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레스 역치 낮아져 작은 것에도 과민 반응…전두엽 기능 이상"
"자기감정 들여다보는 마음 챙기기 훈련 등 필요"
[성난 사람들] ③"관계 트라우마가 주원인…자각도 못해"(끝)
심리 전문가들은 분노조절장애는 인간관계에서 생긴 상처가 해결되지 못한 채 쌓인 영향이 크다고 진단한다.

치유되지 않은 상처가 누적되면서 일종의 트라우마로 남아 작은 외부 자극에도 폭발적인 분노로 증폭된다는 것이다.

또 이 분노가 내부로 향하면 우울증, 외부로 향하면 폭력적인 행동 양상으로 나타난다고 설명했다.

이영선 한국심리상담협회 대표이사는 "내담자 대부분은 관계에서의 트라우마가 있다"며 "그로 인한 두려움을 느낄 때 하나의 방어기제로 분노가 작동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류창현 한국분노조절협회장도 "어렸을 때 받은 큰 상처나 인간관계에서의 외상이 치료되지 않은 채 깊어지면 스트레스를 견딜 수 있는 역치가 굉장히 낮아진다"며 "위협적이거나 자극적인 상황이 아닌데도 과민한 반응을 보이게 된다"고 말했다.

분노조절장애라 불리는 이 증상의 정식 명칭은 충동조절장애다.

석정호 강남세브란스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반사회적 인격장애, 품행 장애 등 분노조절에 어려움을 보이는 병들은 큰 범위 내에서 충동조절장애라고 불린다"며 "분노를 조절하지 못하는 것은 그 자체가 병이라기보다는 병으로 인한 하나의 증상으로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성난 사람들] ③"관계 트라우마가 주원인…자각도 못해"(끝)
이 같은 증상은 감정 조절을 담당하는 전두엽의 기능이 매우 약해졌을 때 나타난다.

과전류가 흐르면 퓨즈가 끊어지듯 분노 등 감정적 흥분·각성 상태에서는 전두엽의 기능이 순간적으로 멈춘다는 것이다.

석 교수는 "감정이 너무 격해지면 자기감정을 인식하는 능력 자체가 약해진다"며 "한 환자는 분노로 뇌의 기능이 순간적으로 마비되면서 상대방이 피를 흘릴 때까지 때리면서도 그 사실을 알아채지 못한 예도 있었다"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분노조절에 어려움을 겪는 이들은 대부분 자신의 상태를 스스로 인지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이 증상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감정상태를 들여다보는 '마음 알아차리기' 훈련 등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이영선 이사는 "내담자 상당수는 자신에게 분노가 많은지 모를뿐더러 문제를 객관적으로 인식하고 해결해야 하기보다 그 자체를 회피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분노의 원인을 들여다보는 인지적 노력, 감정과 생각을 분리하는 정서적 노력, 긍정적인 생각과 감정을 가져오는 일을 하는 행동적 노력이 수반돼야 한다고 말했다.

석 교수도 "명상 등을 통해 자신의 감정 상태나 신체 감각을 알아차리는 훈련을 하고 심리상담과 함께 약물치료를 병행하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한국사회에서 분노조절장애가 많아지는 현상에 대해 치열한 경쟁을 원인으로 꼽았다.

어렸을 때부터 생존 경쟁 속에서 자라나 심리적 여유가 사라지고 타인에게 관용을 베풀기 어려운 상태가 됐다는 것이다.

정태연 중앙대 심리학과 교수는 "삶이 너무 고단한 상황에서는 남의 잘못을 이해할 수 있는 아량이 없어지기 마련"이라며 "사람들의 심리적 여유 수준이 거의 바닥난 것"이라고 말했다.

정경아 정신건강의학과 상담사도 "점점 사람들의 인내심이 줄어드는 게 사실"이라며 "분노가 쌓일 만큼 쌓이면서 작은 일에도 폭발적으로 나오는 경향이 많아지고 있다"고 했다.

이런 사회적 현상을 막으려면 개인이 아닌 사회적 차원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정 교수는 "개인의 좌절 경험과 분노가 층간 소음으로 인한 갈등 등 특정한 사람에게 표출되는 경우도 있지만 불만이 사회 전체를 향하는 순간 불특정 다수가 공격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어 "분노범죄와 같은 경우 범죄자 개인적 특성도 영향을 주겠지만 개인적 요인에 초점을 맞춰서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나오기 어렵다"며 개개인의 좌절 경험이 극단적으로 누적되지 않기 위한 사회 전체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최신철 포근한마음 심리상담센터 원장은 "사회 양극화가 커질수록 이런 범죄는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며 "양극화 현상을 해소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