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가 최고인 세상' 떠난 바비가 현실에서 마주한 부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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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고 로비 주연 '바비'…페미니즘 메시지·화려한 볼거리 조화
"여긴 바비랜드랑 완전히 반대야!"
로스앤젤레스(LA) 해변에 도착한 바비(마고 로비 분)가 놀라 소리친다.
이제 막 '바비랜드'를 떠나 현실 세계에 도착했으니 그럴 만도 하다.
바비랜드는 대통령은 물론이고 우주비행사, 비행기 조종사, 대법관, 노벨상 수상자까지 온통 바비들 차지인 곳이다.
쉽게 말해 여자들이 다 해 먹는 세상이다.
반면 켄들은 "그냥 켄"이다.
이들은 바비랜드에서 바비들의 남자친구를 하는 것 말고는 별다른 역할이 없다.
바비들이 보기 좋게 멋진 몸매와 얼굴만 유지하면 된다.
한데 인간 세상은 정반대다.
바비가 콘크리트 바닥에 발을 내딛자마자 당하는 일은 느물거리는 남자들의 성희롱과 성추행이다.
요직에 앉아 큰일을 하는 여자 리더도 찾아보기 힘들다.
심지어 바비 인형 제조사인 마텔사 경영진도 전부 남자뿐이다.
바비 인형이 출시된 덕분에 여성권과 평등권 문제가 "해결됐다"고 믿었던 바비는 그제야 자기 생각이 틀렸다는 걸 깨닫는다.
그레타 거윅 감독이 연출한 영화 '바비'는 바비 인형들이 사는 가상 세계를 그린 판타지물이다.
그러나 이 영화를 레고 랜드에서 벌어지는 일을 담은 어린이 영화 '레고 무비'(2014)쯤으로 기대하고 극장에 들어선다면 당혹감을 느낄 수 있다.
'바비'는 성차별이 횡행하는 사회를 풍자한 블랙코미디이자, 바비들이 환상에서 깨어나 각성하는 모습을 그린 페미니즘 영화기 때문이다.
영화는 바비들의 천국 바비랜드, 바비랜드와 대조적인 현실 세계, 현실 세계처럼 변해버린 바비랜드를 차례로 보여주는 구성으로 전개된다.
주인공은 '전형적인 바비'라 불리는 바비(이하 마고 바비)다.
그는 마텔사가 1959년 처음 내놓은 바비 인형처럼 금발에 파란 눈, '34-24-36'의 완벽한 몸매를 가진 백인 미녀의 외양을 하고 있다.
바비랜드에는 다양한 외모의 바비들이 어우러져 산다.
인종이나 몸매도 제각각이고 장애인, 트랜스젠더도 있다.
이들은 매일 춤과 노래, 파티를 즐기며 아무 걱정 없이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 날 마고 바비가 갑작스레 인간처럼 변해가면서 바비랜드에 소란이 인다.
가장 먼저 발견되는 이상 증상은 평평해진 발이다.
하이힐 모양에 맞춰 까치발 모양이던 발이 땅에 완전히 닿자 마고 바비는 기절초풍하기 직전이다.
허벅지에는 셀룰라이트가 잡히고 아침에는 입 냄새가 난다.
마고 바비는 이상한 바비(케이트 맥키넌)를 만나 자신의 인간화 원인을 알게 된다.
마고 바비를 가지고 놀던 현실 세계의 누군가와 마고 바비가 점차 강하게 연결되고 있다는 것이다.
마고 바비는 문제를 해결하려 그를 찾아 나선다.
남자친구 켄(라이언 고슬링)도 따라나서면서 인간 세계를 향한 이들의 여정이 시작된다.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마고 바비와는 달리 켄은 현실 세계에 단단히 매료됐다.
정치·경제를 움켜쥐고 세상을 움직이는 이들은 모두 자신과 같은 남자라서다.
근육을 키우고 말을 탄 채 남성성을 과시하기도 하는 이들의 모습에 켄은 정답이라도 떠오른 듯 환호한다.
그중에서도 그의 마음을 강렬하게 사로잡은 건 바로 가부장제다.
마고 바비를 버려두고 바비랜드로 떠난 켄은 바비랜드를 가부장 사회 '켄덤'(켄+킹덤)으로 바꾸려 한다.
가스라이팅 당한 바비들은 뭔가에 홀린 듯 켄들을 떠받든다.
마고 바비는 현실에서 만난 글로리아(아메리카 페레라)와 함께 바비랜드로 돌아가 이곳을 예전의 모습으로 되돌리려 한다.
줄거리만으로도 영화의 메시지가 전달되지만, 거윅 감독은 좀 더 명확하게 하고자 하는 말을 던진다.
글로리아가 바비들 앞에서 연설하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여성에게만 요구되는 행동거지와 자기 검열, 세상의 부조리에 대해 긴 대사를 토해내는 그를 보고 있으면 거윅 감독의 말을 대신 전해준다는 느낌마저 든다.
'바비'는 다소 무거울 수 있는 주제와는 상반되게 분위기는 내내 가볍게 가져간다.
해학과 유머를 한껏 활용해 웃음을 안긴다.
거윅 감독은 괘씸한 켄마저 살뜰하게 챙긴다.
바비 없이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던 켄이 비로소 자기애를 갖고 독립적으로 살아간다는 서사를 부여한다.
자기 정체성은 자기가 정해야 한다는 것, 당신은 있는 그대로 아름답다는 것, 다양성을 존중해야 한다는 것 등 영화에 담긴 다른 화두도 많다.
하지만 이 때문에 영화의 전체적인 주제가 흐려지는 측면이 있기는 하다.
페미니즘 백래시(사회 변화에 대한 반발 심리와 행동) 우려로 적정 수준의 타협점을 찾은 것이거나, 감독이 하고 싶은 말을 모두 하려 욕심을 부린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게 한다.
'바비'는 이처럼 메시지가 강한 작품이기는 하지만 보는 즐거움 또한 잊지 않은 영화다.
바비를 최초로 실사화한 영화인 만큼 바비와 켄, 바비랜드를 완벽하게 구현하는 데 공을 들였다.
장난감 같은 집과 비현실적으로 아기자기한 마을의 모습은 잠시 핑크빛 바비랜드에 들어온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한다.
이 세트를 짓는 데 페인트가 너무 많이 들어가는 바람에 페인트 회사 로스코의 형광 핑크 제품 품절 사태까지 일어났다고 한다.
군데군데 사용된 만화적 효과, 뮤지컬 영화를 떠올리게 하는 노래와 춤도 보는 맛을 더한다.
바비 그 자체인 로비와 찌질하지만, 사랑스러운 켄 역의 고슬링 모두 뛰어난 연기를 보여준다.
특히 고슬링은 켄 역할을 하기에는 나이·외모가 어울리지 않는다는 일각의 지적에도 또 하나의 대표 캐릭터를 남길 듯하다.
19일 개봉. 114분. 12세 관람가.
/연합뉴스
로스앤젤레스(LA) 해변에 도착한 바비(마고 로비 분)가 놀라 소리친다.
이제 막 '바비랜드'를 떠나 현실 세계에 도착했으니 그럴 만도 하다.
바비랜드는 대통령은 물론이고 우주비행사, 비행기 조종사, 대법관, 노벨상 수상자까지 온통 바비들 차지인 곳이다.
쉽게 말해 여자들이 다 해 먹는 세상이다.
반면 켄들은 "그냥 켄"이다.
이들은 바비랜드에서 바비들의 남자친구를 하는 것 말고는 별다른 역할이 없다.
바비들이 보기 좋게 멋진 몸매와 얼굴만 유지하면 된다.
한데 인간 세상은 정반대다.
바비가 콘크리트 바닥에 발을 내딛자마자 당하는 일은 느물거리는 남자들의 성희롱과 성추행이다.
요직에 앉아 큰일을 하는 여자 리더도 찾아보기 힘들다.
심지어 바비 인형 제조사인 마텔사 경영진도 전부 남자뿐이다.
바비 인형이 출시된 덕분에 여성권과 평등권 문제가 "해결됐다"고 믿었던 바비는 그제야 자기 생각이 틀렸다는 걸 깨닫는다.
그레타 거윅 감독이 연출한 영화 '바비'는 바비 인형들이 사는 가상 세계를 그린 판타지물이다.
그러나 이 영화를 레고 랜드에서 벌어지는 일을 담은 어린이 영화 '레고 무비'(2014)쯤으로 기대하고 극장에 들어선다면 당혹감을 느낄 수 있다.
'바비'는 성차별이 횡행하는 사회를 풍자한 블랙코미디이자, 바비들이 환상에서 깨어나 각성하는 모습을 그린 페미니즘 영화기 때문이다.
영화는 바비들의 천국 바비랜드, 바비랜드와 대조적인 현실 세계, 현실 세계처럼 변해버린 바비랜드를 차례로 보여주는 구성으로 전개된다.
주인공은 '전형적인 바비'라 불리는 바비(이하 마고 바비)다.
그는 마텔사가 1959년 처음 내놓은 바비 인형처럼 금발에 파란 눈, '34-24-36'의 완벽한 몸매를 가진 백인 미녀의 외양을 하고 있다.
바비랜드에는 다양한 외모의 바비들이 어우러져 산다.
인종이나 몸매도 제각각이고 장애인, 트랜스젠더도 있다.
이들은 매일 춤과 노래, 파티를 즐기며 아무 걱정 없이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 날 마고 바비가 갑작스레 인간처럼 변해가면서 바비랜드에 소란이 인다.
가장 먼저 발견되는 이상 증상은 평평해진 발이다.
하이힐 모양에 맞춰 까치발 모양이던 발이 땅에 완전히 닿자 마고 바비는 기절초풍하기 직전이다.
허벅지에는 셀룰라이트가 잡히고 아침에는 입 냄새가 난다.
마고 바비는 이상한 바비(케이트 맥키넌)를 만나 자신의 인간화 원인을 알게 된다.
마고 바비를 가지고 놀던 현실 세계의 누군가와 마고 바비가 점차 강하게 연결되고 있다는 것이다.
마고 바비는 문제를 해결하려 그를 찾아 나선다.
남자친구 켄(라이언 고슬링)도 따라나서면서 인간 세계를 향한 이들의 여정이 시작된다.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마고 바비와는 달리 켄은 현실 세계에 단단히 매료됐다.
정치·경제를 움켜쥐고 세상을 움직이는 이들은 모두 자신과 같은 남자라서다.
근육을 키우고 말을 탄 채 남성성을 과시하기도 하는 이들의 모습에 켄은 정답이라도 떠오른 듯 환호한다.
그중에서도 그의 마음을 강렬하게 사로잡은 건 바로 가부장제다.
마고 바비를 버려두고 바비랜드로 떠난 켄은 바비랜드를 가부장 사회 '켄덤'(켄+킹덤)으로 바꾸려 한다.
가스라이팅 당한 바비들은 뭔가에 홀린 듯 켄들을 떠받든다.
마고 바비는 현실에서 만난 글로리아(아메리카 페레라)와 함께 바비랜드로 돌아가 이곳을 예전의 모습으로 되돌리려 한다.
줄거리만으로도 영화의 메시지가 전달되지만, 거윅 감독은 좀 더 명확하게 하고자 하는 말을 던진다.
글로리아가 바비들 앞에서 연설하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여성에게만 요구되는 행동거지와 자기 검열, 세상의 부조리에 대해 긴 대사를 토해내는 그를 보고 있으면 거윅 감독의 말을 대신 전해준다는 느낌마저 든다.
'바비'는 다소 무거울 수 있는 주제와는 상반되게 분위기는 내내 가볍게 가져간다.
해학과 유머를 한껏 활용해 웃음을 안긴다.
거윅 감독은 괘씸한 켄마저 살뜰하게 챙긴다.
바비 없이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던 켄이 비로소 자기애를 갖고 독립적으로 살아간다는 서사를 부여한다.
자기 정체성은 자기가 정해야 한다는 것, 당신은 있는 그대로 아름답다는 것, 다양성을 존중해야 한다는 것 등 영화에 담긴 다른 화두도 많다.
하지만 이 때문에 영화의 전체적인 주제가 흐려지는 측면이 있기는 하다.
페미니즘 백래시(사회 변화에 대한 반발 심리와 행동) 우려로 적정 수준의 타협점을 찾은 것이거나, 감독이 하고 싶은 말을 모두 하려 욕심을 부린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게 한다.
'바비'는 이처럼 메시지가 강한 작품이기는 하지만 보는 즐거움 또한 잊지 않은 영화다.
바비를 최초로 실사화한 영화인 만큼 바비와 켄, 바비랜드를 완벽하게 구현하는 데 공을 들였다.
장난감 같은 집과 비현실적으로 아기자기한 마을의 모습은 잠시 핑크빛 바비랜드에 들어온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한다.
이 세트를 짓는 데 페인트가 너무 많이 들어가는 바람에 페인트 회사 로스코의 형광 핑크 제품 품절 사태까지 일어났다고 한다.
군데군데 사용된 만화적 효과, 뮤지컬 영화를 떠올리게 하는 노래와 춤도 보는 맛을 더한다.
바비 그 자체인 로비와 찌질하지만, 사랑스러운 켄 역의 고슬링 모두 뛰어난 연기를 보여준다.
특히 고슬링은 켄 역할을 하기에는 나이·외모가 어울리지 않는다는 일각의 지적에도 또 하나의 대표 캐릭터를 남길 듯하다.
19일 개봉. 114분. 12세 관람가.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