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빙'서 체육교사 '한강'에서는 지구대 경위…'힙하게'의 강력반장도 연기
극단 생활하다 호주로 떠나 페인트공…연기 그리워 귀국
김희원 "악역이든 선한 역이든…실제로 있을 법한 사람처럼"
"언젠가는 그 누구도 저를 쓰지 않는 날이 분명히 올 거예요.

그날이 올 때까지 욕심내지 말고 열심히 해야죠."
디즈니+ '무빙'의 속정 깊은 정원고등학교 체육 교사 최일환, '한강'에 등장하는 인간미 넘치는 지구대 경위 이춘석, 그리고 JTBC '힙하게'의 순애보 강력반 반장 원종묵까지.
최근 글로벌 OTT(동영상 스트리밍)와 안방극장을 오가며 활약한 배우 김희원은 근황을 묻자 "그냥 뭐 계속 열심히 촬영하고 있다"고 '허허' 웃어 보였다.

출연작이 잇따라 큰 관심을 끌며 덩달아 전성기를 맞았다는 평이 나오는데도 정작 본인은 들뜬 기색이 없다.

25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 한 카페에서 취재진과 마주한 김희원은 "40대 후반에 접어든 후로부터는 작품의 성패나 주변 반응에 크게 흔들리지 않는 것 같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그는 "전에는 일이 안 풀리면 '아 이제 때려치워야지' 생각하기도 했는데, 나이를 먹고 경험이 쌓이면서 연기에 대한 확신이 생겼다"며 "흔들리지 않는 확신을 갖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고 했다.

"연기는 제 천직이고, 저는 제 일을 사랑해요.

누가 저를 써주든, 안 써주든 스스로를 연기자라고 말할 수 있는 자신이 생긴 것 같아요.

"
김희원 "악역이든 선한 역이든…실제로 있을 법한 사람처럼"
서울예술전문대학 연기과를 졸업해 극단 생활을 하면서 연기력을 갈고닦은 김희원은 긴 무명 생활을 거쳤다.

좋아하는 일로 돈을 벌기 힘든 현실에 회의를 느껴, 20대 후반에는 연기를 접고 호주로 떠나 페인트공 일을 하기도 했었다.

결국 연기가 그리워서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지만,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영화 데뷔작 '1번가의 기적'(2007)으로 서서히 얼굴을 알리기 시작했을 때 그의 나이는 36세였다.

김희원이라는 배우를 대중에게 확실히 알린 작품은 영화 '아저씨'(2010)였다.

"이거 방탄유리야"라는 명대사를 남기며 악랄한 악인 연기의 진수를 보여준 김희원은 이후에도 직장 내 괴롭힘 가해자('미생'), 다혈질 건달('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 친일파 경찰('자전차왕 엄복동'), 약 팔이 사기꾼('눈이 부시게') 등을 연기했다.

선한 역할보다는 악역으로 더 익숙한 배우다.

최근 그가 연달아 맡은 배역들은 모두 푸근한 이미지의 인물이지만 김희원은 "딱히 의도한 바는 아니다"며 "선한 역할이든, 악역이든 제게 있어서 연기의 출발점은 단 하나의 기준"이라고 설명했다.

"주위에 실제로 있을 법한 사람처럼 묘사하는 게 목표예요.

이 캐릭터가 실제 사람이었다면 어떻게 행동할지를 상상하고, 그 상상을 기준으로 삼죠."
김희원 "악역이든 선한 역이든…실제로 있을 법한 사람처럼"
디즈니+ '무빙'에서 김희원은 고등학교 담임 선생님으로 신분을 위장한 국정원 요원을 연기했다.

체대 입시라는 명목으로 테스트를 실시해 잠재적 능력자들을 분류하고 국가 인재로 육성하는 임무를 맡았지만, 임무와 별개로 아이들을 진심으로 대하며 교사로서의 본분을 다하려고 노력한다.

극 후반에서 김희원은 잠재적 능력이 있는 학생들 정보가 담긴 파일을 노린 북한 요원들의 표적이 된다.

쫓기던 그는 우연히 학교에 있다가 싸움에 휘말린 학생 방기수를 위해 몸을 날린다.

'문제아' 방기수를 끌어안고 자기가 책임자이니 학생은 내버려 두라며 소리치는 장면은 시청자들이 눈시울을 붉히게 했다.

김희원은 "초능력자에게 대드는 설정이 인간적이지 않은 것 같아서 고민됐다"며 "최대한 설득력 있게 묘사하기 위해 아이들을 진심으로 사랑하게 되는 과정을 최대한 살렸고, 자신의 존재감에 대해 고민하는 장면에도 힘을 줬다"고 설명했다.

'무빙'의 뒤를 이은 작품 '한강'에서는 조금 더 능청스러운 캐릭터를 연기했다.

망원지구대 경위 이춘석은 한강에서 발생하는 일들을 손쉽게 처리하는 베테랑이지만, 늘 여유롭다.

일이 터지더라도 느긋하게 일단 '퇴근'부터 외치고 본다.

김희원 "악역이든 선한 역이든…실제로 있을 법한 사람처럼"
김희원은 "직장인이 가장 원하는 것이 무엇일까 생각하며 캐릭터를 만들었다"고 했다.

"다들 퇴근, 휴일, 월급을 기다리며 살지 않나요? 아무리 열심이더라도 퇴근을 기다리게 되는 게 사람인 것 같아요.

이춘석도 '사람답게' 묘사했어요.

"
다작하는 배우인 만큼, 이미지 소진에 대한 걱정도 크다.

그는 "과연 몇 살까지 배우를 할 수 있을까에 대해 자주 생각한다"며 "언젠가는 식상해져서 누구도 저를 찾지 않는 날이 분명 올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런데도 조급해하지 않고 꾸준히 열심히 하는 게 김희원의 목표다.

"대사를 못 외워서, 혹은 잘 걷지를 못해서 캐스팅이 안 되는 날이 온다면 오히려 행복할 것 같아요.

앞으로 적어도 30년은 더 일할 수 있다는 뜻이잖아요.

(웃음)"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