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사 실적 곤두박질 쳤다"…믿을 건 '원료용 중유 면세 혜택'
'횡재세 부과' 무색 ... 업계 영업이익 급감
여름휴가 시즌에도 정제마진 수익성 부진
원료용 중유 면세땐 에쓰오일.GS칼텍스 등 호재
중유는 원유를 정제하고 남은 갈색빛의 찌거기 기름을 말한다. 석탄보다 발열량이 약 2배 이상 높고 원유보다 저렴해 대형 선박, 굴착기, 버스 등의 산업용 연료로 주로 쓰인다. 정유사들은 수익성을 높이기 위해 중유를 휘발유나 경유 등 고부가가치 석유제품으로 정제해 판매한다. 정제 과정에 쓰이는 중유에 세금을 부과하는 국가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운데 한국 뿐이다.
올해 초 정치권에 일었던 '정유사 횡재세(초과이윤세) 부과'가 무색할 정도로 2분기 정유사 실적은 곤두박질쳤다. 1일 업계에 따르면 에쓰오일의 2분기 영업이익은 지난해 2분기 대비 86% 폭락했다. SK이노베이션도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88% 줄어든 영업이익을 냈다. HD현대오일뱅크는 2분기 영업이익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96% 하락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GS칼텍스의 실적도 비슷할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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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계에서는 2분기 정제마진(석유제품 가격에서 원유 가격을 뺀 것) 하락이 정유사의 실적 부진으로 이어졌다고 진단하고 있다. 싱가포르 복합정제마진은 지난 4월부터 5월 셋째주까지 배럴당 2~3달러에 머물렀다. 통상적으로 정유사가 수익을 내려면 배럴당 정제마진이 4~5달러를 넘어야 한다.

업계에선 △휴가철 정유 수요 증가 △중국산 정유제품 수출 감소 △인도 등의 경기 회복 기대 등을 이유로 올 하반기 정제마진이 상승세를 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7월 셋째주 기준 싱가포르 복합정제마진은 배럴당 6.8달러를 기록하며 손익분기점은 넘어섰다. 하지만 같은 기간 배럴당 20달러를 웃돈 지난해보다 수익성은 떨어진다.

野 기재위, '원료용 중유 면세' 법안 발의

이에 고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안 마련에 들어갔다. 고 의원은 지난달 12일 '원료용 중유 개별소비세 면제법(개별소비세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공동발의자에는 강준현 김주영 서영교 한병도 등 민주당 기재위 소속 의원들 다수가 이름을 올렸다.
개별소비세법 일부개정법률안
  • 호재 예상 기업: 대성에너지 한국가스공사 지에스이 인천도시가스 부산도시가스 예스코홀딩스 서울도시가스 대성홀딩스 삼천리 경동도시가스 현대오일뱅크 SK이노베이션 에쓰오일 GS칼텍스
  • 발의 의원: 고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의원실: 02-784-4840)
  • 어떤 법안이길래
    =중유는 선박 보일러 화력발전의 연료로도, 도시가스 암모니아 수소 제조 및 석유제품 정제의 원료로도 사용
    =용도를 구분해 원료로 사용되는 수소에 대해서는 개별소비세를 면제하자는 것
  • 어떻게 영향 주나
    =개별소비세 면제에 따라 중유를 원료로 사용하는 기업들의 비용 감소
    =도시가스 제조 업체와 석유제품 정제 관련 기업들의 이익 증가 효과 예상

해당 법안은 정유사가 중유를 고부가가치 제품으로 정제하기 위한 '원료용'으로 사용할 때 개별소비세를 면제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정유사의 주된 수입원 중 하나인 정제마진을 법적으로 지원해 업계에 활력을 불어넣겠다는 것이다. 일몰기한과 같은 별도의 조건은 덧붙이지 않았다.

고 의원은 "현행법은 '연료용' 중유와 '원료용' 중유를 구분하지 않고 개별소비세를 부과하고 있다"며 "최종소비재가 아닌 원료용 중유까지 특정 물품의 소비행위에 부과하는 개별소비세의 과세 대상에 두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고 개정안의 취지를 설명했다.

"연료용 중유 면세, 정유 업계에 '가뭄 속 단비'"

업계에서는 개정안이 통과되면 정유 산업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다고 기대하고 있다. 중유 개별세 면제는 수 년 넘게 정부에 요구해온 업계의 숙원 사업이기 때문이다. 주 수입원인 정제마진의 생산 비용이 감소해 실질적인 이득을 주는 효과가 크다.

실제 박주선 대한석유협회 회장은 지난달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어려운 여건에도) 횡재세 운운 하며 기업을 옥죄고 있어 너무 안타깝다"며 "(연료용 중유 면세와 관련한) 조세제한특례법 개정을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박 회장은 이어 "정부와 국회에서도 이 문제에 대해 확실한 관심을 두고 해결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개정안은 SK이노베이션을 비롯해 현대오일뱅크 에쓰오일 GS칼텍스 등 정유 업계에 호재가 될 것으로 판단된다. 정제를 거친 휘발유나 경유 등의 생산원가가 하락해 도시가스 업계도 영향을 받을 전망이다. 대성에너지를 비롯해 한국가스공사 지에스이 인천도시가스 부산도시가스 등의 수익에 긍정적인 영향이 예상된다.

조현렬 삼성증권 연구원은 "개정안을 통해 정유사나 도시가스 업계의 기업 환경이 개선될 수 있어 보인다"고 설명했다.

與野, 2년 전에도 "원료용 중유 면세해야" 한 목소리

고 의원이 이번에 발의한 법안은 이미 2020년 12월 여야 합의를 통해 2년을 만기 기한으로 한 차례 통과된 법안이기도 하다. 코로나19라는 특수한 상황을 감안해 여야가 힘을 모은 것이다.

2020년 당시 야당 의원이던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이같은 내용을 핵심으로 담은 개별소비세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추 부총리는 개정안을 내며 "코로나19로 인한 소비 감소로 위기에 빠진 석유산업 지원을 위해 생산 원료로 사용되는 중유에 대한 조건부 면세 추진이 시급하다"고 했다.

'원료용 중유세 면제'는 20대 국회에서도 발의가 이뤄졌다. 2019년 7월 권성동 당시 자유한국당 의원이 대표발의한 '개별소비세법 일부개정법률안'이 사례다. 여야 공감대가 있는 현안인 만큼 개정안이 이번 국회에서 적극적으로 논의될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이 나온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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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역대급 세수 결손 사태를 맞아 기재부가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다는 점은 변수다. 기재부의 7월간 재정동향에 따르면 올해 5월까지 누적된 관리재정수지는 52조 5000억원에 달했다. 직전월 누계 기준 45조 4000억원에서 7조 1000억원 늘어난 것이다. 관리재정수지는 통합재정수지(총수입-총지출)에서 국민연금 등 사회보장성기금을 뺀 것으로 실질적인 재정 상태를 의미한다.

윤 대통령도 지난 6월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선거에서 지더라도 나라를 위해 재정건전, 좀 더 이해하기 쉬운 말로 재정 다이어트를 해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원종환 기자 won040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