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 시대인데 생리대는 왜 삐삐 시절에 머물러 있는 걸까요.”

"감추느라 발전 없는 생리대, 혁신 기술로 바꿀겁니다"
김지연 어라운드바디 대표(사진)는 8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생리를 감추려고 하는 문화 탓에 생리대 산업도 기술적인 논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며 “양지에서 논의됐다면 진작에 발전했을 제품”이라고 말했다.

4년차 스타트업 어라운드바디가 내놓은 건 물에 녹는 생리대다. 변기에 넣고 내려도 문제가 없다. 자체 개발한 펄프 소재 덕분이다. 사용한 제품을 말지 않고 그대로 변기에 버리면 원단이 분해되면서 막힘없이 정화조로 흘러가고, 혐기성 세균에 의해 분해된다. 원단이 물에는 녹지만 혈액엔 녹지 않는다. 이 제품은 지난해 미국 최대 크라우드펀딩 플랫폼인 킥스타터에서 목표금액의 423%를 끌어모았다. 연내 제품 판매를 시작할 예정이다.

김 대표의 원래 꿈은 소설가였다. 고려대 국어국문학과에 진학했지만 날고 기는 ‘글쟁이’들 사이에서 등단하기는 쉽지 않았다. 버티다가 밥벌이를 위해 방송작가가 됐다. ‘인간극장’ 작가로 일했고 ‘생생정보통’ 팀에 몸담기도 했다. 거기까지였다. 2년 정도 작가 생활을 했지만 자유로운 영혼인 그는 방송이라는 포맷에 얽매이고 싶지 않았다.

이후 한 제약사 인사팀에서 일했다. 어느 날 중요한 회의를 앞두고 화장실에서 다급하게 생리대를 갈다가 사달이 났다. 피가 묻어 블라우스와 치마가 엉망이 됐다. 세면대에서 급한 대로 옷을 빨다가 회의에 늦고 말았다. 돌아온 건 “회사가 편한가 보네…”라는 팀장의 조롱 섞인 말이었다.

서러움에 눈물을 쏟을 수도 있었지만 김 대표는 이때 창업을 결심했다. ‘물에 녹는 생리대, 변기에 버릴 수 있는 생리대는 왜 없을까’ 고민했다. 회의 내내 비슷한 제품이 있나 검색해봤다.

시작은 막막했다. 기술에 대한 배경지식이 부족했다. 친환경 원단으로 강력한 방수력을 지닌 소재가 펄프란 걸 깨달은 뒤엔 무작정 관련 논문 200편 이상을 뒤져가며 공부했다.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을 땐 전국 대학 제지공학과 연구실을 찾아갔다.

그즈음 인연이 된 사람이 유정용 강원대 교수였다. 찾아갈 때마다 화이트보드를 펴놓고 문과 출신인 김 대표를 위해 한 시간 넘게 화학식부터 차근차근 알려주곤 했다. 이 인연으로 기름막을 활용한 천연 펄프 소재를 개발했다. 나중에 유 교수 연구팀이 갖고 있던 특허를 이전받기도 했다.

회사는 이제 제조업자개발생산(ODM) 방식을 노리고 있다. 벤처투자를 받은 뒤 자체 제조설비까지 구축한 덕분이다. 펄프 소재를 적용한 제품 생산을 원하는 기업들의 러브콜이 벌써 몰리고 있다는 게 김 대표의 설명이다. 이를 기반으로 2년 내 100억원, 5년 내 500억원의 매출 목표를 세웠다.

김종우 기자 jongw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