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서울상공 무인기 침투 등 작년말까지 17회 합의 위반
"먼저 파기 선언하면 실익 없어…신중해야"
'미운털' 9·19 남북군사합의, 북 무력도발 속 '존폐 기로'
한때 남북 간 군사 충돌을 방지하는 '안전판'으로 여겨졌던 9·19 남북군사합의가 19일 5주년을 맞았다.

9·19 군사합의는 2018년 9월 19일 당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서명한 평양공동선언의 부속합의서로, 지상과 해상·공중 등 모든 공간에서 무력 충돌을 방지하기 위해 일체의 적대행위를 전면 중지한다는 게 골자다.

그러나 북한의 무력 도발이 계속되고 우리 정부가 강력한 대응을 시사하면서 5년 만에 합의는 존폐의 갈림길에 섰다.

다만 전문가들 사이에선 합의가 사문화될지언정 우리 정부가 먼저 '파기'를 선언하는 건 실익이 없다는 의견이 많다.

'미운털' 9·19 남북군사합의, 북 무력도발 속 '존폐 기로'
◇ 尹 "영토 재침범시 9·19 군사합의 효력정지 검토"
국방부가 펴낸 '2022 국방백서'에 따르면 9·19 군사합의 체결 이후 작년 말까지 북한이 명시적으로 합의를 위반한 사례는 17건에 달한다.

특히 지난해 12월에는 북한 무인기가 서울 상공을 휘젓고 다니면서 국민에게 큰 충격을 안겼다.

이에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월 4일 "북한이 다시 우리 영토를 침범하는 도발을 일으키면 9·19 군사합의 효력 정지를 검토하라"고 지시하며 강경 대응을 예고했다.

윤 대통령이 효력 정지를 언급한 것은 '남북관계 발전에 관한 법률'(남북관계발전법)에 따른 것이다.

남북관계발전법은 '대통령은 남북관계에 중대한 변화가 발생하거나 국가안전보장, 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해 필요하다고 판단될 경우에는 기간을 정해 남북합의서 효력의 전부 또는 일부를 정지시킬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국회의 비준 동의를 얻은 합의서의 경우는 효력을 정지하려면 국회 동의도 받아야 하지만, 9·19 군사합의는 국회 비준을 받지 않아 효력 정지에 국회 동의가 필수는 아니다.

신원식 국방부 장관 후보자도 9·19 군사합의에 대해 "개인적으로 반드시 폐기되는 것이 바람직하는 생각"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신 후보자는 북한 전선지역 감시 능력이 심각하게 훼손됐다는 등 이유로 꾸준히 합의 폐기를 주장해 왔다.

같은 날 김인애 통일부 부대변인도 9·19 군사합의에 대해 "남북 간의 합의는 상호 존중이 돼야 하고, 우리만 일방적으로 지키고 북한은 지키지 않는 합의는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 부대변인은 "정부는 북한이 다시 군사분계선을 침범하는 도발 등 상황이 발생할 경우를 대비해서 남북관계발전법상 남북합의서 효력정지 판단 요건에 입각, 검토하고 있다"며 "추후 필요하다고 판단 시 (9·19 군사합의에 대해) 적절한 조처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운털' 9·19 남북군사합의, 북 무력도발 속 '존폐 기로'
◇ 전문가 "먼저 파기 선언은 실익 없어…신중해야"
전문가들은 우리 정부가 합의 효력을 중지하거나 파기를 먼저 거론하는 건 북한의 무력 도발에 명분을 제공할 수 있기에 신중해야 한다는 견해를 피력한다.

북한이 도발을 반복하는 건 사실이지만, 9·19합의 덕에 과거 꽃게잡이 철마다 반복되던 해상 충돌이 눈에 띄게 줄어든 건 사실이라는 평가도 있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연합뉴스 통화에서 "9·19 군사합의가 우리에게 불리한 면만 있는 건 아니다"라며 "북방한계선(NLL)에서 일정 수준의 안정을 가져온 데는 합의가 일정 수준의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우리 입장에서는 한반도 긴장 고조 측면에서 NLL을 관리해야 하는데, 북한이 모든 핫라인을 다 끊어 남북간 대화가 이뤄지지 않는 상황에서 만약 9·19합의가 파기된다면 우발적 충돌 가능성이 커진다"라고 우려했다.

북한이 도발을 감행할 때마다 9·19합의가 우리 군의 대응을 자제시켜 결과적으로 안보 역량을 떨어뜨린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전문가들은 다른 의견을 내놨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북한이 합의를 지키지 않으니 우리도 상호주의적으로 지키지 않겠다는 건 안 된다.

우리가 북한과 똑같은 수준은 아니지 않느냐"라며 "파기했을 때 한반도 평화 번영에 어떤 도움이 될지 철저히 계산한 다음 실행에 옮겨야지, 현재로선 파기 목소리가 나오는 게 설득력이 떨어지고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남북 간 체결된 합의가 명시적으로 '파기 선언'된 전례가 없다는 점도 고려해볼 대목이다.

남북 간에는 1972년 '7·4 남북공동성명'이 체결된 것을 비롯해 지난 50년간 680여 회에 달하는 남북간 회담을 거쳐 체결된 합의서만 260개에 육박한다.

이 가운데 시대와 남북관계가 변해 사문화된 합의서도 적지 않지만 우리 정부가 먼저 나서 파기나 무효를 선언한 경우는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