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 아메리카' 막기 위한 법…반도체 기업 호재일까 악재일까
바이든 정부의 美 칩스법 대응
외국정부가 기밀정보 요구할 때
대통령령으로 보호하겠단 법안

업계 “보조금 아예 못 받을 수도
입법 아닌 외교적인 솔루션 필요”
미국 조 바이든 정부의 경제정책의 핵심은 '바이 아메리카, 메이드 인 아메리카'다. 미국 제품을 사고, 미국에서 생산하도록 한다는 뜻이다. 대미 수출 비중이 높은 우리 기업엔 명백한 악재다. 세계 무역 질서와 역행하는 구호에 바이든 정부는 당근을 제시했다.'칩스(CHIPs)'로 불리는 반도체 제조 인센티브 법안이다. 2024년까지 미국 내 반도체 공장 신설 및 현대화에 5년간 520억달러 규모의 자금지원과 투자비의 40% 세액 공제를 내용으로 담고 있다.
'바이 아메리카' 막기 위한 법…반도체 기업 호재일까 악재일까
하지만 조건이 있다. 미국이 지난 3월 공개한 보조금 신청시 제출해야 하는 필수정보 제공 목록에 따르면 보조금을 신청하는 기업에 반도체 불량률과 핵심 소재 자료 등을 내야 한다. 반도체 사업의 수율과 소재, 판매가격 변화는 기업들이 사업보고서에서도 공개하지 않는 기밀로 분류된다. 이 외에도 보조금 대상 기업은 미국 정부와 초과이익을 공유하고 경우에 따라 생산시설을 공개해야 한다.

개별 기업 부담 덜어줄까

국회가 개별 기업의 부담을 덜기 위해 나섰다. 국회 산업통상중소벤처기업위원회 위원인 김경만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1일 세계 주요국의 불합리한 핵심 기밀 정보 제출요구에 국내기업이 법적 내용을 바탕으로 대항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은 ‘국가첨단전략산업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발의했다. 같은 당의 김홍걸, 서영석, 설훈, 신영대, 신정훈, 신현영, 양기대, 오기형, 유정주, 이병훈, 이정문, 임종성 의원이 이름을 올렸다.

국가첨단전략산업 경쟁력 강화 및 보호에 관한 특별법 개정안
영향 받을 기업: 삼성전자, SK하이닉스, LG에너지앤솔루션, 삼성SDI, 포스코케미칼, SKC
발의: 김경만 더불어민주당 의원실(02-784-9820)
어떤 법안이길래
=반도체, 배터리 등 전략기술 보유 업체의 해외사업장에 대해 외국정부가 정보 제출을 요구하면, 정부는 해당 기술이 유출되지 않도록 보호 조치 의무
어떻게 영향 주나
=미국 공장 설립과 관련한 반도체 및 2차전지 기업들의 기술 유출 리스크가 줄어들 전망.(호재)
=미국과의 무역문제인만큼 반도체 및 2차전지 기업들이 투자를 받지 못하게 될 위험성.(악재)

개정안은 해당 법안의 제14조 제7항을 제8항으로 만들고 7항을 새로 만든다. 기업이 해외사업장에 대하여 외국정부로부터 정보의 제출을 요구받은경우 해당 해외사업장에서 전략기술이 유출되지 아니하도록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보호조치를 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반했을 경우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명문화했다.

김경민 의원은 “이번 개정안이 통과되면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국내기업들은 개정 조항을 협상의 지렛대로 활용해서 세계 주요국의 불합리한 기밀 정보 제출 요구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게 될 것”이라며 “경쟁사에 영업기밀이 들어가게 된다면 우리 기업들의 반도체 경쟁력 약화, 나아가 국가 핵심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고 했다. 반도체·2차 전지기업들인 삼성전자, SK하이닉스, LG에너지앤솔루션, 삼성SDI, 포스코케미칼, SKC 등이 영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업계 "오히려 악재될 수도"

다만 업계의 시선은 회의적이다. 미국이 보조금 지급 설정을 내건 만큼 아예 기업들이 이를 받지 못할 상황에 놓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해당 법안이 통과되면 오히려 기업들이 별도의 보호조치를 취해야 하기 때문에 또 다른 '규제'가 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바이 아메리카' 막기 위한 법…반도체 기업 호재일까 악재일까
안기현 반도체산업협회 전무는 "새 입법으로 해결될 수 없는 문제"라며 "우리나라 제도를 갖고 미국에 적용을 하지 않는다"고 했다. 한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국가가 나서달라는 것은 외교적인 솔루션이 필요하다는 말"이라며 "법안이 통과되면 기업들이 불안해질 것"이라고 했다.

지난 1일에 발의된 만큼 해당 법안이 여·야의 쟁점 법안으로 떠오르지 않는 이상 입법 가능성은 크지 않다. 산자위 소속 의원실 관계자는 "이전에 쌓인 법안들이 워낙 많다보니 정기 국회때 다 논의를 한다고 해도 한계가 있다"며 "주요 법안이라고 판단하면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당장 그럴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했다.

박주연 기자 grumpy_ca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