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 알라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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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처음 시력 검사를 했던 6살 때 안경을 쓰기 시작했다. 선천성 난시와 약간의 근시가 있었던 탓이다. 안경을 쓰는 일은 여러모로 거추장스러웠지만, 그걸로 보는 세상은 쨍하게 선명했다. 게다가 나이를 먹을수록 시력은 점점 나빠지고 안경알은 점점 두꺼워졌다. 눈 아낄 줄 모르고 책과 모니터에 코를 박고 살았기 때문일 것이다.

안경을 새로 맞추려면 렌즈를 세 번 압축해야 한다는 소리를 들을 즈음, 나는 물리적으로 시야를 on/off 할 수 있는 스위치로 안경을 사용하고 있었다. 난시가 심하면 빛이 카메라의 조리개를 과하게 연 듯 사방으로 퍼져 보인다. 안경 없이 야경을 바라보면 가로등이나 건물의 불빛 하나하나가 작은 불꽃놀이처럼 망울망울 퍼진다. 청소년기의 나는 울적한 기분이 들면 안경을 벗고 지냈다. 그럼 나를 슬프게 하는 일들이 뿌옇게 멀어지는 듯했다.

이보다 훨씬 정교한 방식으로, 장강명의 「당신이 보고 싶어하는 세상」1)의 사람들은 ‘옵터’를 사용한다. 머릿속에 있는 옵터의 증폭 수치를 높이면 세상이 아름답고 쾌적하게 바뀐다. 욕설은 평범한 인사말로 바뀌어 들리고, 우중충한 바다 풍경은 찬란하게 반짝이는 모습으로 탈바꿈한다. 옵션을 구매하면 바다에 돌고래가 뛰어노는 모습도 볼 수 있다. 옵터는 사람들이 주관적으로 인식하는 현실을 그들이 욕망하는 방향으로 왜곡한 증강현실을 제공한다. 게다가 자신의 옵터가 창출하는 모습을 타인에게 공유할 수도 있다. 내가 원하는 모습대로 나를 인식하도록 타인의 옵터에 돈을 지불하는 방법이다. 나를 청초한 미인으로 꾸미고 충분한 돈을 냈다면, 옵터를 켜둔 다른 사람들도 나를 미인으로 인식한다. 이외에도 옵터는 사용자가 궁금해하는 내용에 자동으로 도움말이나 검색결과를 제시하는 등 인식을 다양하게 보조한다. 대신 사용자는 광고를 봐야 할 수도 있다.

소설의 주인공은 어느 크루즈를 방문한다. 현직 대통령에게 반대하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다. 그들은 법이 허용하는 수치 이상으로 옵터를 증폭하고자 배를 타고 영토 바깥을 떠돌며 살았다. 옵터가 수호하는 영역에서만은 그들이 원하는 주관적 현실이 유일한 현실이다. 그들이 지지하는 대통령이 당선되었고, 배 안은 갈등 없이 평화로우며, 눈앞에서 돌고래가 뛰어노는 세상이 정확한 현실이 된다. 돈과 기술이 만들어주는 세속적이고 편협한 천국이다.

나는 여기서 잠시 한나 렌의 「싱귤래리티 소비에트」2)에 나오는 미국을 생각했다. 소설이 설정하는 현실에서는 미국과 소련의 냉전시대 우주개발 경쟁에 소련이 승리했다. 닐 암스트롱이 달에 착륙하여 미국 국기를 꽂을 때, 소련이 이미 달을 지배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소련은 일찌감치 초인공지능 ‘보댜노이’를 개발하는 등 기술적으로 특이점을 넘은 지 오래다. 천재적인 컴퓨터과학자 앨런 튜링이 죽지 않고 소련으로 망명한 덕분이다. 미국은 이에 대항하여 ‘링컨’을 개발하지만 보댜노이의 성능을 따라잡지는 못한다. 링컨은 우울해하는 미국인에게 대체 현실을 제공한다. “자본주의가 공산주의에 완승한 가상세계”를 사이버공간에 구축하여 사람들의 의식을 이주시키는 것이다. 그 꿈에는 현실에서는 이루지 못할 행복이 있다. 미국 사람들은 주별로 투표를 시행해 링컨이 제공하는 잠에 들지 말지 결정하기로 한다. 투표 결과에 불복하는 이들은 링컨에 의해 끌려간다. 원치 않는 방향으로 전개된 현실에 깨어 있는 미국인은 얼마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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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강명의 소설에서, 주인공이 크루즈에서 만난 여자는 사람들의 주관적 현실이 객관적 현실을 변화시킨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많은 사람이 믿으면 그건 그대로 현실이 돼요. 화폐 같은 게 그렇잖아요. 우리 모두는 각자 바람직한 세상을 창조할 권리가 있고, 옵터는 그걸 도와줍니다.” 그런 변화에도 한계가 있다는 주인공의 반박에, 여자는 되묻는다.

“그건 어떤 인식론적인 제한인가요, 아니면 기술의 모자람에서 비롯되는 건가요?”

여자가 너무나 왜곡된 현실에서 살고 있는 탓에, 그녀의 주장에는 힘이 없다. 아무리 웅변을 늘어놓더라도 그건 원치 않는 현실을 인정하기 싫어하는 사람의 징징거림처럼 들린다. 하지만 한계에 대한 질문만은 기억에 남았다. 옵터는 사용자의 현실 인식을 어느 정도 보조하고, 어느 정도 왜곡시킨다. 그것은 사람을 행복하게 만든다. 혹은 욕망과 상황의 괴리를 심화시켜 사람을 불행하게 만든다. 우리는 기술의 도움에 힘입어 우리가 지향하는 현실을 구현하고자 노력할 수 있다. 아니면 링컨이 구축한 사이버공간으로 떠난 미국인처럼 완전히 노력을 포기할 수도 있다.

우리의 인식능력이 욕망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면, 우리는 기술을 사용할 때 무엇을 지향해야 할까? 우리가 사용하는 기술에 부족함이 있다면, 어떤 점이 개선되어야 할까?

뻔한 답이지만, 우리의 주관적 현실은 객관적 현실과 바람직하게 조화되어야 한다. 바람직하다는 것이 무엇인지, 조화는 어떻게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인지는 단언하기 어렵다. 하지만 테드 창의 「사실적 진실, 감정적 진실」3)에는 힌트가 있다. 여기서 사람들은 자신의 ‘라이프로그’를 촬영한다. 기술이 발달한 덕분에 자신의 평생을 실시간으로 녹화하는 일이 간단해졌기 때문이다. 라이프로그를 들여다본 덕분에 주인공은 자신이 기억하는 자기 모습이 객관적으로 틀렸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는 생각보다 폭력적이고 기만적이었다. 그리고 그는 디지털 기억을 어떻게 활용해야 좋을지 깨닫는다.

“정말로 중요한 것은 당신이 옳았다는 점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이 틀렸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의 출발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힘들 때는 안경을 벗고 쉬었다가도, 명료함이 필요할 때면 쨍한 현실을 받아들이기.
1) 장강명, 『당신이 보고 싶어하는 세상』, 문학동네, 2023.
2) 한나 렌, 『매끄러운 세계와 그 적들』, 이영미 옮김, 엘리, 2020.
3) 테드 창, 『숨』, 김상훈 옮김, 엘리, 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