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한국전때 서울 첫 진입부대 1960년 8월 25일 방문"
선군정치 등장 초기엔 1995년 첫날 다박솔초소 시찰 부각도
[평양NOW] 선군절 10돌…김정일 트레이드마크 '선군정치'
25일은 북한이 군을 제일로 삼는 선군(先軍)정치 탄생을 기념하는 '선군절' 제정 10주년이다.

북한 조선중앙TV는 이날 오전 선군절을 맞아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선군 정치에 관한 기록영화 '어버이장군님 인민군장병들과 함께 계시여'를 1시간 40분 가량 방영했다.

기록영화는 김정일이 인민군을 '수령의 군대, 당의 군대'로 만든 시찰 여정을 젊은 시절부터 쭉 보여주면서 "(북핵 개발을 둘러싼) 반제반미 대결전에서 김정일 장군은 인민군 강화라는 선군의 길을 가기로 결심했다고 밝혔다"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북한이 2006년 핵실험으로 핵보유국이 된 것은 그의 "업적 중의 업적"이라고 치켜세웠다.

[평양NOW] 선군절 10돌…김정일 트레이드마크 '선군정치'
통일교육원 등에 따르면 선군정치는 김일성 주석 사망 다음 해이자 고난의 행군 시기인 1995년 새해 첫날 김정일 위원장이 김일성 주석의 시신이 안치된 금수산 기념궁전에서 참배를 마치고 다박솔 초소(인민군 제214군부대)를 시찰하면서 처음 언급됐다.

이 부대의 구체적인 위치와 부대 성격은 구체적으로 알려지지 않았으며 포병중대로만 알려졌다.

김정일은 다박솔 초소 방문 이후 2011년 말 사망 전까지 2천490여개 무력 부문을 현지 시찰했다고 조선중앙통신 등이 보도됐다.

선군정치란 용어는 1997년 12월 12일자 당 기관지 노동신문에 언급된 이후 공식적으로 사용됐다.

선군정치 하에서 군은 당을 제치고 최고지도자와 사회주의 체제 옹호를 위한 중심 기구로서 역할 했다.

선군정치는 1998년 김정일의 국방위원장 취임과 함께 북한의 핵심 통치방식으로 정착했다.

그해 개정헌법에서 국방위원회가 최고 국가권력기관으로 부상하고, 군부의 정치 참여가 헌법을 통해 공식적으로 보장됨으로써 군부 위상은 더욱 높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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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군정치 등장은 김일성 사망 후 경제난과 동유럽 사회주의권 붕괴에 따른 외교적 고립 등 대내외적 어려움에 부닥친 북한 정권이 군 조직을 통한 체제 안정과 군 병력을 활용한 경제 회복을 꾀하려 한데 따른 것으로 관측된다.

이후 북한은 2005년 8월 노동신문의 '우리 최고사령관 동지'라는 글에서 김정일이 1960년 8월 25일 김일성 주석과 함께 조선인민군 근위 서울류경수 제105탱크사단을 처음으로 방문한 날 선군혁명영도가 시작됐다며 선군정치의 배경을 앞당겼다.

서울류경수 제105탱크사단은 한국전쟁 당시 서울에 처음 진입한 사단으로, 인민군내 상징성이 뚜렷한 부대다.

선군정치 기원이 김정일의 당사업 개시 해인 1964년보다 앞당겨짐에 따라 김정일의 지도력이 군에서 시작해 당으로 확대된 것으로 정리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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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은 김정일 사후인 2013년 8월 26일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정령을 통해 선군절을 공휴일로 지정했다.

상임위는 정령에서 8월 25일을 국가적 명절이자 휴식일로 지정하면서 매년 이날 군부대는 최고사령관기를, 국가기관과 기업, 단체, 가정에서는 인공기를 게양하도록 했다.

이후 해마다 8월 25일 선군절 관련 행사를 벌여왔다.

인민군 부소대장 출신 귀순용사인 안찬일 세계북한연구센터 이사장은 선군정치 기원 변경에 대해 "다박솔 초소로 선전하다가 규모가 작다 보니 군의 최고 상징인 류경수 탱크사단으로 옮겼다고 보면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아버지 김일성과 달리 전공 같은) 군사적 업적이 전혀 없는 김정일에게 최고사령관이란 직책에 걸맞은 군사 공로를 만들려고 우상화 조합을 시도했다고 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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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