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사진=게티이미지뱅크
“5년 뒤에 원금의 111%를 돌려받고 그냥 해지하세요.”

20대 직장인 A씨는 최근 알고 지내던 한 보험설계사에게서 이런 제안을 받았다. 눈 딱 감고 5년 동안 매달 납입하면 원금과 이자를 모두 보장하는 데다 해당 기간 사망 보장 등 혜택까지 덤으로 따라온다는 것이다. 여기에다 설계사가 첫 석 달치 보험료를 대납해주겠다고 해 실질 누적 수익률은 11%에 달했다.

종신 아닌 종신보험 왜 늘었나

"원금 111% 받고 해지"…무늬만 종신보험?
18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이처럼 5년(또는 7년) 동안 보험료를 내면 이후 환급률이 100%를 넘어서는 ‘단기납 종신보험’ 상품을 마치 저축성 보험처럼 판매하는 설계사들의 변칙 영업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단기납 종신보험은 납입기간 중 해지하면 환급금이 50% 정도로 낮은 대신 완납 시 환급률은 100% 이상으로 설계한 상품이다. 10년 이상 납입해야 하는 기존 상품과 달리 납입기간이 5년 또는 7년으로 짧아 ‘단기납’이란 수식어가 붙었다. 옛 KB생명이 2019년 ‘7년의 약속’이란 이름으로 처음 출시한 이후 인기를 끌면서 다른 보험사들도 판매에 나섰다. 납입기간은 기존 7년에서 5년으로 짧아졌다. 금융감독원과 보험업계에 따르면 2019년 8.4%에 불과했던 단기납 종신보험 판매 비중은 지난해 41.9%로 높아졌고 올해 상반기엔 70% 선을 넘은 것으로 추정된다.

문제는 단기납 종신보험이 보장성 보험인데도 일선 영업현장에선 저축성 보험처럼 팔리고 있다는 점이다. 새 국제회계기준(IFRS17) 도입을 앞둔 작년부터 보장성 보험 판매 확대에 혈안이 된 업계가 환급률을 높이고 수수료 시책을 강화하는 등 과당 경쟁 조짐도 나타나고 있다. 일부 설계사는 자신의 수수료를 일부 떼내 고객의 1~3개월어치 보험료를 대납하는 등 불법 리베이트 영업을 일삼는 것으로 전해졌다.

한 대형 보험사 관계자는 “과거에는 중소형 회사들이 법인보험대리점(GA)을 통한 영업 확대 목적으로 단기납 종신을 활용했는데, 지금은 IFRS17 체제에서 수익성이 좋은 보장성 보험을 늘려야 하는 대형사들까지 경쟁에 뛰어든 상황”이라고 전했다.

당국 개선안 9월에 나온다지만…

금융당국도 문제를 인지하고 불완전 판매 등에 대한 단속을 강화하는 한편 오는 9월부터 단기납 종신보험의 환급률을 낮추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금감원은 단기납 종신보험의 환급률을 100% 이내로 낮춰 보장성 보험을 저축성 보험으로 판매할 유인을 아예 없애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단기납 종신은 100% 환급률에 도달하는 기간이 짧은 만큼 보장금액 대비 보험료가 상대적으로 비싸다”며 “이런 사실을 제대로 알리지 않고 저축성 보험인 것처럼 판매하는 관행이 이어지고 있어 이를 근본적으로 해소할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정이 이렇자 업계에선 이를 오히려 ‘절판 마케팅’으로 활용하는 촌극도 빚어지고 있다. 9월부터 환급률이 낮아지는 만큼 그 전에 빨리 가입해야 한다고 소비자들을 현혹하고 있다는 얘기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금융당국이 개선안을 확정 시행하는 9월 이전에라도 이 같은 절판 마케팅 사례를 철저히 단속해 소비자 피해를 예방해야 한다”고 했다.

이호기 기자 h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