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우유업계가 낙농가의 원유값 인상 공세와 정부의 가격 인하 압박에 고전하는 가운데 폴란드 등 해외 멸균우유가 빠르게 국내 시장을 잠식하고 있다.   김범준 기자
국내 우유업계가 낙농가의 원유값 인상 공세와 정부의 가격 인하 압박에 고전하는 가운데 폴란드 등 해외 멸균우유가 빠르게 국내 시장을 잠식하고 있다. 김범준 기자
우유업계는 2020년 코로나19 발생 이후 사료값·인건비 급등을 명분으로 내세운 낙농가의 강도 높은 원유값 인상 압박에 골머리를 앓아왔다. 올해도 지난달 9일부터 한 달 이상 “원유값을 대폭 올려야 한다”고 고집하는 낙농가와 지루한 협상을 이어왔다.

올해는 여기에 정부의 제품 가격 인하 압박까지 더해졌다. 정부는 지난달 중순 라면을 시작으로 밀가루·우유업계 등에 전방위적 압력을 가하고 있다.

“원유값 오르는데 제품가는 동결?”

原乳값 3년간 18% 오를때…'반값' 폴란드 우유 대공습
우유업계와 낙농가는 협상 시한인 19일을 앞두고 L당 69~104원 범위에서 원유값 협상을 벌이고 있다. 작년에는 원유 가격이 L당 49원 인상돼 흰 우유 제품 가격이 10% 안팎 올랐다. 올해는 인상 폭이 지난해보다 클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예년과 같은 패턴이 이어진다면 ‘흰 우유 L당 3000원 시대’가 도래할 것이란 관측이 많다.

하지만 올해는 물가 인상을 최대한 억제하려는 정부 방침에 따라 우유업계의 제품 가격 인상이 불투명한 상황이다. 정부가 국제 밀가루 가격 인하를 이유로 라면·제과·제분업체에 ‘가격을 낮추라’고 압력을 가한 결과 농심, 오뚜기, SPC, 대한제분 등 굵직한 기업들이 줄줄이 가격 인하를 단행했다.

정부는 이달 초엔 우유업체 10여 곳을 소집해 인상 자제를 요청했다. 업계 관계자는 “낙농가의 버티기로 원유값 동결조차 쉽지 않은 마당에 정부가 전방위적 압박을 가해오니 부담이 이만저만이 아니다”고 토로했다.

틈새 파고드는 폴란드 우유

이 틈바구니를 해외 멸균우유가 파고들고 있다. 폴란드·호주산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압도적인 ‘가성비’(가격 대비 품질)와 긴 보관기간을 내세워 주로 소규모 카페 등 기업 간 거래(B2B) 시장을 잠식해 들어가고 있다. SSG닷컴에 따르면 지난 6월 한 달간 수입 멸균우유 상위 20개 상품의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216% 불어났다. 대개 자영업자들이 대량 구입한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수입 우유의 75%를 차지하는 폴란드산 우유는 마트에서 L당 가격이 1350원 수준으로 2800원대인 국산 우유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넓은 초원에서 소를 방목해 키워 생산비가 적게 든다는 이점을 활용한 결과다. 또 멸균우유는 포장을 뜯지 않으면 1년 가까이 상온에 보관할 수 있다.

이런 장점 때문에 소규모 개인 카페를 중심으로 수입 멸균우유를 사용하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 온라인 자영업자 커뮤니티에도 “맛이 달라 고민했지만 가격 차이가 커 수입 멸균우유를 한꺼번에 구입해서 쓰고 있다”는 글이 많다.

갈수록 악화하는 수익성

2026년 1월부터 미국과 유럽연합(EU)의 유제품 관세가 폐지되면 안 그래도 저렴한 수입 멸균우유 가격은 지금보다 더 내려가게 된다. 미국산 우유와 EU산 우유는 현재 각각 7.2%와 9.0%의 관세가 적용된다.

이는 단계적으로 낮아져 3년 후에는 0%가 될 예정이다. 이렇게 되면 국산 우유가 외국산으로 대체되는 추세가 더 강해질 것이란 게 우유업계의 시각이다. 인구 감소 등으로 1인당 우유 소비량이 줄어드는 가운데 수입 멸균우유의 공세가 강화되면 가뜩이나 안 좋은 우유업계 수익성은 더 악화할 전망이다.

우유업계의 실적은 악화일로다. 남양유업은 지난해까지 3년 연속 영업적자가 이어졌다. 매일유업은 지난해 영업이익이 전년보다 30.9% 줄어든 607억원에 머물렀다.

올해 1분기 영업이익 감소율도 25.6%에 달했다. 업계 1위 서울우유의 지난해 영업이익은 2021년(582억원)보다 18.7% 감소한 473억원에 머물렀다.

우유업계 실적 악화는 궁극적으로 낙농가에 영향을 미칠 것이란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우유업계가 실적 악화를 만회하기 위해 사업을 다각화하고 있어 낙농가에서 사들이는 물량이 줄어들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양지윤 기자 y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