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한참 복구 중인데"…태풍 접근에 수재민들 노심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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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걱정 속 보일러 틀어 도배하고 비닐하우스 손보느라 분주
(청주=연합뉴스 ) 천경환 기자 = "하늘도 무심하시지. 수해 복구도 멀었는데 태풍이 오다니요" 9일 충북 청주시 흥덕구 오송읍의 한 주택가에서 만난 허모(52)씨가 빗물이 채 마르지 않은 가구들을 바라보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허씨 집은 지난달 15일 집중 호우로 미호강이 범람하면서 온통 물에 잠겼다.
자원봉사자의 도움을 받아 한 달 가까이 복구 작업을 벌여 어느 정도 정리가 됐지만 여전히 집 주변에는 침수됐던 생활용품이 널브러져 있었다.
수해의 아픔이 가시기도 전에 태풍 '카눈'의 북상 소식이 들려오자 허씨는 불안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허씨는 "아직 집에 물기가 남아 있어 도배하면 안 되는데 태풍이 오기 전에 가구들을 집 안으로 들여놔야 해 보일러를 가동해가며 작업을 서둘렀다"고 했다.
그는 "많은 비로 지반이 약해진 상태라 하천 제방이 다시 무너져 집이 또 잠기는 거 아닌지 걱정"이라고 눈시울을 붉혔다.
허씨 집과 2㎞ 떨어진 곳에 거주하는 도모(64)씨 사정도 다르지 않았다.
집 곳곳에는 토사가 들어찬 흔적이 남아있고, 벽에는 곰팡이가 까맣게 피는 등 그동안 복구에 손을 대지 못한 모습이었다.
도씨는 "이제 겨우 수해 쓰레기를 치웠는데 태풍 때문에 또 빗물이 찰까 봐 우려된다"며 "우리 마을은 저지대라 비가 조금만 와도 침수 걱정을 해야 한다"고 토로했다. 태풍 접근에 농민들도 노심초사하고 있다.
오송에서 40년째 파 농사를 짓는 서 모(75)씨는 비닐하우스를 지탱해주는 흙이 빗물에 유실돼 보수작업을 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그는 비닐하우스가 태풍에 훼손될 수 있는 염려에 새벽부터 움푹 팬 모서리마다 흙을 채워 넣었다고 했다.
서씨는 "수해 때문에 올해 농사를 망쳤는데 비닐하우스까지 태풍에 날아가면 살아 나갈 재간이 없다"며 "나이가 들어 하루 종일 작업할 수도 없어 무사히 지나가기만을 바랄 뿐"이라고 몹시 초조해했다.
한반도를 향해 올라오고 있는 태풍 '카눈'은 10일 오후 3시께 청주 남동쪽 20㎞ 지점을 통과할 것으로 보인다.
이때 태풍의 강도는 '중'일 것으로 예보됐다.
충북은 오는 11일까지 100∼200㎜의 비가 내릴 것으로 예상된다.
충북 전역에 태풍 예비특보가 발표된 가운데 도를 비롯한 11개 시·군은 유관기관과 함께 재난안전대책본부 비상 1단계를 운영하고 있다.
현장에서는 침수 사고 우려가 있는 둔치주차장 2개소와 일반도로 13개소를 사전 통제했다.
강풍 피해 예방을 위해 농·축산시설, 옥외광고물, 교통표지판, 신호등, 건물 외벽, 크레인, 그늘막 등에 대한 사전 점검도 하고 있다.
소방과 경찰 당국은 재난 상황 접수 때 주요 사항을 지자체에 우선 통보하도록 하는 등 정보공유체계를 구축했다.
도 관계자는 "하천변·지하차도 등 위험지역을 대상으로 수시 예찰을 하고, 위험징후가 보이면 신속한 사전통제에 나설 방침"이라고 말했다.
kw@yna.co.kr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