잦은 고장에 복구도 오래 걸려…일부는 1년 넘게 '수리 중'
[인턴액티브] "또 고장이야?" 지하철 에스컬레이터가 매번 서있는 이유
"허구한 날 멈춰있을 거면 뭐 하러 만들었대요.

무릎이 아픈데 짐도 있어서 겨우 올라왔잖아요"
지난달 25일 출근 시간대 광화문역에서 만난 박창선(77)씨는 84개의 계단을 오르고 가쁜 숨을 내쉬었다.

이날 역사에는 개찰구로 향하는 에스컬레이터가 오전 5시30분부터 세 시간가량 고장으로 멈췄다.

고장 안내문도 없어 줄을 서며 기다리다 나중에 고장인 걸 알아채고 한숨을 쉬는 승객도 보였다.

역사 내 에스컬레이터가 '개점휴업'하는 풍경은 승객들에게 이제 익숙하다.

서울교통공사에 따르면 2020년 127건이었던 에스컬레이터 고장 민원은 2021년 185건, 지난해 323건으로 뛰었다.

2년새 2.5배 증가한 것이다.

◇ 값싼 중국산 부품 비중 높아
[인턴액티브] "또 고장이야?" 지하철 에스컬레이터가 매번 서있는 이유
고장이 반복되는 원인 중 하나로 꼽히는 것은 '중국산' 부품이다.

정우택 국민의힘 의원이 지난해 9월 한국승강기안전공단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에스컬레이터 부품의 국산 비율은 32.3%에 불과하다.

중국산 부품이 계속해서 쓰이는 이유는 값이 저렴해서다.

한 에스컬레이터 생산 업체 관계자는 "관급공사 입찰시 최저가 업체가 선정되는 경우가 많아 품질이 떨어지는 것을 알면서도 중국산 부품을 쓸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설치·관리에 있어 품질과 안전보다 경제성이 중요해진 것이다.

이제 국내 부품 비중을 늘리기도 어려워졌다.

중국과의 가격 경쟁에서 뒤진 한국 업체들은 대부분 문을 닫거나 공장을 중국으로 옮겼다.

서울교통공사에 따르면 국내에는 에스컬레이터를 생산하는 공장이 없다.

주로 중국에서 완제품을 2∼3등분으로 분할하여 들여와 현장에서 설치하고 있다.

중국산 부품은 '수리 중' 상태가 오래 지속되는 것에도 영향을 끼친다.

에스컬레이터는 필요한 부품의 종류가 다양하고, 고장이 잦아 유지·보수를 위한 부품들이 계속 공급돼야 하는데, 중국산 부품은 수급이 원활하지 않다.

이런 이유로 광명역의 일부 승강기와 에스컬레이터는 지난해 7월 침수로 고장이 나 1년이 넘은 지금까지 운행하지 않고 있다.

최근 서울교통공사는 지난 6월 분당선 수내역 에스컬레이터 역주행 사고와 같은 일을 막기 위해 역주행 방지 장치가 설치되지 않은 에스컬레이터 620대에 장치를 설치하기로 했다.

그러나 일반 에스컬레이터와 구조가 다른 73대는 맞는 장치가 없어 2년 뒤에나 설치가 가능할 예정이다.

◇ 30%가 노후화했지만…예산 부족에 대부분 그대로 운행
에스컬레이터 예산이 턱없이 부족해 오래된 에스컬레이터가 계속해서 가동되는 것도 문제다.

지난 6월 서울교통공사에 따르면 지하철 1∼8호선에서 가동 중인 에스컬레이터 1천827대 가운데 578대(31.6%)는 설치된 지 20년이 지났다.

지방공기업법 시행규칙상 교체 주기(20년)를 지나 모두 교체 대상이다.

그러나 서울교통공사의 예산은 한해 9대를 바꾸기에도 빠듯한 수준이다.

에스컬레이터 교체 비용은 대당 평균 5억∼6억원이지만 서울교통공사의 올해 노후 에스컬레이터 교체 예산은 52억5천만원이 책정됐다.

노후화한 에스컬레이터는 역주행 사고 등을 유발해 안전까지 위협한다.

그러나 지난해에만 6천300억원의 적자를 기록한 서울교통공사의 재정난으로 교체는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올해처럼 50억원 수준의 예산만 배정된다면 20년이 지난 에스컬레이터가 계속 누적되면서 사고 가능성이 더 커질 수 있다.

실제 수내역 2번 출구에서 에스컬레이터 역주행으로 3명이 크게 다치고 11명이 경상을 입은 사고도 연결 장치의 노후화가 원인으로 꼽혔다.

2019년 서울대입구역에선 감속기 오일 부족으로 기어가 마모돼 발생한 역주행으로 20명이 다쳤다.

두 사고 모두 발생 직전 실시한 검사에서 문제를 찾지 못한 것으로 확인됐다.

[인턴액티브] "또 고장이야?" 지하철 에스컬레이터가 매번 서있는 이유
서울교통공사 관계자는 "승강기 품질 향상을 위해 한국승강기안전공단과 긴밀하게 협업하고 행정안전부 승강기 인증을 받도록 하고 있다"며 "다만 노후 에스컬레이터 교체 및 역주행 방지 장치 설치는 재정 문제 등으로 신속히 이뤄지기엔 어려움이 있다"고 밝혔다.

◇ '쿵쿵' 뛰는 문화도 바로잡아야
오른편엔 서 있는 승객들이 있고, 왼편엔 걷거나 뛰는 승객들이 있는 이른바 '한 줄 서기' 문화도 고장의 원인이 될 수 있다.

급한 승객들이 '쿵쿵' 뛰어가면 에스컬레이터가 받는 압력이 높아져 디딤판 하부에 있는 체인 마모를 앞당기기 때문이다.

신길역을 주로 이용하는 정모(32)씨는 "환승 열차를 놓치지 않으려고 에스컬레이터에서 거의 달리듯이 가는 승객들 때문인지 신길역 에스컬레이터가 자주 멈춰 있다"며 "바쁜 사람은 안전을 위해서라도 계단을 이용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황수철 한국승강기대학교 석좌교수는 "에스컬레이터는 사람의 몸무게를 기반으로 설계됐다"며 "뛰게 되면 에스컬레이터 전체에 가해지는 충격은 서 있을 때보다 10배 이상 커진다"고 했다.

이어 "가급적 서 있는 사람만 에스컬레이터를 타도록 이용 문화가 개선될 필요가 있다"며 "또한 인증된 정식 부품을 사용하고 안전장치가 제대로 작동하는지 세밀하게 점검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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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