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알 기대 해외 대체투자에 '빨간불'…손실위험 확산(종합2보)
증권팀 = 저금리 시대 앞다퉈 뛰어든 해외 부동산 등 대체 투자가 칼날이 돼서 부메랑처럼 돌아오고 있다.

가파른 금리 인상으로 이자 부담이 늘어나고 부동산 시장이 위축되면서 잠재 부실 자산이 늘어나 손실 위험이 커지고 있다.

◇ 해외 부동산 펀드 76조원으로 급증…10년새 14배로 불어나
17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이달 13일 기준 국내 금융투자사들의 해외 부동산 펀드(공·사모 합산) 순자산 총액은 76조107억원으로 집계됐다.

2013년 말 5조3천억원에도 미치지 못하던 해외 부동산 펀드 규모는 10년 새 14배 이상 수준으로 불어났다.

이는 1년 전 72조1천874억원과 비교하면 1년 만에 4조원 가까이 늘어난 것이기도 하다.

해외 부동산 펀드는 장기간의 글로벌 저금리 환경 아래서 호황을 거듭해왔으나, 지난해 강도 높은 긴축이 시작되면서 부실 우려에 직면한 상황이다.

특히 해외 부동산 투자 시장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오피스 빌딩의 공실률이 여전히 높은 수준을 유지하는 것도 우려를 키우고 있다.

우려는 일부 현실화된 상태다.

이지스자산운용은 이날 자사 펀드 이지스글로벌부동산투자신탁229호를 통해 투자한 독일 트리아논 오피스 건물을 매각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는 공지를 띄웠다.

이 건물 임대료 수입의 상당 부분을 차지해온 데카방크가 임대차계약 연장 옵션을 행사하지 않으면서 대규모 공실 문제가 발생, 운용사는 새로운 임차인을 유치하는 데 주력해왔다.

유치 비용 마련을 위해 국내 기관을 통한 추가 출자도 추진했는데 이 과정에서 일부 대주가 리파이낸싱 조건으로 자본금 추가 납입을 요청했다.

이지스운용은 "대주단이 요구하는 수준의 충분한 자금 모집에 실패하는 경우 (해당 펀드의) 자산 안정화가 용이하지 않을 수 있다"며 "이 경우 내부 위원회의 심의·의결을 통해 트리아논 오피스에 대한 임의 매각이 필요할 수 있다"고 밝혔다.

펀드평가사 에프엔가이드 집계에 따르면 지난 14일 기준 연초 이후 해외 부동산 펀드의 수익률은 약 2%로 아직 수익권을 유지하고 있으나, 설정액은 2천269억원 감소했다.

글로벌리츠(336억원), 아시아태평양리츠(15억원), 일본리츠(41억원), 기타 해외부동산(1천877억원) 등 유형을 가리지 않고 모두 자금이 빠져나갔다.

◇ '금리인상'에 해외 부동산 투자 자산에 부실 위험 경고등
최근 일부 국가의 부동산시장에서 금리 인상 후유증이 나타나면서 해외 대체투자의 손실 위험에 불이 들어왔다.

미래에셋 계열 멀티에셋자산운용은 오는 18일 집합투자재산평가위원회를 열고 홍콩 골딘파이낸셜글로벌센터 빌딩에 대출하기 위해 조성한 펀드 자산의 80∼100%를 상각할 예정이다.

앞서 미래에셋증권은 2019년 6월 펀드를 조성해 기관 등 투자자들을 모집해 중순위(메자닌)로 해당 빌딩에 당시 환율 기준 2천800억원을 대출해줬으나 빌딩 매각으로 중순위 등 나머지 투자자들은 지금 회수가 어려워졌다.

미래에셋 관계자는 "해당 펀드가 보유한 중순위채권의 원리금 회수에 모든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며 "법적 절차 등을 통해 투자자 보호를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으며 세부 내용이 구체화하는 대로 신속하게 안내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투자자가 해외 자산 펀드 자금을 모집한 증권사와 펀드 운용사를 상대로 이미 법정 싸움에 들어간 사례도 있다.

롯데손해보험은 미국 가스복합화력발전소 관련 펀드에 5천만달러(650억원)를 투자했다가 미국 기업들이 채무불이행을 선언하면서 손실을 보자, 부당 이득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롯데손보는 자금을 모집한 메리츠증권이 투자 권유 당시 대출 원리금 미상환액 증가 가능성과 담보 구조의 위험성을 고지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반면 메리츠증권은 해당 펀드의 운용에 관여하지 않았고 위험성 고지를 안 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롯데손보 측 주장을 일축했다.

KB증권은 2019년 JB자산운용이 운용하는 'JB 호주NDIS펀드'를 고객들에게 3천264억원어치를 판매했으나 대출 차주가 약정과 다르게 사업을 해온 사실이 드러나 투자금의 87%가량을 회수해 개인 투자자들에게 반환했다.

그러나 출자 기관들이 KB증권과 JB자산운용을 상대로 '부당 이득금 반환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재판부가 기관투자가들에 원금과 보장 수익 모두를 반환하라고 결정하자 KB증권이 불복해 항소심이 진행중이다.

KB증권 관계자는 "1심 재판부가 나중에 확인된 제반 사정을 토대로 마치 원고의 펀드 가입 이전에 차주의 기망행위를 인지한 것처럼 오해해 원고의 청구를 인용했다"며 "법리적, 사실인정 측면에서 바로잡을 부분이 적지 않아 항소했다"고 설명했다.

해외 대체 투자의 잠재 부실이 높아지는 것은 초저금리로 시중에 돈을 대거 풀던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 등 각국 통화당국이 지난해부터 빠른 속도로 금리 인상 등 긴축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시중 유동성이 걷혀 부동산시장이 위축돼 가격이 내려가고 금리 인상에 이자를 감당하지 못하는 건물주가 생기고 있다.

한 자산운용사의 관계자는 "국내 금융투자사들의 경우 높은 수익을 추구하기 위해 중순위 대출(메자닌) 형식의 해외부동산 투자를 집중적으로 집행해왔다"며 "선순위 대출자가 권리를 행사하면 중순위 대출자가 손실 대부분을 감수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 고수익만 추구하다가 낭패…"투자자 자기책임 원칙, 판매·운용사도 대비해야"
문제는 해외 부동산 펀드 만기가 속속 돌아오지만, 마땅한 대비책이 마련돼 있지 않다는 점이다.

지난해 말 글로벌 부동산 전문투자사인 블랙스톤은 부동산 펀드 환매를 제한하는 강수를 두면서 불안감이 자극되기도 했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오기형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자료를 보면 올해와 내년 만기가 도래하는 부동산 펀드 금액이 21조원에 달하지만, 전문가들은 국내 투자사들이 수익 보호에 취약한 투자 구조를 취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투자자들도 역시 고수익만 바라고 위험성을 간과한 채 대다수 원금 보장이 되지 않는 데다 제대로 알지 못하는 해외 부동산 등의 대체 투자에 무분별하게 나선 자기 책임 논란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해외 대체 투자의 부실 위험이 점차 현실화하면 투자자들과 판매, 운용사와 분쟁이 늘어날 수 있다"며 "증권·운용사들도 충당금을 쌓고 대비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해외 대체 투자 부실 위험은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과 가계부채 위험과 함께 증권사들의 신용도에 영향을 미칠 요인으로 꼽힌다.

국내 한국신용평가는 올해 하반기 금융업계 신용도 방향성의 핵심 변수로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과 해외 대체 투자 자산가치 하락 위험, 가계부채 부담, 마진구조 회복 여부 등을 지목했다.

부동산 PF 위험은 전 금융권에 해당하는 변수로 하반기 도래하는 대규모 브릿지대출 만기를 고려할 때 자산 부실 증가 추세가 지속할 것으로 지적했다.

한신평 관계자는 해외 대체 투자와 관련해선 자기자본 대비 위험 노출도가 높은 증권사 중심으로 모니터링할 계획이라며 "글로벌 긴축 강화와 가격 고평가 인식으로 미국과 유럽의 상업용 부동산 자산가치 하락, 자금 재조달 위험 상승 등 대체투자 위험이 확산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금융감독당국도 증권사 등 금융기관들과 피해보상과 충당금 적립 등 대책을 논의할 것으로 알려졌다.

(윤선희 배영경 송은경 홍유담 이민영 기자)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