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상환 기조였던 은행채, 지난달 발행 쑥…3조8천억원 '순발행'
주택담보대출 수요·고금리 예금상품 만기 겹쳐…시장 '수요 흡수' 우려도
대출 증가에 고금리 만기…은행채 발행 급증에 채권시장 긴장
한동안 잠잠했던 은행채 발행량이 최근 눈에 띄게 급증하면서 채권시장 참여자들이 촉각을 세우고 있다.

주택담보대출이 늘어난 데다 지난해 하반기에 수요가 몰렸던 고금리 예금 상품의 만기가 도래하며 은행 자금 수요가 증가했기 때문이다.

시장은 초우량채인 은행채 증가로 수요 쏠림 현상이 발생할 가능성에 긴장하는 분위기다.

3일 금융정보업체 연합인포맥스에 따르면 지난달 은행채는 약 3조8천억원 규모로 순발행된 것으로 집계됐다.

레고랜드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 사태가 발생한 이후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7월까지 은행채는 5월 한 달을 제외하고는 줄곧 순상환 기조를 이어왔다.

순상환은 채권이 발행된 규모보다 상환된 규모가 많은 상태를 뜻한다.

지난 5월 순발행 규모도 1조2천억원 규모에 그쳤던 점을 감안하면 지난달 은행채 순발행이 눈에 띄는 규모라는 데 시장 참여자들은 주목하고 있다.

최근 은행채 발행 급증 배경은 대출 수요 증가 때문으로 보인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작년 4분기와 올해 1분기 줄었던 가계신용(빚) 잔액은 지난 6월 말 1천862조8천억원으로, 3월 말보다 9조5천억원 증가했다.

김상만 하나증권 연구원은 "이런 흐름이 3분기에 들어서도 지속하고 있는데 특히 최근 출시된 초장기 주택담보대출의 판매 호조 등으로 가계부채 증가가 이어지고 있다"며 "최근 은행채의 발행 증가는 이런 가계대출을 포함한 대출 수요의 증가에 대응하기 위한 목적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지난해 하반기 수요가 몰렸던 고금리 예금상품 등의 만기 도래에 따른 은행채 발행 수요도 크다는 분석이다.

실제 기준금리 인상 후 작년 11월부터 금융권의 금리인상 랠리가 이어지며 시중은행들도 연 5% 예금금리 상품을 내놓는 등 은행 간 수신금리 경쟁이 치열했다.

이경록 신영증권 연구원은 "지난해 금리 인상이 본격화하고 레고랜드 사태까지 겹치면서 은행 예금금리가 급등해 예금 유입액이 크게 늘었었다"며 "1년이 지난 시점부터 예금만기가 대거 도래해 서민금융기관을 포함한 은행권 전반의 수신환경과 은행채 발행시장의 변동성이 커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어 "올해 가을부터 연말까지 은행권 전반에서 고금리 예금 만기에 대한 재수신을 위해 조달금리 상승 압력이 나타나고 일부 은행채 발행 증가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은행채는 초우량물로 꼽히는 만큼 은행채 발행이 급증하면 자칫 신용도 하위등급 채권들의 수요를 흡수하는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

실제 지난해 하반기 레고랜드 사태 이후 유동성 경색에 더해 초우량물인 은행채와 한전채 발행까지 늘어나면서 수요가 집중, 회사채를 비롯한 다른 채권들이 발행시장에서 외면받았던 실례가 있다.

당시 금융당국은 은행채 발행을 최소화해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시장 참여자들은 현재의 은행채 급증이 당장 채권시장에 혼란을 줄 만큼은 아니라고 보면서도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지는 못하고 지켜보는 분위기다.

김상만 연구원은 "문제는 은행채를 통한 자금 조달 증가가 다른 크레딧물(신용채권)의 수급에도 단기적으로는 영향을 주고 있다는 점"이라며 "물론 아직 시장 흐름을 바꿀만한 정도는 아니나 향후 지속해 관찰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조만간 부동산 시장이 안정되면 은행채 발행 급증도 자연스럽게 해소될 것이란 관측도 있다.

김기명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최근 부동산 시장이 안정을 되찾고 있어 부동산 규제 완화 정책 중에 일부가 환수될 가능성도 있다"며 "50년 만기 주택담보대출 제한 등 주택담보대출 금리가 정상화되면 대출 수요 둔화로 연결돼 은행의 자금 수요가 감소하고 은행채 발행 증가세도 둔화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