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안게임] 아킬레스건 파열 딛고 날아다닌 '1호 금메달리스트' 강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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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시처럼 되고 싶어요"…부상·어머니 생각에 눈물 못 참아
실수 한번 없이 승승장구…"금메달 딴 게 효도가 됐으면" 항저우 아시안게임 우리나라 '1호 금메달리스트'가 된 강완진(홍천군청)의 경기력은 완벽에 가까웠다.
24일 중국 저장성 항저우 린안 스포츠문화전시센터에서 열린 태권도 품새 남자 개인전에서 강완진은 한 번의 허점도 드러내지 않고 승승장구했다.
부전승으로 16강을 가뿐히 넘은 강완진은 8강 1·2경기에서 7.780·7.810점을 받아 태국의 눗타팟 카에오칸(7.520·7.560점)을 넉넉하게 눌렀다.
4강에서도 7.780·7.040점을 얻어 베트남의 쩐 호 주이(7.640·6.600점)를 격파했고, 대만의 마윈중과 결승에서는 공인 품새 점수가 8.000까지 올라갔다.
극도로 집중력을 발휘하며 동작 하나하나를 통제한 강완진은 1분 40초간 음악에 맞춰 자유롭게 움직이는 자유 품새 부문에서는 말 그대로 날아다녔다.
아리랑을 편곡한 배경 음악에 맞춰 공중에서 두어 바퀴를 돈 후 발차기로 동작을 마무리한 강완진은 곧장 경기장 반대편 구석으로 질주하더니 다시 공중 동작을 펼쳤다.
음악의 박자가 빨라지자 그 박자 하나하나에 맞춰 발차기를 하다가 경기장 복판에 멈추더니 사방에 상대방이 있는 것처럼 팔로 방어 자세를 취하고 손날로 공격했다.
화려한 연속 동작을 뽐내며 자유 품새에서도 7.460점을 받아 마윈중(7.080점)을 압도한 강완진은 시상식에서 금메달을 목에 건 후에는 터지는 울음을 참지 못하고 고개를 돌렸다.
강완진은 자기 때문에 고생한 어머니를 생각했다.
강완진은 2021년 1월에 왼쪽 아킬레스건이 파열됐다.
이 일로 수술까지 한 강완진은 불의의 부상 이후 괜히 불안해졌다.
경기 후 공동취재구역에서 만난 강완진은 "부상 때문에 어머니한테 성질도 많이 부렸는데 되게 많이 죄송하다"며 취재진 앞에 금메달을 꺼내 보였다.
그러면서 "이걸로 조금이라도 효도를 한 게 됐으면 좋겠다"며 "나보다 더 힘들게 나를 챙겨주셨다.
그걸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고 말했다.
강완진은 "그 부상으로 8개월을 고생했다.
그해 11월에 돌아오긴 했는데 공인 품새 종목에서만 복귀했다"며 "트라우마가 남아있었는데 이번 대회를 통해서 결과를 낸 덕에 위안이 되고, 잊어버릴 수 있는 것 같다"고 웃었다.
강완진은 품새 종목 선수 중 가장 화려한 경력을 자랑한다.
2018년 아시아선수권·아시안게임·세계선수권을 싹쓸이한 강완진은 부상 탓에 주춤했지만 최근 완전히 전성기의 모습을 되찾았다.
지난해 열린 아시아품새선수권, 고양 세계품새선권대회에서도 남자부 정상에 섰다.
지난 7월 중국 청두에서 열린 하계세계대학경기대회에서 품새 개인전 1위는 강완진의 차지였다.
그런 강완진도 부상의 순간만 돌아보면 진절머리가 난다고 한다.
강완진은 "지금 생각해보면 아찔하다.
그때 '난 끝났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원래대로 돌아갈 수 있을까 의문이었다"고 말했다.
"재활을 정말 열심히 했다.
용하다는 데는 다 가봤고, 좋다는 음식은 다 먹어봤다"는 강완진에게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 탓에 아시안게임이 1년 미뤄진 게 천운이었다.
강완진은 "계속 대회가 연기되니까 '내가 다시 복귀해서 죽도록 해서 보여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 아직 죽지 않았다'고 말해주고 싶었다"며 "그래서 이 악물고 독종이 돼야겠다는 생각을 갖고 임했다"고 돌아봤다.
이번 우승으로 강완진은 항저우 아시안게임 우리나라 1호 금메달리스트가 됐다.
강완진의 우승이 근대5종의 간판 전웅태(광주광역시청)보다 10여 분 빨랐다.
"한국의 첫 번째 금메달이라니 느낌이 남다르다"라는 강완진의 목표는 '축구의 신' 리오넬 메시(인터 마이애미)처럼 품새 종목의 역대 최고 선수로 인정받는 것이다.
강완진은 "작년에 메시가 월드컵에서 우승하는 걸 보고 나도 그런 느낌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면 참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어 "나도 메시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그렇게 되기를 꿈꿔왔다"고 웃었다.
/연합뉴스
실수 한번 없이 승승장구…"금메달 딴 게 효도가 됐으면" 항저우 아시안게임 우리나라 '1호 금메달리스트'가 된 강완진(홍천군청)의 경기력은 완벽에 가까웠다.
24일 중국 저장성 항저우 린안 스포츠문화전시센터에서 열린 태권도 품새 남자 개인전에서 강완진은 한 번의 허점도 드러내지 않고 승승장구했다.
부전승으로 16강을 가뿐히 넘은 강완진은 8강 1·2경기에서 7.780·7.810점을 받아 태국의 눗타팟 카에오칸(7.520·7.560점)을 넉넉하게 눌렀다.
4강에서도 7.780·7.040점을 얻어 베트남의 쩐 호 주이(7.640·6.600점)를 격파했고, 대만의 마윈중과 결승에서는 공인 품새 점수가 8.000까지 올라갔다.
극도로 집중력을 발휘하며 동작 하나하나를 통제한 강완진은 1분 40초간 음악에 맞춰 자유롭게 움직이는 자유 품새 부문에서는 말 그대로 날아다녔다.
아리랑을 편곡한 배경 음악에 맞춰 공중에서 두어 바퀴를 돈 후 발차기로 동작을 마무리한 강완진은 곧장 경기장 반대편 구석으로 질주하더니 다시 공중 동작을 펼쳤다.
음악의 박자가 빨라지자 그 박자 하나하나에 맞춰 발차기를 하다가 경기장 복판에 멈추더니 사방에 상대방이 있는 것처럼 팔로 방어 자세를 취하고 손날로 공격했다.
화려한 연속 동작을 뽐내며 자유 품새에서도 7.460점을 받아 마윈중(7.080점)을 압도한 강완진은 시상식에서 금메달을 목에 건 후에는 터지는 울음을 참지 못하고 고개를 돌렸다.
강완진은 자기 때문에 고생한 어머니를 생각했다.
강완진은 2021년 1월에 왼쪽 아킬레스건이 파열됐다.
이 일로 수술까지 한 강완진은 불의의 부상 이후 괜히 불안해졌다.
경기 후 공동취재구역에서 만난 강완진은 "부상 때문에 어머니한테 성질도 많이 부렸는데 되게 많이 죄송하다"며 취재진 앞에 금메달을 꺼내 보였다.
그러면서 "이걸로 조금이라도 효도를 한 게 됐으면 좋겠다"며 "나보다 더 힘들게 나를 챙겨주셨다.
그걸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고 말했다.
강완진은 "그 부상으로 8개월을 고생했다.
그해 11월에 돌아오긴 했는데 공인 품새 종목에서만 복귀했다"며 "트라우마가 남아있었는데 이번 대회를 통해서 결과를 낸 덕에 위안이 되고, 잊어버릴 수 있는 것 같다"고 웃었다.
강완진은 품새 종목 선수 중 가장 화려한 경력을 자랑한다.
2018년 아시아선수권·아시안게임·세계선수권을 싹쓸이한 강완진은 부상 탓에 주춤했지만 최근 완전히 전성기의 모습을 되찾았다.
지난해 열린 아시아품새선수권, 고양 세계품새선권대회에서도 남자부 정상에 섰다.
지난 7월 중국 청두에서 열린 하계세계대학경기대회에서 품새 개인전 1위는 강완진의 차지였다.
그런 강완진도 부상의 순간만 돌아보면 진절머리가 난다고 한다.
강완진은 "지금 생각해보면 아찔하다.
그때 '난 끝났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원래대로 돌아갈 수 있을까 의문이었다"고 말했다.
"재활을 정말 열심히 했다.
용하다는 데는 다 가봤고, 좋다는 음식은 다 먹어봤다"는 강완진에게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 탓에 아시안게임이 1년 미뤄진 게 천운이었다.
강완진은 "계속 대회가 연기되니까 '내가 다시 복귀해서 죽도록 해서 보여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 아직 죽지 않았다'고 말해주고 싶었다"며 "그래서 이 악물고 독종이 돼야겠다는 생각을 갖고 임했다"고 돌아봤다.
이번 우승으로 강완진은 항저우 아시안게임 우리나라 1호 금메달리스트가 됐다.
강완진의 우승이 근대5종의 간판 전웅태(광주광역시청)보다 10여 분 빨랐다.
"한국의 첫 번째 금메달이라니 느낌이 남다르다"라는 강완진의 목표는 '축구의 신' 리오넬 메시(인터 마이애미)처럼 품새 종목의 역대 최고 선수로 인정받는 것이다.
강완진은 "작년에 메시가 월드컵에서 우승하는 걸 보고 나도 그런 느낌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면 참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어 "나도 메시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그렇게 되기를 꿈꿔왔다"고 웃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