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익산시 용안면 시설하우스 침수 심각…최소 13㏊ 물에 잠겨
산북천 제방 붕괴 소식에 오전부터 대피…피해 규모 더 커질 전망
[르포] '이미 다 잠겼는데'…물바다 된 익산 용안·망성면 일대
"이미 다 잠겼잖아. 비 또 온다는데 복구는 무슨 복구."
정체전선 남하로 연일 내리던 비가 잠시 소강상태를 보인 16일 오전 전북 익산시 용안면.
흰색 트럭을 타고 반쯤 물에 잠긴 도로를 건너온 이모(64)씨는 시설하우스를 둘러보더니 헛웃음을 지었다.

얼마 전까지 푸릇푸릇했던 상추는 물에 쓸려간 지 오래.
시설하우스 절반까지 차올라 넘실대는 황톳빛 빗물이 그저 야속할 따름이다.

품 안에서 담배를 빼 문 이씨는 "아침에 비가 안 오길래 잠깐 하우스에 와 봤다"며 "다 잠겼을 거라고 생각은 했는데 이 정도일 줄은…"이라고 말을 잇지 못했다.

그는 "사람도 지금 다 대피하고 난리인데 이거 잠겼다고 신경이나 쓰겠느냐"며 "제방 무너져서 마을이 잠길까 봐 불안하다"고 연신 한숨을 내쉬었다.

이씨 시설하우스와 가까운 데서 만난 한 농민도 허탈한 표정으로 저수지처럼 변한 자신의 논을 한동안 바라봤다.

풍년을 기원하며 모내기한 지 이제 겨우 두 달밖에 안 지났는데 벼를 심은 흔적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논 중간에 살짝 머리를 내민 초록빛 이파리가 '이곳이 육지였구나'라는 사실을 짐작게 할 정도였다.

연신 고개를 젓던 이 농민은 "별로 하고 싶은 말이 없다"며 "뉴스에 나간다고 해서 누가 이걸 알아줄지도 모르겠다"고 말하며 가던 길을 마저 갔다.

[르포] '이미 다 잠겼는데'…물바다 된 익산 용안·망성면 일대
금강 하류에 있는 용안면과 인근 망성면에는 지난 13일부터 500㎜ 가까운 폭우가 내렸다.

비 예보가 이어짐에 따라 현재까지 최종 집계는 나오지 않았지만, 전날까지 시설하우스만 최소 13㏊가 침수된 것으로 파악됐다.

이날 취재진이 돌아본 용안면과 망성면 일대 시설하우스 대부분 절반 이상 물에 잠긴 상태여서 피해 규모는 더 늘어날 가능성이 커 보였다.

하우스를 뒤덮은 비닐까지 다 떠내려 가 뼈대만 앙상하게 남은 시설도 심심치 않게 눈에 띄었다.

용안면 주민들은 농작물 침수를 걱정할 새도 없이 이날 오전부터 인근 초등학교와 중학교로 대피를 시작했다.

대청댐 방류량 확대와 지속적인 호우로 금강 수위가 상승하면서 용안면 석동배수장 인근 산북천 제방에서 붕괴 위험이 감지됐기 때문이다.

전날 사전 대피 권고가 내려졌던 신은, 석동, 부엌, 울산, 석우, 용두, 법성 7개 마을에 송곡, 간이, 궁항 3개 마을이 추가돼 대피 인원은 631명으로 늘었다.

이날 용안초등학교에 마련된 임시 거처에서 만난 김모(70)씨는 "제방이 무너질 수도 있다는 소식에 서둘러 학교에 왔다"며 "몸도 아프고 불편하지만, 아직 사람이 안 다쳐도 다행"이라고 했다.

전북도와 익산시는 경찰, 소방, 군부대와 함께 주민 대피가 신속히 이뤄질 수 있도록 지원하고, 농작물 피해 현황에 대한 조사도 진행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르포] '이미 다 잠겼는데'…물바다 된 익산 용안·망성면 일대
/연합뉴스