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와 리사 수 AMD CEO. 세계 반도체산업의 ‘대만계 슈퍼 파워’를 상징하는 두 사람이 진검승부를 시작했다. 둘은 당숙·종질 5촌 관계다. 전장(戰場)은 대규모 데이터 학습·추론용 인공지능(AI) 가속기 시장이다.

엔비디아가 선점한 시장에 AMD가 도전장을 내면서 경쟁이 본격화했다. 두 거물의 정면대결이 삼성전자엔 긍정적 영향을 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시장이 빠르게 커지면서 삼성전자의 AI 가속기용 고대역폭메모리(HBM), 첨단패키징 서비스에 대한 수요가 커질 수 있어서다.
친척끼리 붙는다…젠슨 황·리사 수 'AI 가속기' 쟁탈전

AI 가속기 시장 장악한 엔비디아

6일 반도체업계에 따르면 챗GPT 같은 생성형 AI가 확산하면서 AI 가속기 시장이 커질 것이란 예상이 나온다. AMD는 올해 300억달러(약 39조2400억원)에서 2027년 1500억달러(약 196조2000억원)로 커질 것으로 내다봤다.

AI 가속기는 생성형 AI에 필수적인 대규모 데이터 학습·추론에 특화된 반도체 패키지다. 그래픽처리장치(GPU), 중앙처리장치(CPU)를 배치하고 그 옆에 D램을 수직으로 쌓은 다수의 HBM을 배치하는 ‘첨단패키징’을 통해 데이터 처리 성능을 극대화한 게 특징이다.

현재 AI 가속기 시장을 장악한 기업은 엔비디아다. 엔비디아 창업자인 황 CEO는 대규모 데이터를 동시에 학습하는 데 적합한 주력 제품 GPU의 장점을 극대화해 AI 가속기 시장의 90% 이상을 차지했다. 엔비디아의 ‘H100’ AI 가속기는 대당 6000만원을 호가하는 가격에도 불티나게 팔린다.

리사 수 “AMD도 AI 시대 승자 될 것”

엔비디아의 독식에 제동을 걸고 나선 게 AMD다. 이 회사는 AI 가속기 시장 진출을 위한 최적 요건을 모두 갖추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서버용 중앙처리장치(CPU) 시장에선 인텔과 경쟁하며 점유율을 약 30%까지 높였다. 2014년 수 CEO 취임 이후엔 GPU 사업에도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지난해 2월엔 AI 반도체 개발에 강점이 있는 자일링스를 인수했다.

올 들어 ‘칼’을 꺼내 들었다. 올초 ‘MI300’ AI 가속기를 공개했고 지난 6월엔 업그레이드 버전인 ‘MI300X’를 내놨다. 수 CEO는 6월 “MI300X 칩은 AI 모델을 위해 설계됐다”며 “엔비디아 H100 대비 2.4배의 메모리 밀도와 1.6배 이상의 대역폭을 제공한다”고 주장했다.

엔비디아와의 전면전을 선포한 것이다. 이달 초엔 4분기 MI300X 양산 사실을 알리며 “AI 경쟁에선 (엔비디아 말고도) ‘여러 명의 승자’가 있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TSMC 행보에 경쟁 양상 바뀔 수도

반도체산업 대만계 네트워크의 핵심인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업체 TSMC의 행보도 주목된다. 엔비디아와 AMD는 공장이 없어 TSMC에 칩 생산과 첨단패키징을 의존한다. TSMC가 두 회사에 생산라인을 얼마만큼 배정하느냐에 따라 경쟁 양상이 바뀔 수 있는 구조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기회가 될 것이란 관측도 있다. 경쟁으로 AI 가속기 시장이 더 커지고 기술력이 고도화되면 한국산 HBM의 수요도 많아질 수 있어서다.

삼성전자는 첨단패키징 사업에서도 수주 물량을 늘릴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엔비디아, AMD가 TSMC의 생산 능력 부족으로 원하는 만큼의 반도체를 생산하지 못할 경우 대안은 삼성전자밖에 없다.

엔비디아는 삼성전자로부터 HBM과 첨단패키징 서비스를 턴키로 공급받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황정수 기자 hj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