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ㆍ돈 챙기고, 자녀 유학보내고, 호의호식…586 정치인들 비겁"
"30년전 정치는 야바위판, 지금도 변함없다…탐관오리 의원들 많아"
"경부고속도로 착공 결사 반대한다며 불도저 앞에 드러누웠던 야당"

[※ 편집자 주= 박찬종 인터뷰 기사는 이번이 세 번째입니다.

첫 번째 인터뷰 기사는 지난 18일 [삶] 박찬종 "전두환도 김일성 만나려고 어마무시하게 노력했다"라는 제목으로, 두 번째 기사는 25일 [삶] 박찬종 "北에 28만 중국군 사실상 주둔...北은 간첩활동에 최적"이라는 제목으로 각각 송고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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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 박찬종 "경상ㆍ전라도는 한국정치 낙후요인…창피하고 부끄럽다"
박찬종(84) 변호사는 한국 정치가 낙후되고 비정상적인 모습을 보이는 요인 중 하나가 경상도와 전라도의 지역주의라고 했다.

중앙당이 공천하면 거의 무조건 찍어주는 행태가 지속되는데, 이는 창피하고 부끄러운 일이라고 했다.

그는 지난 9일과 21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경상도와 전라도는 당으로부터 공천받은 국회의원 후보를 무조건 찍어주는 지역으로, 반쪽 민주주의에 해당한다"면서 "지역감정에서 벗어나지 못하겠다면 적어도 국회의원 후보로 적합한지 여부는 감별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학창 시절에 반미 자주 등을 외치던 586 정치인들은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북한에 대해 아무 말도 못 하고 있는데, 비겁하다고 생각한다"면서 "그들은 젊은 시절의 짧은 기간에 투옥된 것을 훈장화 해서 권력과 돈을 챙겼고, 거의 예외 없이 자녀를 미국 등에 유학 보냈다"고 했다.

박 변호사는 "돈을 많이 받으면서 제대로 일을 하지 않는 국회의원은 탐관오리에 해당한다"고 지적했다.

1962년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그는 1964년 서울지검 검사를 거쳐 1973년 9대 국회에 입성했으며 10대, 12대, 13대, 14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1985년 민주화추진협의회(민추협) 인권특위 위원장, 1987년 통일민주당 정책위원장, 1996년 신한국당 수도권 선거대책위원장, 2003년 한나라당 상임고문 등을 지냈다.

현재는 유튜브 '박찬종 TV'를 통해 활발한 정치 평론을 하고 있다.

[삶] 박찬종 "경상ㆍ전라도는 한국정치 낙후요인…창피하고 부끄럽다"
-- 80년대 학생운동권을 많이 변호했는데. 그들은 어떤 사람인가.

▲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총학생회장, 미문화원을 점거하고 농성한 학생 등을 변호했다.

이들뿐 아니라 전국을 돌아다니며 시국 관련자들의 법률 대리인으로 활동했다.

그 당시 반미 자주를 외쳤던 학생들이 많았는데, 그들은 이후에 권력을 얻어 돈을 벌고, 호의호식하고, 자녀를 미국에 유학 보냈다.

거의 예외가 없다
-- 그들은 북한에 대한 어떤 태도를 갖고 있나.

▲ 나는 그들이 한때 사회주의, 주체사상 등에 경도됐으나 이제는 실제 마음속으로 종북 주사파나, 김정은 지지에서 벗어났다고 본다.

남북에 펼쳐지는 현실은 팩트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북한 인권을 비롯한 북한의 문제점에 대해 말을 못 하는 것은 자신들의 사적인 욕심 때문이다.

그들은 젊은 시절 반미 자주를 외치고, 짧은 기간에 징역을 갔다 온 사실을 훈장화 했다.

이를 재료로 국회의원, 장관, 청와대 비서실장도 됐다.

그러니 이제는 진실을 말하지 못하는 것이다.

나는 이들의 행태가 비겁하다고 본다.

-- 운동권 내부에서는 변절자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있는데.
▲ 운동권에서는 김영환, 함운경, 하태경 같은 사람을 변절자라고 한다.

이들은 과거 운동권적 사고에서 벗어난 사람들이다.

과연 누가 변절했는지는 역사가 입증한다.

김정은의 입장에서 보더라도 586 정치인들은 가짜다.

김정은이 적화통일에 성공해서 남한이 그의 수중에 떨어지면 이런 사람들이 가장 위험하다.

김일성은 6.25 전쟁 직후에 박헌영, 김두봉, 허가이, 김원봉 같은 사람들을 모두 죽였다.

자기의 전제 군주적 통치에 걸림돌이 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삶] 박찬종 "경상ㆍ전라도는 한국정치 낙후요인…창피하고 부끄럽다"
-- 정치인의 사명은 무엇인가.

▲ 헌법 46조에는 `국회의원은 국가이익을 우선하여 양심에 따라 직무를 행한다'고 돼 있다.

특정인을 따라가고, 계보를 추종하고, 국회의원 되고 싶다고 해서 어느 쪽으로 몰려가는 것은 국회의원 사명과 어긋난다.

-- 당 대표 또는 당내 실력자가 국회의원 공천을 좌지우지하는 구조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 아닌가.

▲ 미국에서는 국민 공천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공화당과 민주당 상원의원 후보를 뽑을 때 당원뿐 아니라 일반인이 소액의 돈을 내고 등록해서 후보 선정 투표에 참여한다.

이를 오픈 프라이머리라고 한다.

한국에서는 이런 방식이 작동하지 않는다.

그렇게 하면 계파들은 사람들을 동원하기 때문이다.

현재 한국 정당에서는 당 지도부나 실력자가 내리꽂는 전략공천이 대부분이다.

-- 이런 문제를 해결하려면 국민 의식 수준이 올라가야 하는데.
▲ 특정 정당을 지지하더라도 도저히 자격이 안 되는 사람이 후보가 되면 찍지 말아야 한다.

1997년에 신한국당에서 내가 이회창과 대선후보 경쟁을 할 때 정치권은 야바위판이었다.

30년 가까이 흐른 지금도 변한 게 없다.

[삶] 박찬종 "경상ㆍ전라도는 한국정치 낙후요인…창피하고 부끄럽다"
-- 그때 무슨 일이 있었나.

▲ 1997년 대선 당시에 나는 신한국당 후보 경선에 나섰다.

당시 나의 여론 지지율은 1년 전부터 1등을 유지했는데 당내에서는 꼴찌였다.

이회창 대표 쪽이 국회의원과 당협위원장을 매수했기 때문이다.

나는 당시 세대 교체론자였다.

나의 또래였던 지구당위원장들은 "박찬종이 대선 후보로 확정되면 나이가 비슷한 우리는 모두 쫓겨난다"면서 선동했다.

나는 그들을 매수할 생각은 엄두도 못 냈다.

-- 본인은 여야를 넘나들었다고 지적하는 사람도 있는데.
▲ 그건 모함성 비난이다.

나는 그런 일이 없다.

전두환 대통령 때부터 지금까지 나는 집권당에 발을 들여놓지 않았다.

김영삼 대통령 말년 시절에 신한국당 수도권 선거대책본부장을 맡았는데, 비례대표 2번 제안이 들어왔으나 거부하고 국회 입성이 거의 불가능한 21번을 받았다.

그때 나는 국회에 들어가지 못했지만, 신한국당은 수도권 49석 가운데 27석이나 확보했다.

그때 외에 나는 여당 쪽에 가담한 일이 없다.

부총리나 장관직 제안도 들어왔지만 나는 맡지 않았다.

나는 관용차를 타본 적이 없다.

[삶] 박찬종 "경상ㆍ전라도는 한국정치 낙후요인…창피하고 부끄럽다"
-- 당시 김영삼 대통령이 선거 승리에 대해 보답하지 않았나.

▲ 1996년 4월 11일 총선 투표 다음 날인 12일 청와대 총무비서관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저녁에 잠깐 보자는 것이었다.

약속 장소인 조선호텔에 갔더니 그는 김영삼 대통령이 나한테 정무장관을 제안할 것이라고 전했다.

내가 내켜 하지 않는 눈치를 보이자 그는 "정무장관을 하다 연말에 총리로 올라가면 되지 않느냐"고 했다.

나는 다음날 청와대에서 김영삼 대통령과 식사를 같이했다.

-- 김영삼 대통령이 정무장관 제안을 했나.

▲ 김 대통령은 식사 자리에서 "우짜면 좋겠노?"라고 했다.

나는 시치미 떼고 "뭘 말씀하십니까?"라고 물었다.

이번 총선의 공로자인데, 국회에 못 들어왔으니 어떻게 하면 좋겠냐는 뜻이었다.

나는 정무장관 제안이 달갑지 않았기에 김 대통령에게 다른 제안을 했다.

나는 "부탁이 있습니다.

신한국당 대선후보를 일단 내년 전당대회에서 뽑을 것 아닙니까.

대통령 후보 경쟁에 나가는 걸 오늘 재가해주십시오"라고 했다.

김 대통령은 "그래야지, 그렇게 하라"고 했다.

그가 나를 대통령 후보로 지지한다는 뜻이었다.

그날 나는 마치 대통령이 된 듯한 기쁨에 젖었다.

그건 일장춘몽이었다.

아들 김현철의 부패사건으로 궁지에 몰린 김 대통령은 누군가를 지원할 여력이 안 됐다.

[삶] 박찬종 "경상ㆍ전라도는 한국정치 낙후요인…창피하고 부끄럽다"
-- 한국경제는 많이 성장했는데, 정치는 낙후된 이유는 무엇인가.

▲ 경상도와 전라도를 기반으로 하는 쟁투,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의회민주주의를 무시하는 세력들, 이로 인한 정당 독재 등이 핵심 문제다.

이는 쉽게 해결될 것 같지 않다.

-- 한국의 지역감정은 어떻게 시작됐나.

▲ 1963년과 1967년 대통령 선거 당시까지만 해도 지역감정이 없었다.

1971년 대선 때 전라도 출신의 김대중과 경상도 출신의 박정희가 맞붙으면서 자연스럽게 지역감정이 생겼다.

박정희와 김대중도 은근히 지역감정을 이용한 측면이 있다.

이후 김영삼과 김대중이 대통령 자리를 놓고 경쟁하면서 지역감정은 굳어졌다.

그들은 노골적으로 지역감정을 부추겼다.

-- 양 김만이 지역감정을 부추긴 것은 아닐 텐데.
▲ 경상도와 전라도에서 국회의원을 하려는 사람들도 지역감정을 조장했다.

당의 공천만 받으면 거의 무조건 당선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국회의원이 되는데 아주 쉬운 길이었다.

[삶] 박찬종 "경상ㆍ전라도는 한국정치 낙후요인…창피하고 부끄럽다"
-- 이걸 민주주의라고 할 수 있나.

▲ 경상도와 전라도 유권자들은 국민의힘과 열린민주당이 공천한 사람을 무조건 찍어주는 경향이 있다.

수도권에 사는 경상도와 전라도 출신들도 그렇다.

그렇게 투표할 수밖에 없다면 적어도 후보가 국회의원감인지 아닌지는 판별하면 좋겠다.

그것이 나의 바람이다.

-- 경상도 가운데 경남ㆍ부산은 좀 달라지지 않았나.

▲ 좀 변하기는 했지만, 큰 차이가 없다고 본다.

-- 그렇게 선거하는 것이 민주주의는 아닌 것 같다.

▲ 창피하고 부끄러운 일이다.

그렇지만 절반 민주주의라도 해야 하지 않겠나? 꼼수 탈당해서 위성 정당을 만드는 일도 이런 지역 판도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아무리 이상한 짓을 해도 자신을 공천해줄 지역 기반 정당이 있기 때문에 그런 행위를 하는 데 주저함이 없는 것이다.

-- 아시아에서 한국의 민주주의가 가장 발전했다고 우리는 자랑하는데, 맞는 이야기인가.

▲ 공산국가는 언급할 가치가 없다.

일본은 남북한을 합한 면적의 2배인데 나라를 2등분, 3등분하는 지역감정은 없다.

우리는 이 좁은 땅덩어리를 나눠서 편싸움하듯이 하는데, 이건 비극이다.

-- 통일 후 남북 전체에서 투표한다면 남쪽은 분열되고, 북쪽은 단결하니 김정은이 대통령 되는 것 아니냐는 농담도 있는데.
▲ 국민의 정치적 의식이 성숙해지기를 기대할 수밖에 없다.

지역구 국회의원 후보가 자질에 문제가 있으면 후보를 제대로 고르라고 중앙당에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라도 정당에 경고하고 자극을 줘야 한다.

[삶] 박찬종 "경상ㆍ전라도는 한국정치 낙후요인…창피하고 부끄럽다"
-- 본인은 1987년 대선 당시 김영삼과 김대중 후보 단일화 운동을 했나.

▲ 그때 나는 일부 국회의원들과 함께 정풍 운동에 나섰다.

군부 정권을 끝내려면 김영삼과 김대중이 후보 단일화를 해야 했다.

김영삼은 자신이 대통령 후보로 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대중에게는 국민적 거부감이 있다는 것이었다.

김대중은 자신이 김영삼보다 4살 많으니 본인한테 먼저 기회를 줘야 한다고 했다.

정풍운동 의원들은 후보 단일화를 하지 않으면 전두환 장군이 지명하는 노태우 장군이 청와대에 들어갈 것이라면서 두 사람을 압박했다.

양 김은 고집을 꺾지 않았다.

의총을 열어 두사람을 불러놓고는 단일화하지 않으면 이 방에서 나갈 수 없다고 협박하기에 이르렀다.

그랬더니 4시간이 지난 시점에서 김대중이 벌떡 일어나 마이크를 잡았다.

함석헌 선생이 위독한데, 자신한테 유언하려 하니 병원에 가봐야 한다고 말하고는 나가버렸다.

그는 병원에 가지 않았다.

자동차를 타고 시내를 돌다가 집으로 그냥 갔다.

김영삼도 후보 단일화 생각이 없었다.

-- 후보 단일화를 위해 삭발까지 했나.

▲ 뭐라도 해야 한다는 절박한 심정이었다.

단일화를 촉구하는 삭발식에 나를 포함해 4명이 참여키로 했다.

삭발 장소는 의원회관의 내 방이었는데, 약속 시간이 지나도 나머지 3명이 나타나지 않았다.

기자들에게도 이미 알렸기에 난감했다.

결국 나 혼자 삭발했다.

기자들한테는 내가 대표로 삭발한다고 둘러대야 했다.

-- 후보 단일화를 위한 다른 노력은 없었나.

▲ 김수환 추기경이 보자고 했다.

명동성당 집무실에 가서 만났더니 양 김이 단일화해야 한다고 했다.

그분은 양 김 분열에 충격을 받은 듯했다.

김 추기경은 김대중에 대해 군 잔존세력이 거부감을 갖고 있으니 김영삼이 먼저 청와대에 들어가야 한다고 했다.

나는 두 사람을 직접 불러 이야기해보시는 게 좋을 것 같다고 조언했다.

김 추기경이 김영삼과 김대중 두 사람을 초대했다.

두 사람 모두 오지 않았다.

[삶] 박찬종 "경상ㆍ전라도는 한국정치 낙후요인…창피하고 부끄럽다"
-- 투표 결과는 예상대로였나.

▲ 우리의 예측이 정확했다.

노태우 830만표, 김영삼 625만표, 김대중 610만표 정도 나왔다.

양 김이 단일화했으면 일부 표가 떨어져 나간다고 하더라도 노태우를 이길 수 있었다.

-- 양 김은 나라와 민주화를 위한 절박한 마음이 없었나.

▲ 원래 사람 마음이란 것이 다 그렇다.

이미 돌아가신 분들인데, 더는 나쁘게 평가하고 싶지는 않다.

대통령이 되고자 하는 사람에게 사심이 없다고 할 수 없다.

그들 두사람만 그런 것이 아니다.

이후 대부분의 대통령이 그렇다.

나는 양 김이 대통령 자리에서 물러난 뒤 쓴 회고록을 유심히 살펴봤다.

그 책들에는 정풍이나 박찬종이라는 단어가 없었다.

[삶] 박찬종 "경상ㆍ전라도는 한국정치 낙후요인…창피하고 부끄럽다"
-- 국회의원을 무보수직으로 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는데.
▲ 무보수보다는 알맞은 수준으로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현재 국회의원 1명에게 4년간 들어가는 돈은 60억원 정도다.

299명의 국회의원에게 1조8천억 원의 예산이 투입되는 셈이다.

그들이 일을 잘하면 아깝지 않은데, 그렇지 않기에 문제가 되는 것이다.

-- 국회의원은 연봉 1억5천만원을 받고도 수뢰하는 일이 꽤 있나.

▲ 30년 전 해당 의원한테 들은 이야기다.

국회 재정경제위원회 의원의 자녀가 결혼하면 국세청장이 예식장에 오지 않는다.

결혼식이 끝나고 나면 비서가 봉투를 가져온다.

그 액수가 그 당시 돈으로 3천만원이었다.

국세청장은 그런 돈을 재벌로부터 확보한다.

이런 일은 국회의원한테만 있는 것은 아니다.

검찰도 마찬가지다.

새로 부임하는 검찰총장이 취임사에서 "재벌 사범을 엄중히 처리하겠습니다"라고 언급하지 않는 조건으로 받은 돈이 30억원이었다.

재벌한테 이 정도의 돈은 껌값이다.

-- 그런 수뢰는 과거의 일 아닌가.

▲ 최근 300만원 돈 봉투도 받아먹는데, 그 정도의 돈을 주면 안 받겠는가.

국정감사를 할 때 증인명단에서 빼달라고 하는데, 빈손으로 그런 말을 할 것 같은가.

[삶] 박찬종 "경상ㆍ전라도는 한국정치 낙후요인…창피하고 부끄럽다"
-- 국회의원 수를 줄여야 한다는 의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한다.

▲ 헌법은 국회의원 수를 '200명 이상'으로 정해 놓고 있다.

200명 이상으로 마구 늘려도 된다는 의미가 아니다.

200명을 원칙으로 하되 지역구 분할 등 특별한 사정이 생길 수 있으니 이 숫자를 조금 넘어도 된다는 의미다.

지금 국회의원은 299명인데, 자리 나눠 먹기가 진행된 결과다.

헌법위반에 해당한다.

-- 비례대표 의원도 없애야 하나.

▲ 비례대표 의원을 뽑는 방식 자체가 문제다.

유권자가 투표할 때 지역구 의원뿐 아니라 비례대표 의원을 지정한 뒤 그 득표율 순서대로 국회의원이 되도록 하는 게 맞다.

지금은 그 순서를 정당의 보스나 당내 실력자들이 정하고 있다.

이러니 국회가 야바위판이 되는 것이다.

-- 전문성을 위해서는 비례대표 의원이 필요한 것 아닌가.

▲ 각 당은 전문성으로 비례대표 의원을 뽑지 않는다.

전문성으로 보자면 국회 입법조사관이 아주 유능하다.

필요하면 그들에게 의존하면 된다.

상당히 이른 시간 안에 필요한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삶] 박찬종 "경상ㆍ전라도는 한국정치 낙후요인…창피하고 부끄럽다"
-- 국회의원들은 논리의 타당성보다는 상대방을 공격하는 데만 초점을 맞춘다는 지적이 있는데.
▲ 과거부터 국회의원들은 그러했다.

경부고속도를 건설할 때 일이다.

경기도 판교 근처가 고속도로 시공 지점이었는데, 1968년 기공식 때 야당은 극렬히 반대했다.

그들은 "히틀러는 아우토반을 좋아하고, 독재자는 도로를 좋아한다"고 했다.

김영삼과 김대중은 현장에서 핸드 마이크를 들고 반대했고, 야당 당원들은 불도저 앞에 드러누웠다.

경부고속도로가 건설되면 재벌들이 승용차에 첩을 태우고 드라이브하면서 논밭에서 땀 흘려 일하는 농민들을 구경할 것인데, 그런 도로를 왜 만드냐고 했다.

-- 고속도로는 처음에 어떻게 구상하게 됐나.

▲ 그 당시에는 우리나라가 가발, 피복류 등 경공업 제품을 주로 수출할 때였다.

신속하게 수출하기 위해서는 부산항에 가야 하는데, 서울에서 그곳까지 운반수단이 열차였다.

기업들은 서울역장, 용산역장 등에 뇌물을 줘야 제때 수출품을 화물칸에 실을 수 있었다.

서울역장과 용산역장은 부자가 되는 자리였다.

박정희는 이런 상태로는 안 된다고 판단해 독일에 가서 고속도로를 보고 와서는 경부고속도로를 구상하게 됐다.

[삶] 박찬종 "경상ㆍ전라도는 한국정치 낙후요인…창피하고 부끄럽다"
-- '미네르바' 박대성 씨를 변호한 일이 있었는데.
▲ 2009년 당시 법무부가 미네르바를 조사해보겠다고 했다.

미네르바가 인터넷에 경제정책에 대한 비판적인 글을 올려 주목받고 있을 때였다.

당시 변호사실에 있었던 어떤 사람이 그건 검찰의 조사 거리가 안 되는데, 미네르바가 구속되면 변론해주라고 건의했다.

차를 타고 집에 가는 중에 미네르바가 구속됐다는 뉴스가 나왔다.

나는 곧바로 차를 돌려 서울중앙지검으로 달려가 미네르바를 면회했다.

그에 대한 변론은 그렇게 시작됐다.

미네르바는 허위 사실을 인터넷에 올린 일이 없었기에 최종 재판에서 무죄로 나왔다.

-- 미네르바는 요즘 어떻게 지내나.

▲ 그 사건으로 트라우마가 생겼다.

정신적으로 불안해진 것이다.

지금은 연락이 안 되고 있다.

거의 행방불명 상태다.

[삶] 박찬종 "경상ㆍ전라도는 한국정치 낙후요인…창피하고 부끄럽다"
-- 박근혜 대통령 탄핵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 당시 여당 국회의원 60명이 박근혜 대통령에게 반기를 들어 탄핵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그들이 가세하지 않았다면 야당은 의결 정족수인 3분의 2를 채우지 못했을 것이다.

이는 박근혜 대통령이 일부 계파 의원들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박 대통령의 자업자득이라고 생각한다.

-- 후쿠시마 오염수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 도쿄 동북방에서 정화된 물을 내려보내면 그 물은 해류를 따라 캄차카반도. 알래스카 해안, 캐나다.

미국, 멕시코, 남태평양으로 해서 필리핀해역으로 들어와 한국에 도착한다.

맥주병을 띄우면 그렇게 움직이며 한국에 오기까지 4∼5년 정도 걸린다.

그건 과학이다.

후쿠시마 오염수보다 심각한 것이 서해안으로 유입되는 중국 원전의 오염수다.

서해안에는 중국의 110개 원전이 있고, 지금 53기가 운영되고 있는데, 오염수가 적지 않게 나온다.

-- 중국 원전에서 나오는 오염수에 대해서는 왜 문제 제기가 안 되고 있나.

▲ 실질적으로 문제가 안 되기 때문이다.

일본 오염수에 대한 반대는 단순히 건강을 걱정하는 것이 아니다.

정치적 의도가 깔려 있다고 본다.

-- 앞으로의 포부나 계획은.
▲ 나의 손자 손녀는 6명이다.

나는 손주들이 좋은 세상에서 살아가기를 원한다.

자유시장 원리에 따라 민주적 원칙이 지켜지는 그런 사회를 바란다.

나의 체력과 건강이 허락하는 한 그런 사회를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