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피로도 커지면서 서방 진영 일각선 균열 가시화
우크라 전쟁 장기화에 탄약고 빈 서방…"바닥 보인다"
러시아의 침공으로 시작된 우크라이나 전쟁이 1년 7개월이 넘게 이어지면서 우크라이나를 지원해 온 서방진영이 탄약 부족에 직면한 것으로 전해졌다.

3일(현지시간) 영국 BBC 방송 등에 따르면 롭 바우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군사위원장은 이날 폴란드에서 열린 바르샤바 안보 포럼에서 "(탄약) 통이 바닥을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각국 정부와 방산 제조업체들이 "훨씬 더 빠른 속도로 (탄약) 생산을 늘려야만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큰 물량이 필요하다.

(미·소 냉전 종식후) 30여년간 우리가 구축한 '때맞춰 꼭 필요한 만큼 생산하는' 경제는 많은 상황에서 괜찮지만, (우크라이나군처럼) 전쟁을 치르는 군대에는 그렇지 않다"고 강조했다.

제임스 히피 영국 국방부 부장관도 이날 포럼에서 서방의 군수품 비축량이 "조금 부족해 보인다"면서 나토 회원국이 국방비 지출을 국내총생산(GDP)의 2% 수준으로 높일 것을 촉구했다.

히피 부장관은 "유럽에서 전쟁이 벌어지는 상황에서도 국방에 2%를 쓸 때가 아니라면 그런 때는 언제 오는 건가"라면서 "우리는 우크라이나가 계속 싸울 수 있도록 해야만 한다"고 말했다.

앞서 나토 회원국들은 올해 7월 리투아니아 빌뉴스에서 열린 나토 정상회의에서 연간 국내총생산(GDP)의 2%를 방위비로 지출하기로 하는 방위비 지출 가이드라인 수정에 합의했는데 이를 신속히 이행할 것을 촉구한 것이다.

현재 우크라이나는 서방측 무기 지원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예컨대 우크라이나가 매일 수천 발씩 발사하고 있는 포탄 대부분은 나토에서 생산된다고 BBC는 설명했다.

영국 국방부는 지난해 2월 개전 이래 영국이 우크라이나에 포탄 30만 발 이상을 제공했으며 연말까지 수만 발을 더 지원하려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미국 국무부도 같은 기간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155㎜ 포탄 200만 발 이상을 제공했다.

그러나, 서방이 탄약을 생산하는 속도보다 우크라이나에서 소모되는 속도가 빠른 까닭에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서방측의 부담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나토 회원국 대다수는 오랜 군축 탓에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전에도 포탄과 탄약 등의 군수물자 비축량이 풍부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이에 나토와 유럽연합(EU) 회원국들은 무기와 군수물자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 전문지식을 공유하고 군수품 제조업체와의 공동계약, 보조금 지급 등 여러 방안을 강구하고 있지만 우크라이나군의 수요를 충당할 만큼의 성과를 내지는 못하고 있다고 BBC는 지적했다.

출구 없는 소모전으로 흐르는 전황에 피로감이 커지면서 서방 일각에선 우크라이나 원조에 반대하는 목소리도 고개를 들고 있다.

당장 최대 원조국인 미국에선 정치권이 연방정부 '셧다운'(일시업무중지) 사태를 모면하겠다며 우크라이나 지원 항목을 뺀 임시 예산안을 처리했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지원 예산을 되살릴 것을 촉구했지만, 당시 하원의장이었던 공화당의 케빈 매카시 의원은 우크라이나보다 미국 국경 문제가 우선순위라고 주장했다.

이달 초 우크라이나 키이우에서 열린 EU 외교장관 회의에는 헝가리와 폴란드, 라트비아 외교장관이 불참했다.

이중 헝가리와 폴란드는 우크라이나산 저가 곡물이 전쟁 발발 후 대량으로 유럽에 풀리는 상황과 관련해 우크라이나와 갈등을 빚은 국가들이다.

우크라이나와 국경을 맞대고 있으며 역시 농산물 문제로 불편한 관계가 된 슬로바키아에선 지난달 30일 치러진 총선에서 친(親)러·반(反)미 성향의 야당이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차기 총리로 유력하게 거론되는 슬로바키아 야당 사회민주당(SD·스메르)의 로베르트 피초 총재는 총선 승리 후 첫 일성으로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지원을 중단하겠다는 기존 입장을 1일 재확인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