인 대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김동률·다비치도 '분통'…암표 활개에 K팝 멍든다
◇ 암표 활개에 가수·팬 모두 피해자…"너무 속상하고 미안"
22일 가요계에 따르면 중고나라 등 온라인 거래 사이트에는 인기 콘서트의 티켓이 정가보다 수만∼수십만원 비싸게 거래되고 있다.

임영웅의 서울 단독 콘서트의 경우 정가 15만4천원짜리 SR석이 장당 45만∼50만원에 판매되고 있는 것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정가의 무려 3배 이상을 받는 것이다.

무대와 가까운 16만5천원짜리 VIP석의 경우 정가의 4배에 육박하는 60만원에 판매되는 사례도 있었다.

인기 콘서트의 경우 예매 시작과 동시에 매진이 속출하기에 일반 팬은 티켓을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다.

특히 잠실주경기장 리모델링 등으로 공연장 부족이 심화해 인기 가수가 체급을 낮춰 대관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티켓팅은 더욱 어려워졌고, 암표 수요·공급은 폭증했다.

정의당 류호정 의원이 한국콘텐츠진흥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암표 신고는 2020년 359건, 2021년 785건, 2022년 4천224건으로 가파르게 증가했지만, 제대로 된 조치는 전무했다.

사정이 이러다 보니 아이유는 티켓 부정거래를 신고한 팬에게 해당 티켓을 증정하는 '암행어사 포상'을 도입했고, 임영웅 역시 불법 거래 의심 예매를 강제로 취소시켰다.

그러나 최근 전석 매진을 기록한 어느 인기 가수 콘서트에서는 암표상으로 추정되는 개인이 아이디를 바꿔가며 80장이 넘는 티켓을 사들인 사례가 적발되는 등 암표 거래는 그 기세가 꺾이지 않고 있다.

김동률은 최근 4년 만에 연 단독 콘서트에서 "리셀링(Reselling)과 매크로의 문제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문제"라며 "제가 혼자서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다음에는 여러분들이 더 잘 볼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다시 한번 진심으로 죄송하다"고 말하기까지 했다.

다비치의 강민경도 자신의 SNS에 "몹쓸 암표상 관련 제보 글을 받고 너무 속상하고 미안했다"며 "앞으로 더 많이 신경 쓰고 대책을 강구하겠다.

불법 거래 티켓은 꼭 제보해 달라"고 토로했다.

한 인기 가수의 소속사 관계자는 "암표가 활개를 치면 결국 양도를 원천 봉쇄하고, 예매자가 곧 관람자라는 것을 확인하는 본인 확인 절차를 엄격하게 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렇게 되면 본인 확인 전담 인원만 수십명이 필요하게 된다"며 "이는 곧 티켓 가격 상승으로 이어져 가수도 팬도 모두가 피해자가 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덧붙였다.

김동률·다비치도 '분통'…암표 활개에 K팝 멍든다
◇ 내년 3월부터 매크로 암표 처벌하지만…근절엔 회의론도
암표가 보란 듯이 팔리는 것은 이를 규제하는 법망이 허술하기 때문이다.

공연법은 "문체부 장관은 공연 관람권 등의 부정 판매를 방지하기 위해 노력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선언적 효력에 그치고 있다.

현재 암표 처벌 규정은 경범죄처벌법에 마련돼 있다.

흥행장과 경기장 등에서 웃돈을 받고 입장권 등을 다른 사람에게 되판 사람을 20만원 이하의 벌금, 구류 또는 과료의 형으로 처벌한다.

그러나 이는 오프라인 현장 거래만 규제할 뿐, 암표 매매의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온라인 거래는 제재 대상이 아니다.

법 자체가 수십 년 전에 만들어진 탓이다.

다만, 매크로를 사용해 1천장 넘게 티켓을 구매하는 등 '도 넘은' 일부 경우에 대해서는 업무방해죄로 형사처벌 하는 사례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이는 극히 일부에 국한되는 것으로 전해졌다.

상황이 이래지자 국회는 올해 2월 매크로를 이용해 입장권을 부정 판매하는 것을 금지하고, 위반 시 이를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는 공연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이 개정 법률은 내년 3월 시행된다.

하지만 가요계 일각에서는 개정 법률도 매크로를 이용한 암표만 처벌해 실효성이 떨어지고, 이마저도 일일이 잡아내기가 쉽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동률·다비치도 '분통'…암표 활개에 K팝 멍든다
윤동환 한국음악레이블산업협회장은 "매크로의 등장으로 암표상이 조직화·기업화돼가고 있다"며 "현실적으로 분업화된 암표상 개개인의 매크로 구매를 적발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꼬집었다.

윤 회장은 "우선 수십 년 전에 만들어진 (경범죄처벌법상) 암표 규정부터 개정돼야 한다"며 "현재는 온라인과 SNS에서 거래하면 암표로 인정되지 않는데, 이는 분명히 문제"라고 지적했다.

한 가요계 관계자는 "온라인 예매처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본다"며 "암표가 특히 기승을 부리는 일정 규모 이상의 공연만이라도 면밀히 모니터링하는 체계만 갖춰져도 피해를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제언했다.

정부 역시 심각해진 암표 문제를 인지하고 나름의 대책 마련에 골몰하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 관계자는 "현행 제도하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들을 고민하고 있다"며 "실효성 있는 처벌을 위해 예매처·경찰청과 협조 체제를 구축하고 있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