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사우디-이란 중재에 자극 받았나…설리번 3개월새 2회 사우디행
사우디, 美에 나토 수준 안보협정·민수용 핵개발 허용 등 고차원 요구
美, 사우디-이스라엘 중재 박차…중동서 미중 외교전 가열
석유 대국이자 수니파 이슬람 종주국인 사우디아라비아를 둘러싼 미국과 중국의 '중동 외교전'이 점점 더 치열하게 전개되는 양상이다.

미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지난 29일(이하 현지시간) 사우디와 이스라엘의 외교 관계 정상화를 위한 미국 조 바이든 행정부 인사들의 발걸음이 바빠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중국의 중재 속에 지난 3월 사우디와 이란이 외교관계를 정상화한데 이어 이번에는 미국 주도로 중동 정세의 판도를 흔드는 외교적 모색이 이뤄지고 있는 셈이다.

백악관 발표에 따르면 제이크 설리번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지난 27일 사우디 제다를 방문해 무함마드 빈살만 왕세자 등과 회동했다.

설리번 국가안보보좌관은 지난 5월에 이어 3개월도 채 지나지 않은 시점에 다시 사우디를 찾았다.

백악관 보도자료는 설리번 보좌관의 이번 사우디 방문이 "양자(미국-사우디) 현안과 함께, 더 평화적이고 안전하고, 번영하고 안정된 중동에 대한 공동의 비전을 진전시키는 구상을 포함, 세계와 연결된 지역 이슈를 논의"하기 위함이었다고 밝혔다.

다만 논의에서 어떤 진전이 이뤄졌는지는 소개하지 않았다.

이 발표만 보면 설리번 보좌관의 사우디 방문에서 사우디-이스라엘 관계 정상화와 관련한 돌파구는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설리번 보좌관 방문 이후 사우디 주재 미국 대사관 등을 통한 후속 대화가 이어지는 가운데, 미국 당국자들 입에서 진전이 이뤄질 수 있다는 신중한 낙관론도 나오고 있다고 NYT는 전했다.

내년 대선을 앞둔 바이든 행정부가 사우디-이스라엘 관계 정상화에 공을 들이는 배경에는 우선 2014년 발발 이후 이란과 사우디 사이의 대리전 양상으로 비화한 예멘 전쟁 종식을 포함한 중동 안정화에 대한 의지가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뿐만 아니라 사우디가 러시아와 손잡고 국제 유가 상승을 이끄는 상황을 막는 한편 사우디가 중국에 더 접근하지 못하도록 견제하는 것도 미국의 중요한 외교 목표로 자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앞서 지난 3월 중국이 사우디와 이란의 국교 정상화를 중재함으로써 미국이 점점 발을 빼고 있는 중동에서 외교적 존재감을 알린 것도 미국으로선 자극제가 됐을 수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그러나 사우디와 이스라엘 국교 정상화를 중재하려는 미국의 노력은 양측의 복잡하고 높은 요구 사항을 조율해야 하는 '고차원 방정식'이라는 것이 외교가의 대체적인 평가다.

특히 사우디 측은 미국과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수준 고강도 상호 안보협정 체결, 민수용 핵프로그램 개발 허용 등을 요구하고 있다고 NYT는 전했다.

사우디의 민수용 핵 프로그램 허용은 우라늄 농축 정도에 따라 핵무기 프로그램으로 전환할 잠재력을 가진다는 점에서 이미 이란 핵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미국으로선 '고려의 여지가 없다'는 인식을 보여온 문제인데, 중동 외교판이 최근 중국의 가세와 함께 요동치면서 다시 거론되는 양상이다.

또 이스라엘 우파 연정의 정치적 성향으로 미뤄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문제와 관련해 의미있는 양보를 할지도 미지수로 평가된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