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ADVERTISEMENT

    [책마을] "악은 평범하다" 외친 한나 아렌트의 모든 것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난간 없이 사유하기

    한나 아렌트 지음 / 신충식 옮김
    문예출판사 / 824쪽│4만3000원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남긴
    20세기 저명한 정치사상가
    일생동안 남긴 대담·에세이 등
    집필 순서대로 한 권에 담아내

    "사유가 위기를 넘는 방법이다"
    [책마을] "악은 평범하다" 외친 한나 아렌트의 모든 것
    사람들은 흔히 ‘악(惡)’을 별나게 생각한다. 악인은 평범한 시민과는 전혀 다른 끔찍한 괴물이고, 그의 악행은 철저하게 의도된 결과라고 믿는다. ‘그러므로 나는 악하지 않다’는 믿음이 그 아래에 깔려 있다.

    20세기 저명한 정치사상가 한나 아렌트(1906~1975)는 이런 믿음을 산산조각 냈다. 독일 나치 전범 아돌프 아이히만의 재판을 지켜본 그는 ‘악은 평범하다. 거대한 악의 뿌리에는 타인의 고통을 상상하지 못하는 평범한 사람들의 게으름과 멍청함이 있을 뿐이다’고 결론 내렸다. 이것이 그 유명한 ‘악의 평범성’이고, 이 개념은 훗날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라는 역작으로 출간된다.

    [책마을] "악은 평범하다" 외친 한나 아렌트의 모든 것
    최근 국내 출간된 <난간 없이 사유하기>는 아렌트가 일생 동안 발전시킨 사유의 과정을 한 권으로 살펴볼 수 있는 책이다. 그의 조교 출신인 제롬 콘이 아렌트의 글을 엮었다. 아렌트가 47세이던 1953년부터 70세 나이로 사망하기 전까지 남긴 글, 강연, 서평, 대담 등을 집필 순서대로 실었다. ‘악의 평범성’ 정도만 들어봤을 뿐 아렌트의 철학을 깊이 들여다본 적 없고, 그럼에도 아렌트를 이해하고 싶은 독자들을 위한 책이라고 할 만하다.

    아렌트가 평생에 걸쳐 주장한 내용은 ‘사유하라. 위험은 무(無)사유에서 나온다’로 요약할 수 있다. 깊이 생각하지 않고 사는 대로 살면, 우리는 일상에서 만나는 사건이나 사람에 대해 판단도 인식도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비판적 사고가 없는 삶은 잘못된 사고보다 위험하다는 게 아렌트의 주장이다.

    “사유는 위기에 대면하는 한 가지 방식입니다. 사유가 위기를 제거하기 때문이 아니라 오직 사유가 일상생활에서 우리가 대면하는 것이 무엇이든 대면할 수 있도록 항상 우리를 새롭게 준비해주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유의 핵심은 ‘언어’와 ‘상상력’이다. 책을 번역한 신충식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는 “언어는 세계를 비추는 거울이 아니라 우리가 세계에 접근할 수 있게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언어는 세계에 대한 우리의 견해를 특수한 방식으로 형성해준다”고 설명했다. 또 사유는 단순히 자신의 경험을 되새김질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시각에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능력이다.

    책 제목은 이런 아렌트의 사상을 요약한다. ‘난간 없이 사유하기’는 누군가의 의견에 기대지 않고 오로지 스스로 사유하는 일을 뜻한다. 아렌트가 1972년 캐나다 토론토 사회정치사상연구회가 주관한 학술회의에서 한 참여자와 나눈 대화에서 따왔다.

    “여러분은 계단을 오르내릴 때 넘어지지 않도록 항상 난간을 붙잡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 난간을 잃어버렸습니다.” 난간을 잡지 않고 세상이라는 계단을 오르는 건 위태롭고 부담스러운 일이지만, 인간이라면 포기하지 말아야 하는 일이다.

    읽기 수월한 책은 아니다. 800쪽이 넘는 분량에다가 내용도 심오하다. 책 끝부분에 실린 ‘옮긴이 해제 및 후기’가 그나마 독자가 기댈 만한 난간 역할을 한다. 순서대로 글을 읽어나가기 부담스러운 독자에게는 ‘자유와 정치에 관한 강연’ ‘인간의 조건에 관해’ ‘현대 사회의 가치들’ 등 강연과 대담 목차부터 읽어보는 방법을 권한다. 구은서 기자

    한경DB
    구은서 기자
    한국경제신문 문화부에서 문학과 종교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ADVERTISEMENT

    1. 1

      [책마을] RNA는 어떻게 DNA를 누르고 '꿈의 물질'에 등극했나

      20세기는 ‘DNA의 시대’였다. 1866년 그레고어 멘델이 완두콩 실험 결과를 발표한 후 유전자의 실체를 찾기 위한 과학자들의 경쟁이 벌어졌다.1953년 제임스 왓슨과 프랜시스 크릭의 DNA ...

    2. 2

      [책마을] 중동 전쟁의 최대 수혜자는 이란?

      중동이 또다시 이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분쟁 때문이다. 이스라엘은 지상군 투입을 검토하고 있고 이란이 뒤를 봐주는 헤즈볼라는 북쪽에서 이스라엘을 공격할 기세다.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걸까. 최근 출간된 <최...

    3. 3

      [책마을] 영화 아닌 현실에서도 '스토리' 없인 외면당한다

      2018년 12명의 태국 소년이 물이 찬 동굴에 갇혔다. 이들의 이야기가 언론을 통해 퍼지자 전 세계 수백만 명의 사람이 소년들을 응원했다. 같은 해 예멘 내전 중 굶주림으로 사망한 5세 미만 어린이 8만5000명은...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