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공연장 없다"…패싱 당하는 'K팝 종주국'
지난 23일 경기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린 미국 팝스타 ‘포스트 말론 내한공연’(사진)에 간 A씨는 1시간30분 내내 앞사람 뒤통수만 쳐다봐야 했다. 14만3000원을 주고 스탠딩 R석 티켓을 샀지만 A씨의 자리에선 무대는커녕 전광판도 잘 보이지 않았다. 일반적으로 공연장 무대는 스탠딩석에서도 잘 볼 수 있도록 높이 배치하지만, 포스트 말론 공연에선 무대를 낮게 설치해 조금만 뒷자리에 배정돼도 무대를 볼 수 없었다. 이날 공연은 전체 3만 석 중 2만 석이 스탠딩석이었다.

A씨뿐만이 아니다. 공연 직후 SNS와 커뮤니티에선 ‘큰맘 먹고 주머니를 털었는데 진짜 지갑이 털렸다’ ‘킨텍스 공연은 다시는 안 간다’는 혹평이 쏟아졌다. A씨는 “이 정도로 시야가 가려진다는 걸 주최 측이 미리 알렸어야 했는데 아무런 공지도 없었다”고 지적했다.

“킨텍스 공연은 안 간다”

이 모든 문제는 하나로 귀결된다. 장소다. 이번 공연은 비욘세, 브루노 마스 등 글로벌 팝스타들이 공연한 서울 잠실종합운동장 주경기장이 아니라 킨텍스에서 열렸다. 지난달부터 잠실주경기장이 시설 노후 등을 이유로 리모델링 공사에 들어간 탓이다.

하지만 킨텍스는 공연장이 아니라 박람회나 전시회 용도로 지어진 곳이다. 주최 측은 킨텍스 1전시장 4홀과 5홀을 합쳐 임시로 3만 명 규모의 공연장을 설치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무대와 스탠딩석 사이에 충분한 높이 차이를 만들지 못해 시야 제한 문제가 발생했다.

접근성을 문제 삼는 관객도 많았다. 킨텍스가 수도권 북서부에 있어 경기 남부나 동부는 물론 서울 강남에서도 오가는 데 너무 많은 시간이 걸렸다는 이유에서다. 딱 떨어지는 전철역이 없는 데다 주차장마저 부족해 공연 시작 시간인 오후 7시가 지났는데도 입장하지 못한 관객이 많았다. 이 때문에 공연은 20분이나 지연됐다.

킨텍스가 공연장으로 적합하지 않다는 건 사실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사안이다. 올초 SM엔터테인먼트는 보이그룹 샤이니의 데뷔 15주년 팬미팅을 킨텍스에서 열려다가 잠실 실내체육관으로 바꿨다. “킨텍스는 공연무대로 적합하지 않다”며 팬들이 보이콧해서다.

‘코리아 패싱’당하는 ‘K팝 종주국’

"대형 공연장 없다"…패싱 당하는 'K팝 종주국'
당장은 킨텍스를 대체할 만한 곳이 없다. 고척스카이돔(2만여 명), KSPO돔(1만5000여 명) 등은 대형 스타들이 몸을 풀기에 규모가 너무 작다. 공연계 관계자는 “글로벌 팝스타들은 5만 명 이상 수용할 수 있는 곳에서 공연해야 수지를 맞출 수 있다”고 했다. 국내에서 유일하게 5만 명 이상을 수용할 수 있는 곳은 잠실주경기장뿐인데, 2026년에나 다시 문을 연다.

이렇다 보니 글로벌 팝스타들이 아시아 투어 계획을 짤 때 한국을 빼는 ‘코리아 패싱’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최근 아시아 투어 계획을 발표한 영국 밴드 콜드플레이와 미국 팝스타 테일러 스위프트도 그랬다. 일본은 물론 대만과 말레이시아도 들어갔지만 한국은 빠졌다. 일본은 도쿄돔(5만8000여 명), 대만은 가오슝국립경기장(5만5000여 명)을 갖추고 있다.

올 12월 예정이었던 현대카드 슈퍼콘서트도 비슷한 이유로 취소됐다. 정태영 현대카드 부회장은 최근 한남동에서 열린 한 강연에서 “12월 슈퍼콘서트가 결렬된 건 한국에 5만 명 이상의 인원을 수용할 공연장이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구원투수’로 나선 기업의 공연장 건립 계획도 삐걱거리고 있다. CJ라이브시티가 2조원을 들여 일산에 짓고 있는 6만 명 규모의 음악 전문 공연장 ‘CJ라이브시티 아레나’는 공사가 중단됐다. 5개월째다. 한국전력이 “인근 변전소 용량이 포화 상태라 이곳에 들어가는 전력을 차단할 수밖에 없다”고 통보해서다. 경기도가 완공기한 연장을 거부하고 있는 것도 문제다.

문제가 커지자 최근 국토교통부는 ‘민관합동 건설투자사업(PF) 조정위원회’를 통해 CJ라이브시티 공사 중단 문제를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오는 11월 초에나 선정 결과를 발표할 전망이라 사실상 ‘내년 6월 완공’ 계획은 차질이 불가피하다. 업계 관계자는 “대규모 음악 전문 공연장의 수요가 그 어느 때보다 높아 공연장 설립을 위한 민관 협력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이선아 기자 sun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