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아트센터 제공
두산아트센터 제공
불우한 환경에서 자라는 아이들을 보고 많은 이들은 별 생각없이 '저런 아이는 어떤 어른으로 클까'란 걱정을 내뱉곤 한다. 그러나 그 걱정 뒤에 숨겨진 건 '좋은 어른으로 성장할 수 없다'는 편견과 선입견임을 부정하기 어렵다.

최근 서울 연지동 두산아트센터 스페이스111에서 개막한 연극 '잘못된 성장의 사례'는 식물의 성장을 통해 인간의 성장을 이야기한다. 두산아트센터 아티스트(DAC Artist)로 선정된 극작가 겸 연출가 강현주의 신작이다.
두산아트센터 제공
두산아트센터 제공
한 대학의 식물학 연구실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학교 앞에서 아빠에게 맞는 아이를 보고 연구실의 책임자이자 교수 은주(배우 이지현 분)는 "그런 애들은 커서 뭐가 될까"라며 걱정을 가장한 편견을 내뱉는다. 이에 박사과정 혜경(류혜린 분)은 "그 아이들은 어른이 될 것"이라고 답한다.

이 작품은 한 사람의 인생을 잘되거나 혹은 잘못된 성장의 사례로 유형화하는 것이 폭력적일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같은 땅에 심어진 식물이 저마다 다른 길이와 다양한 방향의 줄기로 자라나는 것처럼, 같은 환경과 사건을 경험한 아이도 각자만의 어른으로 성장할 것이란 뜻이다. 그 어떤 식물도, 그 어떤 사람도 고유한 존재 이유와 삶의 방식을 갖는다. 우리 모두는 저마다 치열한 생존방식을 찾은 결과물들이다.
두산아트센터 제공
두산아트센터 제공
연구실이라는 제한된 공간에서 극이 진행된다. 거대한 사건이나, 튀는 캐릭터 없이 잔잔한 전개다. 작품 속 등장하는 은주와 혜경 외에도 출산 후 복귀한 포스트닥터 지연(박인지 분), 졸업에만 정신을 쏟고 있는 석사 과정 예지(공예지 분), 식물 블로그를 운영 중인 도윤(황상경 분), 식물학자라는 꿈에 부푼 인범(이휘종 분) 등은 주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일상적 캐릭터다. 관객에게 잔잔한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익숙한 사건과 인물, 일상적 소재로 인생을 성찰할 수 있게 만드는 연극. '내가 잘못 성장한 사례이진 않을까'란 생각에 사로잡혀 방황하는 평범한 어른이라면 이 연극으로 위로를 받을 수 있을 듯하다. 공연은 9월 23일까지 열린다.

신연수 기자 s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