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네가 아주 운이 좋아 젊은 시절 한때를 파리에서 지낼 수 있다면 남은 평생 어디를 가더라도 파리에서의 추억이 자네와 함께할 걸세. 파리란 이동 축제일처럼 언제나 축제와도 같은 곳이니까 말이지.’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1950년 어느 지인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썼다. 그는 청년을 파리에서 보낸 것이 너무나 좋았던 터라 쉰살이 넘은 나이에도 이런 얘기를 잊지 않고 해줬다.

20대에 캐나다의 지역 신문사 ‘토론토 스타’ 기자로 일하다가 유럽 특파원으로 프랑스 파리에 파견된 헤밍웨이는 이곳에서 본격적으로 문학적 글쓰기를 시작했다. 그리고 파리에서 지낸 날들을 기록했다.

<헤밍웨이 내가 사랑한 파리>는 그 나날들에 대한 회고록이다.
파리를 사랑한 헤밍웨이 "가난하지만 너무 행복했다"[책마을]


헤밍웨이는 가난했지만 가난하다고 생각하지 않았고, “배고픔이란 훌륭한 정신 수련법”이라고 말하며 점심식사를 하는 대신 뤽상부르 미술관에서 세잔, 마네, 모네의 그림을 감상했다.

고지대에 있는 호텔 꼭대기층 작업실에서 ‘정말로 진실한 문장 하나’를 쓰기 위해 분투했고, 아내 해들리와 함께하는 신혼 생활의 행복감을 느꼈다.

돈이 없어 책을 읽을 수 없었지만, 언제든지 무료로 책을 빌려 읽어도 좋다는 서점 ‘셰익스피어 & 컴퍼니’의 주인 실비아가 있어 그는 파리를 사랑할 수밖에 없었다.

언제나 축제와도 같았던 파리에서 젊은 날의 헤밍웨이는 성장통을 겪었다.

글을 쓰는 것이 거의 모든 것을 치유해준다고 믿었지만 어떤 출판사도 출판해주지 않을 글을 쓰는 자신 때문에 좌절했다. 팔리지 않는 책 때문에 고뇌에 빠졌다. 한편으로 글을 쓰는 습관을 만들어가면서 희망을 찾기도 했다.

<노인과 바다> <무기여 잘 있거라>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 등 많은 역작을 내놓은 대문호가 되기까지의 여정이 책에 고스란히 잘 담겨 있다.

스콧 피츠제럴드, 거트루드 스타인, 에즈라 파운드 등 예술가 친구들과 나눈 이야기를 읽을 때면 그 현장에 함께 있는 듯하다. 헤밍웨이가 좋아하는 장소를 방문할 때면 1920년대 파리의 곳곳을 함께 걷는 것 같은 생동감도 느껴진다.

파리는 그에게 어떤 의미일까. 헤밍웨이는 책에서 이처럼 말했다. “이 모든 이야기는 우리가 무척 가난하고 무척 행복했던, 우리들의 젊은 날 파리의 모습이었다.”

이금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