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새로운 앱이 나올 때마다 기뻐하고,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중독자처럼 트위터 타임라인을 확인한다. 그리고 때로 궁금해진다. 이 모든 것들이 우리에게 좋은 것일까? 기술이 마약이라면, 그리고 실제로 마약처럼 느껴진다면 기술의 부작용은 정확히 무엇인가?”

넷플릭스의 대표 과학소설(SF) 드라마 ‘블랙 미러’의 제작자 찰리 브루커는 시즌 1을 선보인 2011년 영국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블랙 미러는 넷플릭스를 대체 불가한 OTT로 키운 일등 공신 중 하나다. SF 옴니버스 드라마로 매회 주인공과 주제가 바뀌는 단편들로 구성돼 있다. 지난 6월 4년 만에 새로운 시즌인 시즌 6이 공개됐다.
넷플릭스 SF '블랙 미러'에서 공포가 사라졌다
블랙 미러(검은 거울)가 뜻하는 건 TV와 PC, 스마트폰의 화면이다. 우리는 일상에서 틈날 때마다 스마트폰 속 세상으로 넋을 놓고 빠져들어가지만, 화면이 꺼졌을 때 검은 거울 속 비치는 스스로를 마주하며 현실로 돌아온다. 블랙 미러는 기술이 구현한 가상의 세상과, 가상과 현실을 오가는 인간을 모두 담아내는 매개체다.

브루커가 가디언 인터뷰에서 던진 질문은 블랙 미러를 관통하는 핵심 주제다. 인류가 필요해서 만든 첨단 기술은 과연 인간에게 도움만 되는가. 그 자체로, 혹은 악용돼 인간에게 해를 끼칠 수 있는가? 물리적인 폭력이 아니어도 우리의 정신을 뒤흔들고 윤리와 존엄성을 무너뜨릴 수 있는가? 그럴 수 있다면, 편리하다는 이유로 다수가 용인하면 그렇게 해도 괜찮은 것인가?

‘블랙 미러’에서 등장하는 미래 사회의 기술들은 참신하고 편리하다. 사고로 숨을 거둔 배우자의 SNS 등 기록을 분석해 그처럼 말하고 행동하는, 사람의 모습을 한 인공지능(AI) 로봇은 10년 전인 2013년 시즌 2 <돌아올게>에서 등장했다. 원하지 않는 사람을 내 시야와 인생에서 문자 그대로 지워버리고, 의식의 일부를 잘라 영혼의 분신을 만들어 집안일을 시키고 자백에 활용하는 외전 <화이트 크리스마스>는 미래 기술의 집약체다.
넷플릭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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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미는 유용했던 첨단 기술이 문득 불편하고 섬뜩하게 다가오는 반전의 순간에 있다. 중요한 기억들을 모조리 저장할 수 있는 머릿속 기기가 배우자의 불륜의 증거를 잡아내 고통을 잊지 못하게 만들고(시즌 1 <당신의 모든 순간>), 생태계를 지킬 용도로 만들어졌던 꿀벌 드론들이 사람의 머릿속을 파고드는 살상 무기로 변신한다(시즌 3 <미움 받는 사람들>). 현실인 줄 알았던 시공간이 사실은 가상인 설정은 곳곳에서 등장한다.

단편 속 등장인물들은 새로운 기술들에 적응한 채로 살아간다. 그러나 해피 엔딩은 극히 드물다. 대부분의 화에서 인간은 기술의 차가운 면모와 이를 손에 쥔 권력에 당해 좌절하고, 불행해진다. 소수의 저항하는 인간이 있지만, 대부분은 성공하지 못한다.

이들은 기술을 탑재한 시스템에 순응하며 인간성을 저버린다. 군인들은 무고한 시민들을 죽였다는 죄책감을 떨치기 위해 이들을 ‘벌레’로 보이게 감각을 조종하는 기기를 이식한다(시즌 3 <보이지 않는 사람들>). 납치된 영국 공주를 살리기 위해 납치범의 요구대로 돼지와 수간을 하는 수상을 TV로 생중계하는 시간, 영국 시민 모두가 이를 보느라 거리는 텅 빈다(시즌 1 <공주와 돼지>). 꿀벌 드론을 해킹한 살인범이 죽일 인물을 SNS에서 투표할 때 40만명의 시민들이 해시태그(#)와 인물 사진을 업로드하며 동참했다.
넷플릭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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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 엔딩처럼 보이는 몇 안 되는 에피소드들에도 생각해볼 점은 있다. 2017년 에미상에서 TV영화 작품상 및 미니시리즈 드라마 스페셜 부문 각본상을 받은 시즌 3 <샌 주니페로>는 가상공간인 도시 샌 주니페로에서 만나 사랑에 빠지는 두 여인의 이야기다. 이들은 현실에서는 죽음을 앞두거나 죽음을 원하는 사람들이다. 둘은 안락사를 통해 신체적으로 사망하고 의식은 저장돼 샌 주니페로에서 만난다. 컴퓨터가 만든 가상 공간에서 끝없는 삶을 살게 된 이들의 행복이 진짜인지는 의문으로 남는다.

지난달 공개된 ‘블랙미러 시즌 6’은 그래서 아쉽다. 1화 <존은 끔찍해>를 제외한 나머지 5화 중 우리의 미래를 상상하고 두렵게 만들 만한 기술이 등장한 화는 없었다. 공포를 자아내기 위한 장치는 괴물과 악마 등 현실에 없는 마법 뿐이었다. 절대 오지 않을 미래는 무섭지 않다.

노유정 기자 yjro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